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고기는 소고기가 될 수 있을까

아들의 입덧과 엄마의 사랑

누군가에게는 그저 평범한 것,


누군가에게는 없으면 찾게 되는 것,


누군가에게는 무심코 지나치지만,


또 누군가에게는 절실한 것이 있다.



가난은 언제나 주변을 의식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자신감마저 빼앗아 갔다.

어린 나이에 시작된 결혼생활은 가난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했고,

나는 나 자신을 되돌아볼 여유조차 없이 하루하루를 버텼다.


세 아이를 키우며 보낸 시간은 고된 삶이었다.

하루하루 먹고살기 바빴고, 돈은 늘 부족했다.

그래도 엄마의 애틋한 사랑은 울타리가 되어주었고,

그 속에서 내 아이들은 씩씩하게 자라났다.

그 아이들이, 늘 내 삶의 희망이자 버팀목이었다.


세상의 시선이 두려워 나를 꼭꼭 숨기며 살아온 날들.

이제야 조심스레, 따스한 봄바람처럼 내 마음의 문을 열어본다.

그 문틈으로 스며든 햇살처럼, 오래된 추억 하나가 떠올랐다.


2007년, 빠듯한 살림살이 속에서 막내아들을 임신했다.

첫째와 둘째는 자몽과 딸기가 먹고 싶다고 속삭일 때 찾아왔고,

띠동갑으로 태어난 셋째는 오이와 옥수수를 앞세워 존재를 알렸다.

입덧은 심했고, 아들의 목소리처럼 느껴지는 그 속삭임은

“소고기가 먹고 싶어”였다.


그러나 냉장고 속에는 늘 돼지고기뿐이었다.

마트 냉장 진열장 너머 빛깔 고운 소고기를 바라보다

한숨을 삼키고 돌아서던 순간들이 반복되던 날들.


그러다 문득,

“돼지고기는 소고기가 될 수 없을까?”

하는 엉뚱한 상상이 머리를 스쳤다.


냉장고 구석, 하얀 마요네즈 한 통이 눈에 들어왔다.

마요네즈를 돼지고기에 살짝 얹어 비벼보았다.

놀랍게도 그 고소함이 돼지고기의 육질을 감싸며,

입안에서 소고기의 풍미처럼 느껴졌다.


돼지고기 김치찌개에도, 고추장 불고기에도,

반지르르 윤기 나는 마요네즈를 얹어

“소고기처럼 먹어보자”는 엄마표 마법은 계속되었다.


엄마의 엉뚱한 요리법에 딸들은 토끼 눈이 되었고,

그 모습은 하나의 사고 전환이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아들의 입덧은 멈췄다.


비비디 바비디 부~

마법처럼 사라진 입덧,

마법처럼 태어난 아이.


엄마의 간절함으로 완성된 마요네즈 밥 한 그릇은

진짜 소고기가 되지 못했지만,

그보다 더 진한 사랑의 맛을 남겼다.


시간이 흘러도 현실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진짜 소고기를 마음껏 먹이지 못한 것이 여전히 마음에 남는다.

그래서일까.

지금도 가끔 마요네즈를 돼지고기에 올려 먹을 때면

먼저 떠오르는 건 아들의 웃음이다.


그 시절,

가난한 엄마의 간절함이 만들어낸 그 마법의 맛.

그건 분명,

소고기보다 따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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