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마켓을 보내며
수 주에 걸쳐 열렸던 크리스마스 마켓도 어마무시한 실베스타 파티도 막을 내렸다. 이제 모두 자기 자리로 돌아가 일상을 살아내야 한다. 한국에서도 독일과 마찬가지로 연말연시에 수많은 모임들이 개최되었으리라 생각된다. 독일을 위시한 많은 서양의 파티에는 별로 친하지 않은 사람들이 만남을 갖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들 역시 가족, 가까운 친구 간의 모임이 있지만 파티라고 명명할 때는 보통 내가 모르는 사람들이 오는 것이 기정사실이다. 이런 느슨한 파티에서 사람들은 이루시루 간다는 인사 없이 가까운 사람에게만 알리고 조용히 집으로 가는 경우가 많다. 내향적인 사람의 경우 자신에게 모든 사람들의 관심이 쏠리는 것이 버거워 그럴 것이요, 그렇지 않더라도 다른 사람들이 바짓가랑이 잡을 것이 귀찮아 몰래 가기도 하겠다. 또한 몇 명 안 되는 인원이 모인 파티에서도 비밀리에 파티 장소를 떠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런 사람들을 부르는 유럽인들의 표현이 재미있다.
먼저 독일 사람들은 이를 "폴란드식 탈출 (polnischen Abgang)"이라고 부른다 (지역에 따라서는 프랑스식 탈출이나 네덜란드식 탈출이라고 부르는 곳도 있다). 그렇다면 폴란드인들은 이러한 사람들을 무엇이라 부를까? 폴란드에서는 "영국식 탈출"이라고 부른다. "영국식 탈출"이라는 표현은 폴란드 외에도 프랑스, 이태리, 헝가리, 루마니아 등으로 다수의 나라가 영국식 탈출이란 표현을 쓰는데 아마도 서양권에서 가장 직설적이지 못하고 돌려 말하기로 유명한 영국인들이 이러한 행동을 보이는 경향이 많아서이겠다. 그럼 영국에서는 이런 행동을 뭐라고 부를까? 영국인 들은 "프랑스식 탈출(take a French leave)"이라고 부른다. 프랑스식 탈출은 스페인, 포르투갈, 슬로베니아 등지에서도 사용된다. 미국의 어느 지역에서는 아이랜드식 인사 (irish goodbye)라고 부른다. 이 정도면 국가 간 전쟁이라 해도 무방할 것 같다. 결국 돌출 행동이라는 것은 특별한 문화와 관계업이 어디서나 이루어질 터인데 이방인이 그러한 행동을 했을 경우 바로 찍혀서 라벨링이 돼버린 전형적인 경우라 하겠다. 탈출표현 전쟁에 끼어 있지 않다 보니 위의 표현들이 재미있게 들리지만 폴란드인, 영국인, 프랑스인 등 당사자가 된 사람들은 가볍게 받아들이기 힘들 수도 있겠다. 이것이 서양인들이 한중일의 문화 갈등을 바라보는 태도일까? 순간 한 방 얻어맞은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오늘 시내를 한 바퀴 시찰 해 보니 크리스마스 마켓이 철거에 들어갔다. 겨울이 우울한 자들에게 넘치게 알코올과 당분을 공급함으로써 제 몫을 다 해내고 내년을 기약하며 영예롭게 해체되고 있었다. 내년에 이맘때 더욱 관대하고 역동적인 모습으로 찾아와 주길 바라며 그동안 나의 일 년의 시간은 또 어떻게 지나갈지 잠시 생각해 봤다.
계획형 인간은 아니기에 단 한 번도 분초를 깎아가면서 세우는 철저한 계획을 세워서 지켜본 적이 없다. 하지만 억지로 책상에 앉혀져 있던 수많은 시간의 절반은 워낙 (남이 시켜서 하는) 공부하는 것을 싫어하다 보니 계획을 짜는데 보냈었던 것 같다. 일단 책상에 앉으면 형형색색의 펜을 들고 앞으로 공부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오늘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계획을 짜고 계획표에 색칠하고 줄 긋느라 기운과 열정을 몽땅 날린 후 정작 그 계획을 실행할 힘을 남긴 적이 없다. 계획만 세우면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다. (나만 그런가?) 그러다 보니 시간을 잘 사용해 본 적도 없고 항상 닥치는 대로 살았다. 나이가 들면서 계획 짜는 데는 더욱 서툴러졌지만 다행히도 무작정 실행해 보는 능력은 죽지 않았다. 큰 목표를 가지고 아주 단순한 계획 (하루에 한 가지)만을 세워 그것만을 달성하며 하루하루를 보내는 전략으로 반세기를 살아왔다. 그러니 앞으로도 계획 따위는 세우고 살지 않을 것 않다.
2024년 곧 5학년이 되는데 인생을 빡빡하게 사는 것이 점점 더 버겁고 재미 없어져서 걱정이다. 인터넷에 보면 기록을 해라, 계획을 세워라, 책을 읽어라, 난리난리인데 다 속 시끄럽고 귀찮다. 젊은 시절 짧은 한 때 이렇게 살아도 봤는데 한 번도 꾸준한 적은 없었다. 돌아보니 오락가락하긴 했지만 나름 열심히 살았던 구간이 있었던 것도 같은데 변변치 않지만 그래도 지금의 나의 모습을 만드는데 그 시절의 열정이 공헌을 했으리라. 지금 다시 그 시절처럼 살라면 자신도 없고 기운도 없는 데다 무엇보다도 기회가 오지 않는다. 나이가 드는 것에 역행하라고, 젊게 살아야 한다고 근육을 만들어야 한다고들 난리지만, 갑자기 없었던 미모가 차 오를 것도 아니요, 나머지 반세기를 넷플릭스 드라마에 나오는 인형같이 잘생긴 남자와 살게 될 것도 아니기에 흥분과 희망이 솟구치지도 않는다. (이런 가망성이 있다면 당연히 뼈를 갈아서라도 다시 열심히 살리라, 음하하!)
그럼 반세기를 이렇게 살아온 나는 2024년을 어떻게 살아내어 내년 크리스마스 마켓에서 꽐라 되게 마시며 즐거워할 수 있을까. 작년을 되돌아보며 고치고 싶은 습관과 더 잘 살아내고 싶은 부분을 되돌아보면 대략 이러한 결론이 나온다.
첫째, 일단 인생은 혼돈임을 늘 그렇듯이 잘 받아들이고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은 욕실 수체통의 머리카락을 치운다. 가끔 샤워하다가 머리카락이 미역처럼 발밑에 감길 때가 있는데 너무 끔찍하다. 올해는 이 사달이 나기 전에 적어도 한 달에 한번! 욕실바닥 수체통의 머리카락을 치우기로 한다.
둘째,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쯤은 열쇠를 어디에 뒀는지 기억해야 한다. 매일 한자리에 잘 두다가 가끔 퇴근해서 현관으로 들어오면서 화장실이 급할 때 열쇠를 집어던지고 일 보러 먼저 들어갈 때가 있다. 뒷간 들어갈 때와 나올 때 다르다는 말이 있듯이 나는 나온 후 집어던진 열쇠를 깡그리 잊어버리고 상쾌한 마음으로 살다 보면 다시 나가야 할 때 열쇠를 어디 두었는지 생각이 안 나서 허둥지둥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이 습관을 고친다기보다 정신을 차려야 한다.
셋째, 올해부터는 이층에 올라갈 때 왜 올라가는지를 잘 생각하면서 계단을 오를 지어다. 우리 집은 복층인데 지난 일 년간 의미 없는 오르락 내리락을 햄스터 쳇바퀴 돌 듯이 했다. 왜냐? 수건 가지러 이층 갔다가 (수건 가지러 올라온 것 까먹고) 이빨만 닦고 내려오고, 아래층에 내려와 아차, 수건 가지러 올라갔었지? 하고 다시 올라갔다가, 더러운 화장실에 자극받아 뜬금없이 화장실 청소를 한 후 상쾌하게 아래층으로 내려와서는 내가 왜 이층에 갔었는지를 새카맣게 잊어버리고... 오르락내리락하면서 내가 지금 뭐 하는 거지? 하며 피식거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덕분에 허벅지 근육은 1 나노밀리미터 가량 늘었지 싶다. 어찌 되었든 이층에 올라갈 때마다 정신을 차려야 한다.
넷째, 복잡한 갱년기의 감정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다양한 이모티콘을 사용할 것이다. 하루에 수십 개의 메시지를 가족, 친지, 지인, 동료, 학생들과 주고받으며 나의 답장에는 매일 똑같은 이모티콘만 들어간다. 내가 봐도 지겨운데 받는 사람은 얼마나 지겨울까. 내년에는 5학년 초 상큼한 이미지를 풍기기 위해 여러 가지 이모티콘을 돌려가면서 써 볼 것이다. 핑계를 댄다면 해외 사용자들은 카톡의 예쁜 이모티콘을 쉽게 사지 못한다. 지금까지 가지고 있는 것들은 구걸해서 얻거나 나를 불쌍히 여긴 친구들이 기부해 준 것이다. 친구들이 난사하는 어여쁘고 재미있는 이모티콘이 너무 부럽지만 5학년의 자존심에 자꾸 사달라고 할 수 없어서 참는다. 매번 다른 이모티콘으로 문자 보내는 사람들이 너어무 부럽다. 욕심내지 말고 그나마 가지고 있는 나의 이모티콘을 내년에는 조금 더 잘 사용하리라.
다섯째, 아직까지 읽지 않은 책더미를 잘 정리해서 깔고 앉는데 쓰던지 책장으로 쓰던지 잘 활용해 봐야겠다. 책이 꼭 '당장' 읽으라고 있는 것도 아니요 소유를 통한 마음의 안정을 주는 효과도 크다. 여태껏 박아 놓은 책은 내 탓도 있지만 지나치게 머리 좋은 작가들이 너무 복잡하게 썼거나 그런지 알면서도 사회적 압력에 못 견뎌 구입했을 뿐 내 취향이 아닌 책들도 많다. 이것들을 가구로 용도 전향하여 다른 방식으로 정복하는 길을 택하련다.
여섯째, 강의 시간에 대책 없이 소리 질러 에너지 바닥내지 말자. 나는 열정백배 강사라 강의 시간에 기차화통 삶아 먹은 목소리로 강의한다. 학생들이 반응이 없으면 목소리는 점점 더 커진다. 어느 날 학생들에게 발표를 시켰는데 목소리 크기가 개미만 한 학생이 나왔다. 그런데 웬걸 이 학생이 발표를 하니 아이들이 갑자기 쥐 죽은 듯이 조용해지면서 발표를 들으려 애쓰는 것이 아닌가? 그 모습에 큰 충격받았다. 나도 그냥 작게 말하면 되는 것이었다. 쓸데없이 크게 말하니 학생들은 나만 믿고 내 강의 중에 큰소리로 떠든다. 어차리 내 목소리에 다 묻혀버릴 테니... 정말 몰랐다. 학생들은 잘못이 없다. 나는 그냥 내가 답답해서 크게 소리를 지르는 사람이라는 신박한 발견을 하게 된 것이다. 이와 함께 발생한 사건은 딸내미가 나를 이비인후과에 보낸 것이다. 그녀의 이론에 따르자면 나는 귀가 잘 안 들려서 남들은 멀쩡하게 잘 듣는데도 불구하고 소리소리 지르며 말한다는 것이다. 집에서도 너무 크게 말해서 시끄러워 죽겠단다. 결국 그녀가 예약해 주어 2023년 12월 마지막 주에 청력 검사까지 받았다. 지난한 검사가 끝난 후 의사 선생님께서 진지한 얼굴로 소견을 말씀해 주셨다. 내 청력은 청년처럼 좋고 니 딸 역시 너를 닮아 청력이 좋아 니 목소리 크다고 불평하는 것 같다라고. 그리고는 10년 후에 만나자고 하셔서 발걸음 가볍게 이비인 후과를 나섰다. 집에 가면 딸내미를 산산조각 낼 결심으로. 그런데 이 소리지름의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귀도 잘 들리는데 대체 왜 나는, 스탭 원, 이렇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그 많은 강의 시간에 매번 힘을 다 쓰고, 스탭 투, 점심을 필요이상 많이 먹어 몸무게 문제를 파생시키고, 스탭 쓰리, 집에 와서 방전된 에너지로 아무것도 못하고 바닥을 기느냐에 있다. 단순한 목소리의 문제가 아니라 내 매일의 생활의 질에 달린 문제이니 시정이 필요하다. 이제 잘 생성되지 않는 내 몸의 에너지를 아끼기 위해서라도 목소리 크기를 줄여야 한다. 이게 되려나?
일곱째, 가장 힘든 결심일진대 단 것을 좀 덜 먹어야 한다. 이번 크리스마스 마켓에서 내가 섭취한 설탕의 양은 2024년 한 해 소비해야 할 당을 커버한다. 다음 크리스마켓이 열릴 때까지 설탕 한 톨도 못 먹게 하는 벌을 받아도 마땅할 정도로 양심 없이 단 것을 먹어 치웠다. 참자고, 덜 먹자고 하면 더 먹을 테니 뭐라고 표현해야 하나 망설여지지만 잠시 애인이랑 원거리 연애를 하듯이 단것과도 거리를 두어야 한다. 어느 아름다운 모델이 말하길 몸을 만드는 일은 자기가 자신을 100프로 통제하는 쾌감을 주기에 가장 정직하고 쉬운 일이라 하더라. 그 말이 너무 감동적이었다. 사람이 이렇게 생각을 할 수도 있구나. 내가 모델이 될 수 없는 이유는 엄마 아빠 탓이 아니라 자신을 정복하고자 하는 의지가 없어서라는 것을 알았다.
일곱 가지 나의 결심 중 마지막 항목을 지키기가 제일 힘들지 싶다. 이 글 발행 전에 그 항목을 지우면 완벽한 리스트가 되어 훌륭한 내가 되겠지만 인생은 어차피 혼돈이고 미래는 불확실하고 나는 대충이고 완벽하지 않으니 이런 나를 다시 사랑하는 한 해로 살기로 결심하며 그대로 둔다.
내년 크리스마스 마켓에서는 이 결심이 첩첩이 무너진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거나 어찌저찌 지켜졌음을 기뻐하면서 또 술잔을 들고 달콤함을 맛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