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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맹 Jan 30. 2024

독일 MZ세대에게 배우다 - 데이팅 프로그램

젊음 그 아름다움

나는 독일대학에서 영어와 한국어, 이중언어를 가르친다. 한 대학에서는 영어교육과에서 영어로 언어학 관련 수업을 강의하고 또 다른 두 대학에서는 한국어 전임강사로 한국어와 언어학 수업들을 가르친다. 세 개의 대학에서 두 개의 전혀 다른 전공수업을 해야 하기에 철저하게 다른 정체성을 가지고 일한다. 한동안 연예계에서 유행하던 부케 같은 개념으로 영어교육과에서는 코즈모폴리턴(cosmopolitan)으로서의 정체성을 앞세우면서 강의를 하고, 한국어 강사로 일하는 대학에서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철저하게 한국을 대변하는 정체성을 가지며 수업을 한다.


정체성이 오락가락 엎치락뒤치락 거리는 것은 일상생활에서 누구에게나 생기는 흔한 일이다. 집에서는 아이들의 엄마로서 돌보는 일에 충실하지만 직장에서는 팀장으로 카리스마 있는 리더의 역할을 한다거나, 집에서는 부인에게 리더로서의 주도권을 다 넘기고 조용히 지내는 가장이면서 직장에서는 임원으로서 수십 명의 직원들을 지도하고 이끄는 등 우리 모두는 일관적인 역할 정체성을 가진다기보다 여러 가지 다른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내 직업의 특이점은 각각 영어교육학과와 한국학과의 독일 학생들을 가르치기에 (가르치는 내용의 차이라기보다) 그에 따른 내 본질과 역할이 판이하게 다르다는 것에 있다. 독일대학에서 동양인으로 영어를 가르치는 특이한 이력에서 오는 (원치 않는) 눈에 띔, 고단함과 피해망상은 10년 가까이 일해도 사라지지 않는다. 학과 행사를 해서 20명 남짓의 교수, 강사들이 다 모이면 아일랜드, 영국, 우크라이나, 네덜란드 등 별아 별 유럽인들이 다 섞여 있지만 동양인은 나 딱 하나이다. 물론 동료들은 허물없이 나를 대해주고 나도 이들과 다르지 않다고 마음먹으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렇지만 나의 또 다른 정체성과 거기에서 오는 자기 분열은 끊임없이 나를 비뚤어지게 만든다. 영어 교육과에서 살아남기 위해 “혼자 하는” 치열한 싸움과는 다르게 한국학과에서는 아무런 노력 없이 원초적으로 부여되는 합법성, 적합성을 누린다. 한국어니까 한국인이 가르친다는 이 교사로서의 적법성은 단순히 내가 원어민이기에 거저로 얻는 소름 끼치게 강력한 권력이다. 독일 대학에서 그 누가 나에게 한국어 지식으로 맞짱을 뜨겠는가. 이러한 사고방식은 뒤집어서 말하면 동양인이 어디 유럽대학에서 감히 영어와 영미식 사고방식에 대해 강의하느냐라는 또 다른 위험한 사고방식과 동전의 양면의 관계에 있다.     


상황이 이러하다 보니 나에게는 매일매일 자기 분열이 일어난다. 한 대학에서는 미국 물먹고 언어 교육을 평정한 다언어 교육의 선봉자인듯한 코스프레를, 다른 대학에서는 마치 외교부에서 파견된 한국을 대표하고 한국어에 달인인 듯한 껍질을 쓰고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가르치는 직업의 피곤함은 학생에게 항상 모범이 되는 척을 해야 한다는 것인데 (잘 생각해 보면 모든 직업이 그러하겠지만 특히 교사에게는 이러한 올가미가 자의든 타의든 더 단단하게 씐다) 끊임없이 자기 분열을 경험하며 살고 있는 교사가 학생들에게 롤모델이 되려면 정신 건강을 잘 가다듬어야 한다. 내 안의 서로 다른 정체성들을 조화롭게 잘 다스리면서 계속해서 나와 화해하고 끊임없이 세상과 타협하면서 살아야 하니 사는 것이 버겁기 그지없다. 그 누구의 인생이 가볍고 행복하기만 하랴. 이 세상에 데뷔했으면 당연한 수순이다.


다행히 나에게는 직장에서의 자기 부조화와 자기 분열을 사사삭 녹여주는 직빵 치료제가 있는데 바로 학생과의 소통이다. 젊은이들과의 소통은 마치 젊은 피를 끊임없이 수혈받는 것처럼 나에게 활력을 불어넣어준다. 장수하려고 오만가지 방법을 다 썼던 장개석이 18세 처녀의 혈액을 장기적으로 수혈받았다고 했던가? 그럴 돈도 권력도 없어 메말라 가는 에스트로겐 타령이나 하고 있는 갱년기 아줌마지만 안팎으로 아름다운 젊은 친구들과 하루종일 소통할 수 있는 돈 안되지만 럭셔리한 직업을 가졌음은 감사하고 자랑스럽다.

 

뭐 그리 대단한 인격의 소유자도 아니요, 학문적으로 상아탑을 쌓은 연구자도 아닌 내가 대학에서 다른 선생들보다 잘하는 것은 학생들과의 소통이다. 워낙 사람을 좋아해서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을 좋아하다 보니 학생들의 이야기도 늘 귀 기울여 듣는데 그러다 보니 다행히 따르는 학생들이 많이 생겼다. 사실 '잘 듣기'는 언어 교사라면 가지고 있어야 하는 특질이지만 나는 운이 좋아 이런 품성을 타고났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항상 그 사람이 궁금하고, 잘 알고 지내는 사람들과도 속 깊은 대화에서 끊임없이 새로움을 발견하는 것이 늘 즐겁고 내가 가진 유일무이한 탈랜트이다 (이런 의미에서 쥐꼬리만큼 버는 선생이라는 직업은 안타깝지만 내게는 천직이다. 한숨 푹.)


학기말이 다가와서 오랜만에 학생들과 학교 카페테리아에서 느긋하게 이야기할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원래는 20명의 학생과 교실 수업을 했어야 하는데 독일 기차파업으로 많은 학생들이 학교에 오지 못해서 다섯 명의 학생만 출석했다. 학생들과 일일이 눈 맞추며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잘 살리기 위해 당장 학생들과 함께 보따리를 싸서 교실을 떠나 커피 냄새가 솔솔 나고 도란도란 모여 담소를 나누기 좋은 카페테리아로 직행했다. 그날 우리의 계획은 한국어로 대화하기! 한 학기 동안 죽도록 가르쳤으니 오늘 하루는 내가 학생들에게 신문물과 새로운 생각들을 배우는 날이 되렸다.


자리에 모인 다섯 명의 학생들은 모두 작년에 일 년 동안 한국에 교환학생을 다녀와서 한국어 실력이 훌륭하다. 딱 2년 한국어를 공부하고 자신이 하고자 하는 말을 표현해 낼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수고의 결실이다. 수십 년을 독일에 살면서도 아직도 삐걱대는 내 독일어를 생각하면 대학에서 1년 한국어 수업을 받고 1년간 한국에서 유학을 하고 왔는데 한국어로 소통이 가능하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진지한 대화도 많았지만 그중 학생들과 시간 가는 줄 모르게 토론했던 주제는 데이팅 프로그램에 대한 이야기였다. 학교 공부에, 알바에, 독립생활을 유지하느라 바쁘게 살아가면서 어떻게 한국어 실력을 유지하느냐는 나의 질문에 학생들은 시간이 나면 한국 엔터테인먼트 프로그램을 본다고 한다. 그중 다들 한 번쯤은 "솔로지옥"이라는 데이팅 프로그램을 봤다며 너무 재미있었다며 호들갑을 떤다. 나는 데이팅 프로그램 전혀-못알이라 학생들이 이야기해주는 내용을 열심히 메모하면서 들었다. 일단 독일에도 독신자(Bachelor), (Bachelorette), 독신자의 천국(Bachelor in Paradise), 전 애인과 해변에서 (Ex on the beach), 당신이 바로 그 사람인가 (Are you the one), 사랑의 섬(love island), 유혹의 섬(temptation island), 데이트 드롭(date or drop) 등 셀 수 없이 많은 데이팅 프로그램이 있다. 하지만 한국의 솔로지옥은 특별하다. 출연자 간의 로맨틱한 감정선을 예리하게 그려내고 (독일 프로그램에 비해) 선정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욱 맛깔난 데다가 프로그램 내부에 서사가 있어서 단순한 두 파트너의 만남을 넘어서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펼쳐져 재미가 배가된다. 반면에 독일의 데이팅 프로그램은 하나 같이 쓰레기 프로그램으로 볼 것이 못된다고 투덜댄다. 대부분의 스토리 라인이 그 안에서의 질투와 성격차이, 드라마를 만들어 내기 위해 성격이 모난 사람들을 스타로 만들어 내서 너무 짜증난다나 뭐라나? 그리고는 그러한 프로그램이 갈수록 가관이 되어 간다고 덧붙였다. 그럼 대체 왜 보는 거냐고 반문했더니 학생들의 대답은 명쾌했다. 세상에 별아 별 인간 군상이 다 있다는 것을 배우고 나는 저렇게 멍청하지 않아서 얼마나 다행인가를 느끼기 위해서 본단다. 한두 번 본 학생들은 눈살 찌푸리는 용으로 보고 엎어버리고 계속해서 보는 학생은 인간들이 저렇게 말종이 될 수 있구나 하면서 본단다.  


박장대소했다. 엔터테인먼트의 위력이 엄청나게 커지면서 그 수준도 천차만별이라 멋진 프로그램도 많이 만들어지는 동시에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너절하고 심각하게 수준 낮은 콘텐츠도 넘친다. 이 학생들의 답변은 나에게 얼마간의 위안이 되었다. 유튜브 슈퍼스타 누구누구가 바나나를 바라보는 5분 길이의 영상을 업로드하니 해당 영상이 죽기 300만 조회수를 기록했는데 그는 자신이 아무리 멍청한 영상을 올려도 사람들은 자신의 콘텐츠를 시청할 것이라는 가설을 증명하기 위해 그 영상을 올렸고 아니나 다를까 대중은 그를 실망시키지 않았다든지의 스토리를 들으면 한 번은 재미있을지 모를까 세상이 걱정되기 시작한다. 나 역시 재미있고 틀에 얽매이지 않는 생각을 아주 좋아하기에 비주류 아트를 즐기지만 너무 생각 없다 못해 세상에 없는 재미를 쥐어짜기 위해 만든 콘텐츠는 문화 산업 전체에 먹물을 끼얹는 것 같은 효과가 있다. 그런데 점점 더 그러한 콘텐츠들이 많아지니 참 인간이 얼마만큼 까지 타락으로 재미를 느껴야 하는지에 대한 회의가 든다. 유명세를 바탕으로 경쟁과 천적 없이 생산해 내는 이런 종류의 비루한 엔터테인먼트 콘텐츠는 인류가 점점 멍청해져 가게 만드는 원천이 된다. 나를 위시하여 생각 없는 영상에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실제로 엔터테인먼트 비즈니스 종사자들은 이런 바보들을 즐겁게 만들기 위해 더 많은 수준 이하의 콘텐츠들을 생산해 내게 될 것이고 이것이 내 학생들이 말하는 독일 데이팅 프로그램의 몰락처럼 되고 있다.   


파이낸셜 타임스에 따르면 2021년 재능이 없는 한 이태리 예술가가 보이지 않는 조각품을 만 팔천 달러에 팔았다고 보도했다. 또한 아마존에서는 빈페이지 원고를 업로드해서 베스트셀러가 된 작가가 있고 네덜란드 박물관에는 배설물로 채운 전시가 등장했다. 이뿐인가 혈액, 대변, 소변, 체액, 자해, 가 등을 주제로 삼아 예술품을 만드는 extreme art까지... 이런 작품이 무엇을 표현하기 위해 존재하며 예술과 사회학을 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는 차치하고 "교육받지 못한 대중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에 대해서 우리는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한다. 일본 미성년자가 오르가슴을 느낄 때 맞드는 표정인 아헤가오 밈으로 유명해진 한 영국여성은 자신의 욕조 물을 온스당 30달러에 팔았고 이 뉴스는 수많은 신문과 블로그에 보도되면서 불티나게 찌라시를 생성했는데 그 찌라시의 양이 비틀스가 스타덤에 오르던 시절에 만들어 내었던 홍보물의 양을 넘어섰다고 한다 (Stupidiocracy, Thorsten J. Pettberg, Jan 2024).


이렇게 바닥을 치는 콘텐츠로 오락산업을 선도하는 것은 새로 생긴 기류는 아니지만 그 어리석음의 정도는 넘사벽이다. 미국의 지적 쇠퇴를 다룬 2006년의 영화 이디오크라시 (Idiocracy)는 평균 아이큐를 가진 사람이 비밀 군사 실험으로 동면했다가 2303년에 깨어나 세계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이 되었다는 이야기인데 이것은 영화가 아닌 실제 다큐멘터리가 될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웃고 넘어가기에 두려운 것은 이렇게 되면 힘 있는 사람들이 우리를 상대로 어리석은 정치를 무기화할 수 있게 되고 이 상황은 현재 대한민국을 위시해 전 세계의 정치 지형에서 일어나고 있다. 의도적으로 사람들을 멍청하게 이끌어 자신의 이익대로 사회를 이끌어 가는 것. 


그래도 다행이다. 우리 학생들이 쓰레기 프로그램을 쓰레기인 줄 알고 다는 것이. 학생들과 즐거운 이야기를 정신없이 하다가 이 아름다운 젊음들 사이에서 한없는 착각에 빠진 나를 본다. 이리보고 저리 봐도 싱그러운 봄꽃 같은 학생들에 둘러싸여 있으니 그 시간만큼은 나도 그들처럼 아름답겠구나 하는 철저한 착각이다 (코로나 펜데미 동안 줌수업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끊임없이 내 얼굴을 화면을 통해 지속적으로 봐야 했던 점이다. 제발 그만 보고 싶었다 ㅎㅎㅎ). 그들의 젊음에서, 앳됨에서, 넘치는 생기와 아름다움, 수줍음과 미소에서 풍기는 싱그러운 향기, 작은 일에 끊임없이 웃고 즐거워하는 정신의 탄력... 그들의 매력에 빠져 정신이 혼미해졌다. 노벨상과 아카데미상을 둘 다 거머쥔 역사상 유일한 인물인 조지 버나드 쇼(George Bernard Shaw)는 '젊음은 젊은이에게 주기엔 너무 아깝다 '라고 했는데 이렇게 아름다운 젊은이들을 보면서 그들의 아름다움에 취하지 않고 저런 냉철한 시선을 가질 수 있었다는 것에 경의를 표한다. 정신없이 강의를 하다가 가끔 정신 차리고 학생들을 찬찬히 살피곤 하는데 미간을 찡그리면서 집중하는 모습, 나와 눈이 마주쳐 수줍어하는 모습, 혹시 내가 질문할까 봐 눈 피하는 모습, 수업에 흥미를 깡그리 잃고 언제 끝나나 딴짓하는 모습까지 다 아름답다.


한 껏 수혈을 받은 후에 진심 어린 감사의 말을 전하며 다음 시간에 있을 시험에 대해 깔끔 따끔하게 정리해 준 후에 카페테리아를 나섰다. 집에 가서 솔로지옥을 한번 봐야지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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