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시작하는 용기
나는 오래 걸어왔다.
가끔은 멈추었고, 자주 흔들렸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다.
10대의 나는
좋은 친구들이 있었다.
특별한 재능이 없었지만 학교생활을 무난히 버틸 수 있었다.
연로하셨고 과수원 일로 늘 바쁘셨던 부모님은 나에게 큰 관심을 기울일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내 재능이 무엇인지 스스로 찾아야 했다.
다행히도 나의 감성을 응원해 주셨던 선생님이 계셨다.
좋은 선생님 덕분에 나는 평범하지만 소중한 학창 시절을 보낼 수 있었다.
20대의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기 위해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부족한 실력이었지만 작은 매장에서 기회를 얻었고,
소소한 디자인 작업을 맡으며 ‘살아있다’는 감각을 느꼈다.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었지만,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설레던 시절이었다.
30대의 나는
가난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삶은 쉽게 달라지지 않았고 오히려 더 팍팍해졌다.
어느새 나는 세 아이의 엄마가 되어 있었고,
사회와 단절된 채 마치 올가미 속에 갇힌 사람처럼 움직일 수 없었다.
꿈을 잃고 현실만 남아있었다.
40대의 나는
어느새 친정 부모님을 떠나보낸 고아가 되어 있었고, 가정마저 잃었다.
내 곁에 남은 것은 아이들뿐이었다. 하지만 세상은 생각보다 차갑지 않았다.
아이가 아프다는 소식을 듣고 선뜻 30만 원을 보내주신 분도 있었다.
세상이 이렇게 따뜻할 수도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그리고 50대의 나는, 법 앞에서 배운 것
열심히 살아온 피해자가 더 설명해야 하는 순간,
법은 피해자를 외면했고, 가해자의 사정은 쉽게 옹호된다는 것
아동학대와 정서적 폭력, 독박육아, 방임과 가정폭력은 여전히 ‘집안일’로 가볍게 취급된다는 것
경찰은 심각성을 외면하고, 변호사는 형식적 절차만을 본다는 것
그때의 나는 문턱 앞에서 밀려나는 느낌이었고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심정이었다.
피해자가 피고가 되어 억울함을 호소할 때
법이 불합리적으로 피해자를 외면했을 때
비록 피해자의 호소가 묻혀 현실에서 배제된 피해자가 되었지만
1366, 한국여성의 전화의 관심과 응원에 감사함을 전하고 싶다.
내가 혼자만의 힘으로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격려 한 마디와 관심이 사람을 살린다는 것을
법은 무심했지만, 복지는 등을 돌리지는 않았다.
그 사실이 나를 다시 일으켰다.
복지제도는 따뜻했다.
내가 무너지지 않도록 손을 내밀어 주었다.
교육비 지원은 아이들의 배움을 지켜주었고,
생계급여는 하루를 견딜 힘을 주었다.
그렇게 나는 다시 꿈꾸기 시작했다.
장학금 덕분에 대학에서 공부를 할 수 있게 되었고
통장 잔액 0원으로 불안에 떨던 날들도 있었지만,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운 건 “세상은 아직 살아볼 만하다”는 희망이었다.
받은 온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누군가의 삶을 밝히는 작은 불빛이 되고 싶다.
세상이 내게 가르쳐 준 것은
사람은 도움을 받을 자격이 있고,
누군가는 도움을 건넬 책임이 있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지금도 멈추지 않고 나아간다.
받은 은혜를 다시 돌려줄 수 있는 삶을 꿈꾸며..
내일의 문턱에서
나는 또 한 번 숨을 고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