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작 공예품과 장인들
독일크리스마스 마켓에서 먹고 마시는 것에 외에 또 하나의 즐거움은 장인들이 예술품을 제작하는 과정을 감상하는 것이다. 12월 한 달 내내 입장료도 없이 뛰어난 장인들의 현란한 작업과정을 직접 코앞에서 구경할 수 있는 호사를 누릴 수 있는데 단순히 판매를 위해 물건을 만드는 것이 아닌 정교한 작품을 만들어내는 장인들의 자부심을 가까이서 지켜보는 것은 크리스마스 마켓의 백미이다.
1. 유리 공예 크리스마스 장식
대량생산으로 마구 찍어내는 예쁘고 화려한 크리스마스 장식은 널려 깔렸지만 장인이 직접 눈앞에서 제작하는 유리 장식을 만드는 것을 볼 기회는 많지 않다. 궁색한 변명을 하자면 유리 마법사를 가까이 보고자 하는 사람들이 장사진을 치고 있는 바람에 사진 찍기가 무진장 힘들었다. 우리 집 아저씨 등을 떠밀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는 사람들의 머리통 사이에 카메라를 들이대고 셔터를 누르게 시켰더니 사진의 각도와 질이 형편없다. (브런치에 훌륭한 사진작가분들이 많으셔서 매번 이따구의 사진을 올릴 때마다 송구스럽다.)
셀 수 없이 많은 작품들을 만들어 보았을 유리세공장인은 머릿속에 디자인과 색상 크기 등에 대한 정보가 이미 입력되어 있는 듯하다. 먼저 유리반죽에서 세심하게 이물질이나 스크래치가 난 부분을 제거한 후 첨단(?) 기계에 납작한 막대 사탕 모양의 조각을 끼워 뿜어져 나오는 불을 쏘이며 이리저리 굴려가며 가열한다. 다른 색이 필요하면 색이 있는 유리막대를 스르르 갔다 대기만 하면 된다. 눈 깜짝할 사이에 기계의 대롱에서 공기가 주입되면서 동그랗게 몸집이 불어 오르면서 예쁜 공모양의 장식품이 탄생한다. 공이 만들어지는 과정도 신기하지만 뜨거운 유리반죽 덩어리에서 핀셋 하나만으로 다리를 잡아끌고 머리를 잡아당기고 하여 마치 조물주가 생명을 만들어내듯 순식간에 가지가지의 동물 모양 크리스마스 장식을 탄생시킨다. 베네치아의 유리 세공으로 유명한 무라노섬에서 수공예 공장을 방문했을 때도 장인들의 숙련된 손놀림과 창의성에 크게 놀란 적이 있었다. 예술못알로서 단순한 비교를 하자면 이태리 무라노의 장인들은 대롱에 직접 입을 대고 불어가며 고대기술을 그대로 사용하면서 매우 세련되고 정제된 손놀림으로 예술작품을 만들어내지만 크리스마스 마켓의 독일 유리 세공 장인들은 기능이 훨씬 다양한 혁신적 손기계(대량 생산을 위한 기계는 아니다)를 다루는 능력과 정확성을 갖춘 엔지니어적 기술을 자랑한다 하겠다. 어느 쪽이든 대단하기는 마찬가지지만 이 귀한 구경들을 동네서 공짜로 시켜주는 크리스마스 장인들께 조심스레 한 표를 더 드린다.
장인의 표정 또한 멋지다. 미간에 주름 한번 잡지 않고 가볍게 재료를 빙글빙글 돌려가며 단숨에 구슬 모양으로 만들어 사람들 앞에 여유 있게 내놓는다. 정말로 멋짐 뿜뿜이다! 이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그의 표정에서는 커다란 자부심과 프로정신을 볼 수 있다. 크리스마스 트리에 매다는 유리공부터 시작해서 테이블에 세워 놓을 수 있는 갖가지 세공품, 액세서리까지 다양한 작품으로 그득 차 있는 그의 점포는 아트갤러리라 부르는 것이 맞다. 특히 미니어처 유리 장식품을 만드는 과정은 빈틈없는 세심함과 정밀성을 요구할 지언데 나처럼 대충대충의 인간에게는 구매의 자격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왜냐? 덜컥 샀다가 세밀한 장식품 사이사이에 들어 차 앉을 먼지를 힘조절 못하고 닦다가 부서트리기 십상일 테니. 엉엉 게으르면 예쁘게 살기도 힘들다.
눈앞에서 유리구슬 안에 장인정신이 포획되는 순간을 목격한 사람들은 감탄사를 연발하며 지갑문을 팍팍 열어젖힌다. 쇼핑에 별 관심 없는 나마저도 이 놀라운 장인의 퍼포먼스를 공짜로 보는 것이 죄스러워 뿔이 멋진 순록이 유리구슬 안에 들어가 있는 트리 장식 하나를 질렀다. 무심한 태도로 순식간에 환상적인 모양의 장식품을 뽑아내는 장인을 보면 저 어려운 작업이 몸에 착 달라붙게 될 때까지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을까 경외심이 생기면서 동시에 나는 어떤 기술을 익히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해 본 적이 있나 되돌아보게 된다. 어렸을 때 그림도 곧잘 그리고 악기도 잘 다뤄 나름 재주가 있다는 말을 듣고 자랐지만 나이 먹으면서 생활에 찌들고 게을러지면서 그 씨가 말라비틀어져 버렸다. 어려서의 재주는 내가 꾸준히 노력해 발전시킨 것이라기보다 엄마의 열정으로 학원에서 만들어진 것들이겠고 "스스로" 무엇인가에 올인해서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발전시키는 일에는 반세기를 살아낸 지금도 서툴다. 마켓 장인들의 노련한 손놀림과 긍지를 목도하면서 이번 생애에, 몸뚱이가 더 닳기 전에, 장인까지는 아니더라도 재능 재(?) 건축을 해보고 싶다는 강력한 바람은 생겼다. 이태리 무라노까지 가지 않아도 장인들이 제 발로 우리 동네까지 찾아와서 가르침을 내려주었는데 오늘 산 유리구슬을 트리에 매달아 놓고 연말 내내 남은 평생 무슨 재능을 재계발해낼지 심각하게 고민해 볼 지어다.
2. 나무 공예
대부분의 독일 가정에서는 크리스마스 조금 전에 플라스틱이 아닌 생나무로 크리스마스트리를 장식하는데 보통 크리스마스 하루 전날에 트리 장식을 하고 12일간 장식품을 달아 감상하다가 1월 6일에 집 앞의 정해진 장소에 온 마을 사람들이 동시에 나무를 버리면 시에서 수거해 간다. 가톨릭 전통을 따르는 가정에서는 2월 2일 (캔들마스)까지 크리스마스트리를 치우지 않기도 하는데 집집마다 크리스마스트리 장만이 커다란 행사이다 보니 나무공예 점포는 예쁜 장식을 고르는 사람들로 언제나 북적인다.
오늘 아침 기사에 CDU(독일 기독교민주연합)의 당대표 프리드리히 메르츠 (Friedrich Merz)가 크리스마스트리 구입을 독일의 지배적 문화(Leitkulture, leading culture)라고 언급했다. 지배문화는 1998년에 만들어진 용어로 메르츠에 따르면 세대를 통해 전달되고 아이들이 영향을 받고 어떤 방식으로든 스스로를 이어가는 정체성으로 독일에서 크리스마스트리를 사서 장식하는 행위는 일종의 기독교 서양 문화적 정체성이라 발언했다. 150년 동안 전해져 내려온 인조나무가 아닌 생나무로 크리스마스트리를 장만하고 장식하는 일은 인권과 법치의 존중, 관용과 더불어 독일의 지배적인 문화라는 것이다. 이 발언은 대단치 않게 들릴 수 있으나 역사적으로 종교적으로 첨예하게 대립하여 전쟁에 전쟁을 불러일으켰고 지금까지도 그 분쟁이 계속되고 있는 유럽 내에서 이민과 통합으로 골치 아픈 정치적 문제가 끊이지 않는 독일에서는 매우 도발적인 언급이라 하겠다. 우리 집은 한국과 독일문화가 만났지만 키치(Kitsch) 문화에 아무런 저항이 없는 나에 의해 한국 이마트에서 사 온 작은 플라스틱 나무를 근 20년째 사용 중이다. 매 크리스마스 때마다 어마한 숫자의 생나무들이 잘려서 집에서 십 수일 있다가 동시다발적으로 길거리에 버려지는 독일의 지배문화에 동참하고 싶지 않고 이렇게라도 해야 중국인을 위시한 아시아 사람들이 나무젓가락을 써서 전 세계 나무가 남아나지 못한다고 비아냥대는 양인들에게 복수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굳이 플라스틱 트리를 사용한다 주장한다. 하지만 깊숙이 숨겨둔 진심은 생나무에서 매일 같이 후드득 떨어지는 나뭇잎을 청소하는 것이 귀찮아 그런 것이 아닐까? 한독가정을 이루고 살면서 핀트가 맞지 않는 곳에서 독일 문화에 소심하게 저항하는 이 마음의 정체는 비굴함이지 싶다.
나무공예품 가게에는 크리스마스 트리에 다는 장식품, 촛대, 천사, 예수, 마리아 등의 성상부터 미니어처 가구까지 장식품의 종류가 다양한데, 갖가지 나무로 된 장식을 구경하는 것도 즐겁지만 점포 바로 옆에는 유리로 된 작업장이 있어서 이 장식품들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관찰할 수 있게 되어있다. 은은한 조명과 함께 나무향이 가득 펴져 있는 작업대 위에는 나무 조각들이 널브러져 있다. 여기에서는 소나무로 보이는 원목을 톱으로 절단하는 작업에서부터 나무조각을 부드럽게 다듬고 조각하는 과정을 모두 볼 수 있는데 거칠던 나무가 손질되어 순식간에 매끄러운 곡선이 탄생하거나 디테일이 추가되는 장면을 보는 것은 신기방기하다. 눈송이, 천사, 촛불, 예수가 탄생하는 장면 등 다양한 모티브의 장식품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세밀함에 정신이 혼미해진다. 나처럼 손재주 없고 디테일이 버거운 사람들에게 장인들은 그저 숭배의 대상이다. 나무 장식 중에 별자리 시리즈가 있는데 올해는 식구별로 별자리 장식 4개를 골라 사서 트리에 매달았다. 별자리 크리스마스 장식이라니, 좀 뜬금없지만 서양에서는 별자리가 혈액형 보다 훨씬 진지하게 받아들여진다. 독일에 올 때까지 내 별자리가 무엇인지도 몰랐던 나는 언젠가 잡지에서 물병자리가 독창적이고 진보적인 사고를 가지며 사회적 이슈에 관심이 많다는 것을 읽고 감동받았다. 그래, 그런 사람이 한번 돼 보자고!
3. 쿠키커터
비록 직접 만들어지는 모습은 볼 수 없지만 이 많은 종류의 쿠키커터를 한꺼번에 볼 수 있는 곳은 단언컨대 크리스마스 마켓밖에 없다. 작은 점포가 수백 가지의 쿠키커터로 가득 차 있는데 마치 마법의 나라에 온 듯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크리스마스트리, 천사, 선물상자, 눈사람, 별 모양부터 시작해서 숫자에 알파벳에 갖가지 혁신적인 모양의 디자인까지... 대부분의 고객들은 과자 굽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겠고 아마도 집에 이미 수십 가지 쿠키커터를 가지고 있으리라 짐작된다.
사람들이 자주 만드는 크리스마스 쿠키 모양은 트리, 별, 지팡이, 사탕, 진저브레드맨, 크리스마스 종, 양말 등의 모양이 대표적이지만 요즘은 퍼즐 모양으로 조립할 수 있게 만드는 크리스마스 쿠키부터 투명한 창문처럼 만든 쿠키까지 여러 가지 혁신적인 모양까지 등장했다. 베이킹못알이지만 이 도구만 보아도 과자를 굽는 일이 단순히 먹는 것을 훌쩍 뛰어넘는 일임을 알 수 있다. 쿠키커터를 선택하면서 쿠키 모양, 색깔 등을 디자인하면서 자신만의 아이디어를 표현하는 자유를 만끽할 것이요, 매 크리스마스마다 변화를 시도하기 위해 창의적인 생각을 해낼 것이니 이미 여기까지 IQ가 쭉쭉 상승하게 되리라. 우리 집 아저씨의 베이킹 스타일을 곱씹어 보면 정확한 계량과 시간관리로 부엌을 삽시간에 실험실로 만들며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과학자 코스프레도 할 수 있으며 무엇보다도 다양한 감각적 경험과 크리스마스 정신을 곱씹으며 이것을 함께 나누게 될 가족이나 친구들과의 즐거운 시간을 생각하면서 달콤한 맛을 즐길 수 있으니 크리스마스 쿠키 만들기는 여러모로 정신 건강에 좋지 싶다. 그래서 각 4에서 7유로 까지를 투자 해 새우, 게, 랍스터 등의 갑각류 모양 쿠키커터를 충동구매 해버렸다. 플랙스~~~ 갑각류가 비싼 독일에서 랍스터 저녁식사를 할 주머니 사정이 못되기에 과자로라도 한을 풀겠다가 올해 나의 크리스마스 먹거리 컨셉이다.
4. 이름 도장, 레트로 장난감 가게
전통 장난감 가게에는 보통 나무로 만들어진 퍼즐, 인형, 자동차, 기차 등이 판매되고 무엇보다도 직접 이름을 세길 수가 있는 도장이 인기가 많다. 우리 아이들이 어렸을 때 각자 이름이 새겨진 도장을 사주었다가 물건들은 물론이고 집안 곳곳, 심지어 침대 머리맡까지 이름 도장을 찍어 놓는 바람에 따라다니면서 지우느라 고생한 기억이 있다. 특히 평생 오빠에게 물건들을 물려받고 자신의 물건마저 툭하면 빼앗겼던 불쌍한 딸내미는 견공들이 쉬를 싸서 흔적을 남기듯 여기저기 자신의 물건 및 식탁 의자(자기 자리)에까지 이름도장을 찍어놓았다. 그 덕에 4살부터 그녀의 자기 물건에 대한 광적인 집착을 알아채게 되었는데, 이것이 엄마로서 얻은 것인가 잃은 것인가는 아직도 모르겠다.
파란색 배경의 벽에는 남아 이름의 도장이, 분홍 바탕에는 여아 이름의 도장이 걸려있다. 특히 아이들이 글자를 배우기 전, 자신의 이름을 쓸 줄 모를 때, 이름자에 친숙해지라고 이름 도장을 사준다. 물론 그맘때의 아이들은 스티커 붙이고 도장 찍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좋은 장난감이기도 하다. 구입하는 사람들은 보통 부모나 친적, 할머니, 할아버지들이다.
2022년에 독일에서 가장 사랑받는 이름으로는 여아로 에밀리아 (Emilia)와 남아로는 노아(Noah)였다. 이 두 이름은 1977년부터 매년 이름 목록을 발표하고 인기 차트를 집계해 온 독일어 협회에서 3년 연속 1위를 차지했는데 에밀리아에 뒤따르는 인기 있는 여아의 이름으로 소피아 (Sophia, Sofia)와 엠마 (Emma), 미아(Mia), 하나(Hannah), 리나(Lina) 등이었고 노아의 뒤를 이은 남아의 이름은 마태오 (Matt(h)eo), 레온(Leon), 핀(Finn), 파울(Paul), 엘리아스 (Elias) 등이다. 재미있는 점은 이웃 독일어권 국가인 오스트리아에서도 인기 있는 이름 10위 중 4개는 같다고 한다. 국경이 맞닿아 있고 같은 언어를 쓰다 보니 문화적 특성이 공유되고 있어 그런가 서로 다른 두 나라에 선호하는 이름까지 비슷하다니 흥미롭다.
디지털 세대의 도래로 3살 어린이들까지 핸드폰과 아이패드, 태블릿 등의 전자기기를 가지고 노는 작금에 크리스마스 마켓의 전통적 장난감에 누가 관심이 있으랴 걱정했는데 다행히 나의 걱정은 기우인 것 같다. 아이의 이름을 세기고 있는 부모들,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로 점포는 북적인다. 아이와 함께 온 부모들에게 물걸레와 매직스펀지로 연말을 보내고 싶지 않다면 이름 도장을 조심하라 조언하고 싶었으나 참았다. 우리 집 애들과 달리 아무 데나 도장 찍지 않는 착한 아이를 키우고 있을지도 모르고 애 키우는 맛을 찰지게 느껴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5. 미니어처 마을 장식과 스노우 글로브 (snow globe)
작은 집, 건물, 사람까지 아기자기한 마을에 촛불이나 등으로 예쁜 조명까지 삽입되어 있어 반짝반짝 빛나는 미니어처 마을은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많다. 집안에 장식하기도 하지만 건물의 1층에 사는 사람들은 창가에 미니어처들을 장식하여 행인들에게 크리스마스 기분을 선물하기도 한다.
미니어처 크리스마스 마을은 독일 크리스마스 마켓의 전유물은 아니지만 이 점포를 구경하는 것은 정말 커다란 재미이다. 무엇을 만들든 품질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독일은 고품질 제품 탄생을 위해 아낌없이 비용을 투자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두 차례의 세계 대전과 기근, 초인플레이션을 겪은 독일인들은 제조업의 발전과 견습생 양성에 목숨을 걸었는데 특히 제조업체를 보호하기 위해 경제를 구조화했다. 즉 장인 정신을 가다듬고 전수하기 위한 학교 시스템을 구성했고 우리나라처럼 제조업자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수입할 수 있도록 허용하지 않고 자국의 제조업을 고도로 전문화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다 보니 팝스타가 영웅인 한국과는 다르게 독일에서는 장인이 영웅이다. 기계공, 용접공, 목수 등이 대접받는 사회이고 그들이 만들어내는 이러한 문화가 칭송받고 대접받는다 (어떤 문화가 좋고 나쁘다는 이야기가 아닌 '다르다'는 이야기다). 작은 강아지 인형을 사도 발바닥까지 색칠되어 있는 것은 독일 제품밖에 없다는 이야기가 있어 사실일까 궁금해 강아지 인형을 들어 올려 깜짝 놀랐다. 정말로 발바닥까지 깔끔하게 칠해져 마무리되어 있었다!
점포의 한 코너는 작은 유리 구 안에 눈이 펄펄 내리는 장식품으로 꽉 차있었는데 크리스마스 장면이나 동화 속 캐릭터들이 담겨 있는 스노우 글로브(swno globe)들이다. 가지가지의 색깔과 디자인으로 정답게 동글동글 모여있는 모습이 너무 귀엽다. 내 이것을 우리말로 어떻게 부르는지 잘 몰라 인터넷을 검색해 보다 빵 터졌는데 "구슬 안에 눈 내리는 그거 뭐예요?", "그 장식품 같은 건데 유리구슬 안에 눈 내리는 마을 있고 그런 거 뭐예요?" 등 스노우 글로브를 한국어로 모르는 것은 나만이 아니라 기뻤다. 워터 글로브든 스노우 글로브든 각각의 글로브는 귀엽고 정겨운 크리스마스 장면을 담고 있는데 작지만 주방이나 테이블 위에 놓아두면 특별한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다. 그러니 장바구니에 추가.
6. 등과 초
촛불을 켜지 않고 12월을 보내는 독일 가정은 없을 것이기에 초는 실용품에 속한다. 종교의 유무와 상관없이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는 4주의 일요일을 대림절 일요일이라 부르며 촛불을 하나씩 밝혀간다. 대림 첫 주에는 초 한 개, 둘째 주에는 두 개, 셋째 주에는 세 개... 이렇게 하나씩 밝혀진 촛불이 합쳐져 크리스마스이브에는 네 개의 촛불이 모두 켜지게 된다.
우리 집은 남편은 기독교, 나는 가톨릭으로 시청에 등록되어 있고 아이들은 원하는 종교를 따를 수 있도록 무교로 두었다. 종교를 등록하면 종교세를 내는데 우리처럼 교회나 성당에 가지 않아도 매달 각각 백유로 훌쩍 넘게 교회세로 나간다. 그래서 교회나 성당에 나가지 않아도 당당하게 종교계 뉴스에 목소리를 낸다. 남편은 기아로 허덕이는 아이들이 뉴스에 나면 펄펄 뛰면서 교회세를 그렇게 거두면서 대체 그 돈을 어디다 쓰길래 애들이 굶냐고 구시렁거리고, 나도 그것을 보고 배워서 뉴스에 종교비리에 대해 나오면 유권자는 못되지만 납세자로서 흥분하며 목소리를 낸다. 매달 꼬박꼬박 돈을 바쳐도 뻔한 문제해결을 못하는 머저리가 어쩌고 하면서 말이다.
초등학교부터 종교 과목이 있는 독일에서는 자신의 종교에 따라 개신교, 가톨릭, 그냥 일반 종교학을 선택할 수 있는데 중고교 과정에서는 일반 종교학 대신 철학을 선택할 수 있다. 우리 아이들은 5학년까지 가톨릭을 선택해서 종교에 대해 배우다가 6학년부터 아이들의 의견에 따라 철학으로 선택과목을 바꾸었다. 초기에 아이들에게 가톨릭 교육을 시켰던 이유는 종교적인 이유라기보다는 남편도 나도 종교생활을 하지 않다 보니 아이들이 종교에 대해 너무 무지하게 될 것 같아 학교에 일임한 것이다. 유럽에서 가톨릭이든 개신교든 기독교에 대해 모르면 뿌리를 모르게 되는 것이기에 전문 교사분께 맡기고 나와 남편은 맘 편하게 아이들 앞에서 세속인으로 남기로 했다. 감사기도를 함께 안 해서 그런가. 가끔 애들에게 감사를 표현하는 것을 가르치지 않은 것 같아 께름칙하긴 하지만 부모가 일일이 안 가르쳐줘도 저 나이면 스스로 깨우치는 것도 좀 있어야지 하며 애써 외면하기로 했다.
초와 함께 크리스마스 마켓에서 아름다운 자태를 자랑하는 것은 갖가지 장식등이다. 모양도 색깔도 너무나 예쁜데 크기에 상관없이 하나 사다 걸어 놓으면 공간의 분위기를 성스럽고 로맨틱하게 바꿀 수 있다.
7. 양털 신발과 가죽제품
빼놓을 수 없는 수공예 제품으로 양털제품과 가죽제품을 들 수 있다. 가죽 장갑, 가방, 지갑 등은 크리스마스 선물로도 인기가 높아서 많은 사람들이 구매한다. 부드럽고 따뜻한 양털 담요나 쿠션은 겨울철에 따뜻함과 아늑함을 주는 홈데코레이션으로도 많이 활용되고, 양털로 만든 작은 장식품이나 인형들은 크리스마스 트리에 걸기도 한다. 그 외에도 양털 스웨터, 모자, 장갑, 신발에서 양탄자까지 고풍스럽고 따뜻한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해 많이들 사는데 크리스마스 마켓에서 이 물건들을 사는 것이 특별한 점은 제품들이 손수 제작되는 과정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점포에 들렀을 때 장인은 팔기 바빠서 만드는 과정을 보여줄 시간조차 없었는데 장인의 작업장을 보니 그림형제의 동화 "구두장이와 요정들 (룸펠슈틸츠헨)"이 생각나서 마음이 따뜻해졌다.
8. 크리스마스 저녁식사에 쓰는 수공예 식탁보
걸려있는 종류만도 족히 백 가지는 되어 보이는 자수무늬 식탁보 및 장식보 들은 비록 나의 취향은 아니지만 그 섬세함과 독특한 디테일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식탁보, 테이블 보뿐 아니라 창걸이, 크리스마스트리 장식품까지도 취급하는데 점원이 젊은 여인이라 깜짝 놀랐다. 여인은 점포에서 앉았다 일어났다 사람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작품들을 소개하면서도 쉼 없이 바느질을 하고 있었는데 그 모습은 여태껏 내가 크리스마스 마켓에서 본 모든 장인 중 가장 우아했고 바늘 하나와 손기술만으로 새로운 세상을 직조해 내는 진정한 조물주처럼 보였다. 역시 사고 싶었지만 크리스마스날 저 아름다운 식탁보를 깔고 질질 흘리고 먹는 우리 집 다 큰 애들을 보면 멱살을 잡게 될 것 같아 참았다. 우리 식구가 평화롭게 식사하는 것이 아름다운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것보다 조금 더 중요하기에...
끊임없는 소비와 물건에 대한 의존, 물건을 사면서 얻는 순간적인 만족감, 물건의 값과 자아를 연결하면서 명품과 명차를 소유하는 것이 나의 정체성을 대변하게 된 기괴한 사회에서 수공예품은 개인의 가치, 신념 관심을 반영하는 자기표현을 보존하는 경이로운 수단이다. 한 가지 작품을 만드는데 최선을 다하여 그 누구도 쉽게 따를 수 없는 실력의 경지에 다다르게 된 장인들은 가치 있는 경험, 예술, 문화를 소홀히 하게 된 우리 사회의 경이로운 영웅이라 하겠다. 그들의 매력에 빠져 이것저것 조금씩 장바구니에 담다 보니 어라, 꽤 많은 돈을 써버렸다. 괜찮다. 내 몸뚱이를 위해 사는 것이라고는 먹는 것 밖에 없는데 크리스마스에 장인의 정신까지 사는 진정한 플렉스 했다 생각하노라.
참 민망하다. 지름신 온 것을 변명하는 방법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