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을 키우는 독일댜학생들의 삶
강의실 안을 상상해 보자. 그냥 평범한 교실이 아닌 이곳은 신경과민의 전쟁터이자, 미시감정의 지뢰밭이다.
한쪽에는 '완벽주의' 군단이 있다. 태블릿이나 노트북을 쓰기에 별로 필요가 없어 보이는 필기구로 꽉 차 있는 필통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가지고 다니는 것 같다)은 일렬로 정렬되어 있고, 교과서? 그야말로 문구점 사장의 눈물 (감사의 눈물이다!)을 자아낼 정도로 색색의 포스트잇과 무지개색 펜으로 무장되어 있다. 예습으로 빡빡히 정리되어 있는 노트는 너무 잘 되어 있어서 뺏어가서 팔고 싶다. 진정으로 학생들에게 물어본 적도 많다. 학기가 끝나면 정리 노트의 스캔 파일을 좀 받을 수 있겠냐고... 그대로 출판해도 잘 팔리겠다.
반대편에는 학습 준비에 철저한 것은 아니지만 타자와의 컨택을 최소화하는 '미모사 군단 (미모사는 건드리면 잎이 접히면서 오므라든다)'이 있다. 푹 숙인 고개에 '날 건드리지 말아 줘'로 무장한 그들의 머리는 모자로, 얼굴의 하관은 목도리 속에 깊숙이 파묻혀 있어 음파 탐지기라도 있어야 생명 징후를 감지할 수 있다. 최대한 남들과 상호작용을 피하기 위해 늘 전략적으로 위장하고 있다.
고도로 예민한 사람(HSP)에게 특히 한국어 말하기 수업 시간은 안전벨트 없는 감정의 롤러코스터와도 같다. 모든 단어는 잠재적 지뢰가 되고, 내면의 변속기는 쉴 새 없이 기어를 바꾼다. 입 밖으로 나오는 말은 빙산의 일각, 그 아래로는 수많은 단어들이 쏟아지듯 떠오르고 가라앉는다. 문장 하나를 말하기 위해 뇌에서는 마치 AI 학습 모델처럼 수천 개의 시나리오가 동시에 필터링된다. "아니, 이 단어를 써도 되나? 문법이 맞을까? 너무 딱딱하게 들리나? 억양은 자연스러울까? " 이 모든 생각들은 0.001초 안에 번개처럼 스쳐 지나간다. 그 와중에 입에서 나오는 말은 마치 빙하의 한 조각 같다 - 조심스럽고, 깔끔하고, 그 이면의 감정의 바다는 보이지 않는 채. 한국어든 어떤 언어든 말하기 수업은 HSP에게 지옥 같은 시간이다. 한 마디 한 마디가 심장박동수를 올리는 극한의 모험. 발음 하나가 만약 잘못되거나 문법 실수를 하면 마치 치명적인 범죄를 저지른 것처럼 느껴진다. 그 순간, 뇌에서는 수백 개의 대체 시나리오가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린다.
어떤 쪽이든 고도로 예민한 사람들의 세계는 인생의 볼륨이 항상 최대로 고정되어 있고, 감정의 높낮이는 롤러코스터를 방불케 한다.
반면, 어떤 학생들은 "뭐, 틀려도 어때"라는 태도로 느긋하다. 지각을 해도 태연하고, 시험이 다가와도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신비한 평정심을 유지한다. 심지어 시험을 망쳐도 "어쩌겠어, 다음 학기에 다시 보면 되지"라며 크게 개의치 않는다. 대체 왜 이런 차이가 생길까?
이 차이를 설명하는 한 가지 개념이 바로 예민함(HSP, Highly Sensitive Person)과 불안이다.
예민한 사람들은 작은 변화에도 민감하게 반응하고, 남들이 알아채지 못하는 미세한 신호까지 감지한다. 예민함은 타고난 기질이지만, 불안은 환경적 요인에 의해 증폭되는 감정이다. 즉, 예민한 사람이 반드시 불안한 것은 아니지만, 스트레스가 많은 환경에서는 불안이 커질 확률이 높다.
예민함도 정도의 차이가 있다. 특히 "울트라 예민"한 사람들은 강한 감각 처리 민감성(Sensory Processing Sensitivity)을 가진다. 이들은 세상의 온갖 자극을 HD 화질로 경험한다.
심리학자 일레인 아론(Elaine Aron)에 따르면, 전체 인구의 약 15~20%가 이러한 특성을 지니고 있다.
이들의 주요 특징은:
1. 밝은 빛, 큰 소리, 강한 냄새 등 감각 자극에 쉽게 압도된다. (네온사인 번쩍이는 도심은 회피 대상이다)
2. 사소한 디테일까지 신경 쓰며 깊이 생각한다. (단톡방에서 누군가 이모티콘 없이 메시지를 보내면 바로 심각한 의미 분석이 시작된다!)
3. 다른 사람의 감정을 예리하게 감지하고 깊이 공감한다. (친구가 영혼 없이 "괜찮아"라고 한말을 득달 같이 눈치채고 괴로워한다.)
4. 과도한 자극에 쉽게 피로감을 느낀다. (하루 종일 사람들과 어울렸다면, 최소 이틀, 최대 한 주는 혼자 있어야 충전이 가능하다.)
나는? 감각은 둔한 편이지만, 지나친 공감력 덕분에 가끔 HSP의 고통을 간접 체험한다. 무엇보다도, 내 가족의 절반이 예민함의 끝판왕들이라 이를 지켜보며 감탄과 안타까움을 동시에 느낀다. 물론 예민함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세상을 더 깊이 보고, 풍부하게 경험하는 능력이기도 하다. 하지만 현실은 예민한 사람들이 편히 살기에는 다소 가혹하다. 특히 요즘 세상은 "예민하지 않은 사람들도 불안하게 만드는 환경"이다.
독일 대학생들은 실용적이고 독립적이라는 이미지가 강하지만, 사실 그들도 꽤나 불안하다. 독일 언론에서도 대학생들의 불안 증가에 대한 보도가 자주 나온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독일 대학생들의 60%가 심각한 스트레스를 경험하고 있으며, 25%는 정신 건강 문제로 상담을 받은 적이 있다.
그렇다면 독일 대학생들은 무엇 때문에 이렇게 불안할까?
독일 대학은 비교적 자유로운 학습 분위기를 갖고 있지만, 시험과 과제 난이도는 결코 만만치 않다. 특히 구술시험(Mündliche Prüfung)은 학생들에게 공포의 대상이다.
교수 앞에서 일대일로 시험을 본다고? 발표 불안이 있는 학생들에게는 악몽과도 같다. 구술시험이 학생들에게 극심한 스트레스를 주는 이유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예상 질문을 아무리 준비해도 교수님들은 마치 마법처럼 새로운 질문을 창조해 내는 능력을 가지고 있어, 학생들은 늘 예측 불가능한 상황에 놓인다. 게다가 친구들 앞에서 발표하는 것도 벅찬데, 교수님과 일대일로 마주 앉아 쉼 없이 질문 세례를 받는 것은 정신적으로 탈진할 만큼 부담스럽다. 무엇보다 필기시험은 답을 적고 제출하면 그만이지만, 구술시험은 교수님의 실시간 반응을 고스란히 마주해야 한다. 교수님의 미묘한 표정 변화 하나가 학생들의 멘탈을 순식간에 나락으로 떨어뜨릴 수 있는 것이다.
사회학 전공 아나는 이렇게 말했다.
"몇 주 동안 준비했지만 시험장에서 머리가 하얘졌어요. 교수님이 계속 꼬리에 꼬리를 물며 질문을 하시는데, 점점 숨이 막혔어요."
정치학 전공 루카스도 한마디 덧붙였다.
"정치학 시험에서 주저하면 바로 탈락이에요. 자신 없어도 자신감 있는 것처럼 말해야 하는데, 그게 너무 어려워요."
독일은 개인주의 문화가 강하다고 하지만, 대학생들 사이에서 비교는 여전히 존재한다. 성적이 공개되는 과목에서는 누가 더 좋은 점수를 받았는지가 자연스럽게 화제가 되고 같은 분야에서 친구들이 인턴십을 구하거나 논문을 발표하면, 자신이 뒤처지는 것 같은 불안감이 밀려온다."나만 아직 미래 계획이 없나?" "이러다 취업 못하는 거 아니야?" 같은 생각이 꼬리를 물게 되고 SNS를 통해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면서 불안을 느낀다고 응답한 학생이 40%나 된다고 보고되었다.
독일 대학의 특징 중 하나는 졸업이 정해진 기간 없이 유연하다는 점이다. 정해진 학점만 채우면 되니 천천히 공부하는 학생도 많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점이 오히려 불안을 부추긴다. "나는 언제 졸업할까?"
"졸업 후에 뭘 해야 하지?"졸업 후 1년 내에 취업을 하지 못한 학생들의 불안 수준이 평균보다 30% 높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이런 불안이 커지면, 기말고사 준비도 "이게 내 인생을 결정할 거야"라는 과장된 걱정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사실 나는 이 불안이라는 녀석을 온몸으로 체득한 살아있는 실험체다. 석사학위를 미국에서 하고 박사학위를 독일에서 했는데, 처음에 독일에서 박사 과정을 시작할 때는 천국일 줄 알았다. 학비가 안 드니까! 미국 유학때처럼 학비와 생활고에 시달려서 식빵에 케첩을 발라 피자라고 자기 최면을 걸으면서 끼니를 해결할 필요 없고, 버거운 공부 중에 몰래 알바를 하느라 고생하지 않아도 되니 독일 대학은 그야말로 학문의 전당이자, 지갑이 눈물 흘릴 일 없는 천국아닌가.
웬걸, 시작하고 나서 어마하게 후회했다. 독일 대학은 스스로 무대 앞 뒤 모든 것을 준비해야 하기에 혼자서 알아서 하지 않는 학생은 도태되기 정말 쉬운 시스템이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즉 입학부터 졸업까지 모든 스케줄 관리, 행정 관리를 비롯한 모든 일을 알아서 해나가야 하는 생존 리얼리티 프로그램으로 가는 길이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에 치열하게 고민하면서 자신의 앞날을 계획하며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내가 직접 게임의 룰을 만들면서 내가 만든 게임에서 계속 지면서도 버텨야 하는 생활이 계속되었다.
당시 나의 닥터아빠(닥터파더, 담당 교수, 어드바이저를 그렇게 부른다)는 나에게 "정말 훌륭한 인재가 나와 박사를 하게 돼서 너무 반갑다"는 형식적인 말 한마디를 뱉어내고, 내가 논문을 다 끝마치는 장장 6년의 세월 동안 내 논문에 대해 아무런 토도 달지 않았다. 물론 중간에 반 완성된 논문을 가져갔을 때 '이것으로는 박사 논문이 되지 않을 테니 포기하라'는 말을 한 적은 있다.
기막혔지만 일주일 동안 끙끙 앓고 특유의 회복 탄력성을 발휘해서 (나는 누가 밟아줘야 꿈틀하고 대역전 에너지를 발사하는 이상한 메조키스트다) 1년 만에 새로운 박사논문의 골자를 만들어냈다. 아마 침묵하고 있던 닥터아빠에게 박박 긁힌 나의 부족함에 대한 분노의 힘으로 생산력이 폭발한 모양이다.
그렇게 5년 동안 아무도 봐주지 않는 논문을 뒤집고 다시 쓰는 지옥을 맛보며 나는 수백 번 후회했다. "차라리 돈을 싸들고 미국으로 갔어야 했나?" 미국에서는 독일에 비해 천문학적 학비를 투척해야 하지만 적어도 교수님은 나를 만나주셨을 것이다. 내 미국 지도 교수님은 내 비루한 석사 논문도 세 번이나 불러서 같이 이야기해 주셨었다.
느리고 조용하고 아무도 관심 가져주지 않는 독일에서 애 둘을 키우며, 일을 병행하면서 담당 교수님의 지도를 받을 것이라는 착각과 더불어 시작된 나의 박사논문은 내 안에 불안 세포들을 엄청나게 증식시키면서 박사아빠와 약속한 2년의 3배의 세월인 장장 6년이 걸렸다. (3년은 노닥거리며 버릴 페이퍼 쓰느라 날렸고, 논문을 새로 쓰느라 꼬박 1년 더 걸리고, 또 다른 1년은 남편 따라 중국 가서 사느라 논문심사회에 참석 못해서 날리고, 마지막 1년은 출판하느라 스트레스로 인성 거지되고 간이 쪼그라드는 불안증폭으로 병원 가기 바로 직전에 겨우겨우 학위를 따냈다.)
결국 어떻게든 박사를 따고 나를 허허벌판에 버려뒀던 박사아빠에게 찾아가 당당하게 일자리를 내놓으라고 졸랐고, 아직도 그의 등에 빨대를 꽂고 살고 있다. 마지막에 나에게 그가 한 말은 아직도 등골이 오싹하다. "니 박사 논문은 순전히 너의 것이야...." (아 쓰면서도 욕 나온다. 그때의 고통이 고스란히 돌아와서) 물론 나의 담당 교수님은 학식 풍부 인성 짱이신 분이다. 마지막 논문을 냈을 때 그분의 가르침은 보석과 같아서 아... 이래서 하 세월이 걸려도 독일박사를 하는구나 라는 생각 및 감사의 마음이 진하게 들었다. 그제야 배웠던 것 같다. 독일 교육의 시스템을. 자기 스스로 일어나게 만들어주는 이 고약하게 어렵고 힘든 과정을 견디게 만드는 시스템을....
그래도 쓰는 과정에서 좀 봐주셨으면 더 빨리 끝나지 않았을까에 대한 생각은 늘 든다. 아마도 내가 나이 든 학생이라서, 내 토픽이 내 아이들에 관한 것이라서 더 나를 내치시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어쨌든 나의 소심한 복수는 교수님과 말 트기는 것으로 (혼자) 쇼브를 봤다. 독일에서는 교수와 말을 놓지 않지만 10살 밖에 차이 나지 않는 데다가 박사가 끝나면 우린 이제 동료라는 그의 말에 힘입어...
인고의 세월을 겪으며 나는 내 학생들의 불안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는 사람이 되었다. 학생들을 허허벌판에 내던지지 않으려고 애쓴다. 물론 이게 좋은 건지는 모르겠다. 독일 교육 시스템은 독립적으로 키우는 게 목표니까... 그래도 나는 학생들이 나처럼 미친 경험을 하지 않도록, 아니, 그들이 지나가고 있는 터널이 무엇인지 나도 알고 았다는 표현을 하도록 노력할 거다.
독일 대학에도 불안을 느끼는 학생들이 많다. 나의 역할은 이들에게 병을 주는 동시에 약도 주는 것이다. 병을 확실하게 주는 만큼, 약을 건넬 때도 확실하게 주고자 한다. 물론, 그들이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는 또 다른 문제이지만. 대학이란, 아니 인생이란 원래 그런 곳 아니겠는가?
다음 장에서는 수업 시작 전부터 불안해하는 학생들의 현실적인 이야기를 더 깊이 파헤쳐 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