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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맹 Oct 20. 2023

독일대학 한국학과 새 학기 첫날

프롤로그

교실에 들어서니 숨이 턱 막힌다. 한국어 정복의 열의와 기대감으로 벌겋게 상기된 45명의 학생이 2학년의 첫 수업이 시작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중급 회화 수업. 정원이 여덟 명에서 열두 명이면 딱 좋을 텐데 스무 명도 아니고 서른 명도 아닌 45명이 등록했다. 지난 몇 년간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학을 전공하고자 하는 학생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었지만 공교육인 독일 대학의 재정 상황은 (늘 그렇듯) 좋지 않다. 교사 수는 그대로인데 학생수만 무진장 늘었다. 한국인의 입장에서 보면 이렇게 많은 독일 학생들이 한국어를 전공하고자 하는 것은 자랑스럽고 매우 신나는 일이다. 하지만 45명의 학생과의 회화수업을 어찌 감당한단 말이냐. 배우겠다는 학생들을 집에 돌려보낼 수도 없고 우스운 계산이긴 하지만 90분 회화수업시간에 한 명의 학생에게 주어진 시간은 딱 2분. 돌아가면서 한 마디씩 하고 나면 두 바퀴 돌고 수업이 끝나버린다.


이 비대한 수업은 현장에 있는 내가 오롯이 감내해야 한다. 몇 학기를 고생스럽게 보내면서도 여전히 훌륭한 대책은 없고 그럭저럭 차선적 전략만 갖추었기에 매 학기 꽉꽉 차 들어오는 학생들을 보면 막막하다. 한국의 대졸자들도 취업 못해서 난리인 상황에 이 많은 학생들은 학업을 마치고 어떤 길로 가나. 이 대책 없는 시나리오에서 나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하나... 치열한 고민과 함께 매번 새 학기를 맞이하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나의 노력은 늘 턱없이 부족하다. 열정과 기대로 한 껏 달아오른 강의실을 가득 매운 학생들을 선생으로서 어른으로서 제대로 이끌어야 할 책임이 있다. 원어민이라고 아무렇게나 지절 된다고 수업이 거저 되지는 않기에.


인생의 절반 넘는 시간을 언어와 문화에 대해 남들 앞에서 잰 체하며 가르치는 직업을 가지고 살았고 지금은 독일 3개 대학에서 각각 다른 분야의 학문을 가르친다. K대학에서는 영어학과에 소속되어 언어학, 이중언어학, 다중언어학, 사회언어학, 이문화 커뮤니케이션 등을 가르치고, B대학에서는 한국어와 한국 언어학 수업을 하고, D대학에서는 한국어만 가르친다. 영어과에서 언어학 교사로 가장 오래 근무했지만 정식으로 소속되어 있는 곳은 한국학과이다. 참 이상한 자기소개이다. 독일 대학이 운영되는 방식이 한국과 달라서 딱히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기도 하지만 독일 내에서도 나는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이다. 영어학과와 한국어학과에서 동시에 언어를 가르치는.


한국어, 영어 두 개의 언어에 (잘하지 못하는) 독일어까지 세 개의 언어를 저글링 하며 가르치다 보니 나의 언어에 대한 레퍼토리는 얊팍하지만 다양하다. 그러다 보니 수업시간에 툭하면 다른 이야기로 줄줄 새어나간다. 언어의 이론에 대해, 아이들이 언어를 배워 나가는 과정에 대해, 가르치는 과정에 대해, 언어 사용자의 특성에 대해.... 혼자서 신나게 샛길로 떠나가는 나를 학생들은 절대로 말리지 않는다. 또 혼자 삼천포로 여행 가는구나. 샘, 다녀오세요!

 

실험적으로 2년간 영유아를 대상으로 다중언어 클래스를 만들어 직접 가르쳐 본 경험이 있다. 그러다 보니 영유아부터 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 대학생, 직장인 및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까지 다양한 학습자를 가르쳐 봤다. 하지만 현재 내 학생들처럼 언어에 대한 진솔한 애정과 문화에 대한 남다른 호기심을 가진 집단을 본 적이 없다. (이 점에 대해 BTS를 위시한 수많은 K pop 그룹과 엔터테인먼트 비즈니스 종사자 분들께 무한 감사드린다). 그래서 이들과 함께하는 수업 시간은 적쟎이 당황스럽다. 영어는 세계화된 세상에서 교육기관에서 반드시 가르치고 배워야 하는 언어이기에 배우고, 그 외의 제2 외국어들 역시 경제적 가치를 상승시키기 위해 배운다고 치자. 한국과 머얼리 떨어진 독일에서 학생들이 한국어를 배우는 이유는 그냥 '애정'이다. 물론 영어를 배우는 사람들 중에도 영어에 푹 빠져 사랑하기에 배우는 사람이 왜 없으랴. 하지만 학생들의 한국어 사랑은 이것을 배워서 독일땅에서 취업을 한다거나 (할 수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하는 경제적 혜택의 잠재적 가능성이 매우 낮은 상태에서, 정말 좋아서 배운다. 교사로서 이 얼마나 커다란 축복인가. 언어 습득에서 동기는 가장 중요한 성공요인이고 내 학생들은 이것을 톱클래스로 장착하고 교실로 들어온다.


그렇다면 이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것은 거저먹기여야 할 텐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 가장 큰 난관은 언어의 형상적 차이이다. 독일어와 한국어는 유형적으로 그 어떤 공통점을 찾을 수 없다. 한국사람이 일본어를 배우는 것이 독일어를 배우는 것에 비해 상대적으로 쉬운 것과 마찬가지로 독일 사람이 영어나 프랑스어를 빠른 속도로 배울 수 있지만 한국어나 일본어를 배우는 것은 8차원 별나라적 어려움이 따른다. 누구나 짐작할 수 있듯이 모국어에 장착되어 있지 않은 문법을 배울 때는 커다란 어려움이 따른다. 예를 들어 한국 사람이 처음 영어를 배울 때 명사마다 관사와 정관사(a, the)를 붙이는 것과 삼인칭 단수 동사에 s를 붙이는 것이 생소해서 습득하기에 어려움을 겪듯이 독일학생들에게도 자신의 모국어 문법에 존재하지 않는 높임말, 조사 기타 등등의 새로운 문법적 기능을 배우는 것은 무척 힘든 일이다. 교사로서 내가 할 일은 계통이 무진장 다른 독일어와 한국어 사이에 언어적, 문화적, 감정적 다리를 튼튼하게 놓아주는 일이다.  

  

낯선 말은 배우기가 힘들기에 학생들을 격려할 때 이런 말을 자주 한다. 외국어를 배우는 궁극적인 이유는 모국어의 세계에서 맛볼 수 없는 새로운 세상을 탐험하기 위함이고 그 탐험은 때로는 험난하지만 미지의 세계에 발을 들이면 생각의 지평을 놀라운 정도로 확장시킬 수 있다고... 나의 현란한 주술은 나노초 동안 학생들을 감동시키지만 수업이 시작되면 그 효과는 연기처럼 사라진다. (아마도 더 강력한 주술은 BTS에 대한 사랑으로 언어적 난관을 극복하는 것이리라.)   


문법 첫 시간에 조사를 집어 들었다. 중급 수업이니 매운맛(?)을 보여주기 위해. 한국어에서 0.05퍼센트 밖에 차지하지 않는 요, 요, 180개의 조사가 일으키는 망령의 정도는 대단하다. 먼저 학생들에게 우리말의 어순이 독일어 영어에 비해 자유롭고 유연하다는 다(?) 아는 사실을 재차 강조하며 워밍업을 했다. 여기서 벌써 몇몇의 학생들이 미약한 멘붕을 경험한다. 어순이 자유롭다니... '미나가 뱀을 먹었다'와 '뱀을 미나가 먹었다'가 모두 맞는 문장이며 같은 뜻이라고 하면 놀라는 학생들이 많다. 영어는 맨 앞에 나오는 명사가 주어이기에 첫 번째 문장에서는 미나가 뱀을 먹었지만 두 번째 문장에서는 뱀이 미나를 먹었어야만 한다. 단어가 나오는 순서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조사가 역할을 결정한다고 강조해서 설명하면 '정말 뱀을 먹어요?'로 딴지를 거는 학생들도 있다. 그러면서 문화마다 무엇을 먹고 안 먹느냐의 주제로 삼천포로 빠진다 (차차 이야기하겠지만 독일 학생들의 강점은 토론이다!). 역으로 한국학생들이 영어나 독일어를 배울 때에 이 언어들이 얼마나 자비 없이 동사의 위치를 문장의 두 번째로 고집하는지 금세 알 수 있다. 독일어의 경우 심지어 동사를 둘로 잘라 한 조각은 두 번째, 나머지 조각은 문장의 마지막으로 빼내야 하는데 (포지찌온 쯔바이!) 초중급 레벨에서 동사를 맞는 위치에 배치시키는 것은 쉽지 않다. 독일 학생들은 한국어 단어들이 문장 속에서 자유롭게 자리 잡는 데에 뜨악하고 한국학생들은 동사를 문장에서 꼭 두 번째에 혹은 두 조각으로 나누어 두 번째와 문장의 마지막에 꼽아야 하는데 경악하니 1대 1이다. 어찌 되었든 이렇게 정신 무장을 먼저 시키고 난 후에 조사의 임무에 대해 알려주면 훨씬 더 이해가 빠르다. "조사와 함께라면" 체언이 어디에 있더라도 문장 내에서의 기능과 미묘한 뜻, 다음 말과의 관계를 점지해 준다고. 그래서 조사는 한국어에서 차지하는 포션은 작지만 문장 내에서 매우 권세 있는 단어라 알려주니 다들 열공모드 탱천하여 교실 천장을 뚫을 것 같은 배움의 열기를 보인다. 그래 오늘, 조사를 조져보자!


격조사, 보조사, 접속조사... 의미 없는 리스트와 예문의 남발로 정 떨어지게 만들지 말고 학생들을 모두 한 배에 태워 노 저어 가야만 이 수업이 성공한다. 격조사부터 스토리에 담아 종류를 열거하면서 예문을 소개했다. 한참 설명하다 보니 여기저기서 한숨이 터져 나온다. 왜 이렇게 많냐고. 안다 안다 너희들의 고충을. 이럴 때마다 학생들에게 날리는 펀치 한방이 있다. 독일어 배울 때 여성, 남성, 중성의 관사가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아냐고. 이것은 학생들이 새로운 문법의 조잡함에 힘들어할 때마다 내가 늘 써먹는 무기이다. 너무 많이 써먹어서 매번 미안하지만 슬쩍 말을 꺼내면 바로 수긍한다. 언어에서 명사가 차지하는 비율을 생각해 볼 때 독일어 관사로 좌절하는 외국인들을 생각해 보면 한국어에서 꼴랑 0.05 퍼센트를 차지하는 조사에 이렇게 마음 상하면 안된다 도닥여 줬다. 착한 학생들. 다시 차분히 조사를 배우는 모드로 돌아선다.


서로의 모국어가 가진 배우기 어려운 점들로 달래고 협박하고 즐겁게 밀당하면서 또 한 학기를 보내리라. 아무리 까다로운 한국어 문법이 나온다 하더라도 협박해서 잘 가르칠 승산이 있다. 적어도 단어를 배우면서 여자인지 남자인지 중성인지까지 함께 배워야 하는 골 때림은 한국어에는 없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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