우리의 두 번째 출발선
복학 신청 페이지를 열어둔 채, 한동안 커서를 깜박이게 두었다.
손끝이 멈춘 건 망설여서가 아니라, 나에게도 다시 시작이 가능하다는 사실이 낯설어서였다.
긴 소송의 시간들은 내 삶을 갈기갈기 찢어놓았고, 나는 그 조각들을 붙이는 데에만 숨을 몰아쉬었다.
늦깎이 대학 합격증은, 그렇게 내 손에서 자꾸만 밀려났다.
휴학은 사유로 채워졌고, 사유는 기록으로 남았고, 기록은 어느새 내 시간이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나는 복학해야 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즈음, 아들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엄마, 나… 다시 연기해 볼까?”
그 말을 듣고서야 알았다. ‘다시’라는 단어가 얼마나 많은 의미를 품고 있는지.
무대에 서는 건 아들이고, 내 역할은 박수와 기다림일지라도,
그 박수와 기다림이 공허하지 않으려면 나 역시 나의 자리에서 다시 서야 한다는 것을.
사실 나는 아이들의 성장과 함께, 나의 시간도 조금씩 접어왔다.
접은 시간을 다시 펼치는 건 생각보다 더 용기가 필요했다.
내게 주어진 ‘엄마’라는 역할은 영원히 내 이름 앞에 붙어 있을 것이다.
다만 이제는 아이에게 “해보자”라고 말하려면, 나도 내 삶에서 “해본다”라고 말해야 하니까.
복학을 결정하는 일은 큰 결심이었다.
새벽에 알람을 맞춰두고, 국가장학금 등록금 고지서를 열어보고, 강의계획서를 하나씩 넘겨보는 일.
손에 잡히는 건 종이와 화면이지만, 그 안에서 나는 아주 천천히, 아주 작게 다시 자라났다.
어쩌면 나는 그동안 ‘버티는 법’만 배웠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제는 버팀목이 아니라 발돋움대를 찾고 싶었다.
아들이 오디션 공고를 찾아보고 대사 연습을 시작하듯, 나는 수업 목록을 고르고 과제 일정을 적어 넣었다.
서로의 시작이 집안의 달력을 조금씩 다시 채웠다.
아들의 방에서는 요즘, 숨 고르는 소리가 들린다.
대사를 입에 붙이고, 한 줄을 제대로 말하기 위해 다섯 번, 열 번씩 다시 시작하는 소리.
그 소리를 들을 때면 오래전 아들의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아들은 연기에 집중하고, 나는 공부에 집중한다.
서로의 ‘다름’이 우리를 어긋나게 하지 않고, 오히려 평행으로 견고하게 만든다.
같은 방향을 보며 각자의 길로 걷는다.
이것이 우리가 선택한 두 번째 출발선이다.
물론 두려움이 없어지는 건 아니다. 법 앞에서 외면받았던 기억은 쉽게 잊히지 않는다.
불리함을 감수해야 하는 선택 앞에서, 내 안의 목소리는 여전히 묻는다.
‘이번엔 다를까?’ 하지만 그 질문의 끝에 나는 하나를 더 붙인다.
‘그래도 간다.’ 외면에 대한 두려움보다, 공포가 나를 더 작게 만들었음을 이제는 안다.
그래서 움직인다. 아주 조금이라도.
등록을 마치고 강의 첫 주, 오리엔테이션 화면에 뜬 문장이 이상하게 오래 머물렀다.
“배움은 자신에 대한 가장 오래된 약속을 갱신하는 일입니다.”
그 문장을 노트에 옮겨 적었다.
오래된 약속. 스물네 살, 아무것도 모르던 나도 분명 그 약속을 한 적이 있었을 것이다.
삶이 급하게 몰아칠 때, 나는 그 약속을 뒤로 미뤘다.
그러나 이젠 안다.
나는 그 약속을 마침내 다시 열어 본다.
아들은 요즘 카메라 앞에서 자기소개를 연습한다.
떨리는 목소리로 이름을 말하고, 딱 한 줄의 목표를 말한다.
“저는… 다시 해보겠습니다.” 그 문장을 들을 때면 왠지 모르게 가슴이 뜨끈해진다.
그 ‘다시’ 속에는 포기했던 장면, 미뤄둔 꿈, 응원받지 못한 밤들이 함께 들어 있기 때문이다.
아이의 ‘다시’에 내가 박수를 치는 이유는 단순히 성취의 가능성 때문만이 아니다.
아들의 노력은 나를 내 자리로 밀어 올리는 힘이기도 하다.
내가 나의 책상을 정리하고, 다시 책을 펼치게 하는 힘.
이제 우리의 하루에는 두 개의 스케줄이 있다.
오디션 일정과 수업 일정.
한 사람의 꿈이 다른 사람의 삶을 지워버리던 예전과 다르게,
두 개의 일정은 서로를 침범하지 않고 어깨를 나눠 짊어진다.
아이는 무대 앞에서, 나는 강의실 앞에서 각자의 떨림을 견딘다.
우리는 서로의 관객이자, 서로의 응원단이다.
때로는 대사를 들어주고, 때로는 리포트 초안을 읽어준다.
말하자면, 우리는 같은 집에서 다른 방식으로 ‘서보기’를 연습 중이다.
밤이 깊어가면, 나는 오늘 배운 것을 노트에 적는다.
배움은 생각보다 실용적이다.
문장을 정확히 쓰는 법,
질문을 잘 만드는 법,
내 주장을 증거로 단단히 세우는 법.
언젠가 법정에서 듣고 싶었던 말들을, 나는 이제 책상 앞에서 나에게 들려준다.
“당신의 이야기는 충분히 설득력이 있습니다.”
그 말은 타인이 허락해야만 들을 수 있는 문장이 아니었다.
내가 나에게 먼저 건네야 하는 문장이었다.
아들에게 말했다.
“네가 연기를 다시 시작한다는 건, 네가 네 삶의 주인공이 되어보겠다는 뜻이야.
엄마도 내 인생에서 조연처럼 서성이지 않을게. 나도 내 장면을 찍을 거야.”
아들은 웃었다. “그럼 우리, 촬영 들어가요?”
“응, 액션.”
‘엄마’의 자리를 내려놓지 않으면서도
나는 조금씩 다시 배우고, 일하고,
나를 위한 옷을 고르기 시작했다.
이제 나는, 늦었지만 늦지 않은
나의 자리를 만들어가는 중이다.
그리고 오늘, 우리는 각자의 무대 앞에 선다.
아들은 무대를 향해 한 발 내딛고,
나는 교정된 문장을 향해 한 줄 더 나아간다.
서로 다른 시작선에서, 우리는 같은 말을 되뇐다.
다시,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