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국적 기업에서 소통과 협업 기술
독일교포신문 11월 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문화는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과 행동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의사소통 하는 방식, 다른 사람과 협업하는 방식을 비롯하여 근무 중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는지까지도 자신이 속한 문화적 배경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23년간 다국적 기업의 컨설턴트로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앞으로 여러 화에 걸쳐 문화적 배경이 다른 사람과의 효율적인 의사소통과 협업 기술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특히 독일어권 비즈니스 파트너를 가진 한국기업이나 독일회사에서 일하는 한국 직원들이 겪을 수 있는 경험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엮어 갈 것이다.
요즘 한국의 젊은이들 가운데서 심리검사의 도구인 MBTI (Myers-Briggs Type Indicator)를 이용해 사람의 성향을 파악하는 것이 유행이다. MBTI는 사람의 성격 유형을 외향적(E)인지 내향적(N)인지, 감각(S)이 먼저인지 직관(N)이 먼저인지, 사고(T)를 우선하는지 감정(F)을 우선하는지, 판단형(J)인지 인식형(P)인지를 따져 16가지로 나누어 설명한다. 성격을 지나치게 단순화한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자신과 타인의 성향을 명쾌하게 설명해 주기 때문에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 빠른 시간 안에 서로를 파악하고 소통하는 도구로 애용되고 있다.
기업에서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서 문화적 배경이 다른 사람들의 행동방식과 사고방식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파악하는 데에도 이와 비슷한 척도를 사용한다. 문화차이에 대한 연구는 에드워드 홀(Edward T. Hall), 찰스 햄덴 터너 (Charles Hampden-Turner), 폰스 트롬페나스 (Fons Trompenaars), 게르트 호프스테드 (Geert Hofstede)등의 인류 및 사회학자들에 의해 1970년대부터 싹터 1980년대를 기점으로 확장되고 발전하기 시작했다. 개인의 성격을 테스트하는 MBTI와 같이, 문화도 그 문화권에 속한 사람들이 선호하는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이 있고 이것을 특징적 차원으로 구분할 수 있다는 것을 찾아낸 것이다. 한 차원 더 나아가 이 문화차이를 수치화시켜 척도를 만들었고 이를 통해 한 사회의 문화가 그 구성원의 가치관에 미치는 영향과 행동의 연관성에 대해, 나아가 특정 문화권의 사람들이 가지는 경향까지 알게 되었다.
현재까지 가장 영향력 있는 이론은 호프스테드 (Geert Hofstede)의 문화차원 이론(cultural dimensions theory)이다. 호프스테드는 1967년부터 1973년까지 현재의 구글과 같이 거대 다국적 기업이었던 IBM의 70개국 이상의 직원을 대상으로 그들의 문화적 배경이 업무 가치관과 직업 행동에 끼치는 영향에 대해 조사하였다. 그 결과를 분석하여 최초로 문화 간 상이점을 수치화해 내었고 사회과학분야의 빅데이터로 불리는 이 가치관 조사는 비교문화심리학, 국제경영학, 문화 간 의사소통 등 다양한 분야의 연구에서 이론적 토대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
문화차원 이론은 문화 간 연구 분야의 중요한 자산으로 문화 사이의 가치관뿐 아니라 사회적 신념 등 다양한 문화적 요소에 대한 연구를 촉발시켰다. 다만 초기의 이론은 국가=문화라는 단순한 개념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이기에 21세기의 사회에서는 그대로 통용될 수 없다. 구체적으로 말해서, 한국의 직장 문화를 ‘집단적 성향이 강한 문화’라고 확언할 때 여러 가지 문제점이 따른다. 첫째, 한국사람들이 모두 집단적인 성향을 가졌느냐. 그렇지 아니하다. 한국 사회 내에도 문화의 변동이 심해서 요즘 MZ 세대들은 개인적 성향을 가지고 있다. 개인적 성향을 지닌 개인의 숫자만 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기업문화도 빠르게 바뀌고 있다. 예를 들어 젊은 리더들이 이끄는 스타트업은 집단성향을 탈피해 가려 애쓰기 때문에 한국의 모든 기업이 집단성향을 가졌다고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둘째, 과거의 ‘국민’, 예를 들어 ‘독일인’이라는 개념 역시 현대 사회에서는 그리 단순하지 않다. 부모 중 한 사람이 터키인이고 한 사람이 독일인인 경우, 독일인인가? 아니면 터키인인가? 하는 문제도 있고, 독일에 이민 온 자들을 모두 독일인에 포함한다면 독일에 얼마나 오래 살아야 독일인이라 부를 것인가? 의 문제도 있으며, 독일 여권을 가진 사람을 독일 사람으로 치자면 여권을 여러 개 가진 EU의 수많은 시민들의 국적은 무엇인가? 등등 국가와 국경 개념이 상대적으로 약해진 현대에는 국가=문화라는 단순한 개념은 더 이상 들어맞지 않는다.
그러기에 최근 다국적 기업의 효과적인 의사소통을 위하여 사용되는 컨설팅 이론은 국가 간 특징을 비교한 결과를 절대적 기준으로 삼지 않는다. 대신 직장 내에서 개인들의 문화성향을 조사하여 비교분석하는 방법을 쓴다. 복잡한 현대 상황에 맞게 지나치게 단순화된 부분을 보완하여 한국사람 대(vs) 독일사람의 개념이 아닌 각각의 회사가, 조직이, 팀이 가진 문화를 다각적으로 보고 거기에 개인의 성향까지 함께 분석해서 효율적인 소통방법과 협업방식을 추출해 낸다. 이 방식은 다른 구성원 (즉 직장동료 및 상사)과의 잠재적 갈등구조와 문제점의 해결법을 찾아 주기도 한다.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일하는 직장에서는 불필요한 문화적 오해를 피하고 효과적으로 일하기 위해서 상대방의 문화적 선호사항을 잘 알고 동시에 자신의 성향을 잘 파악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직장에서 업무 하는 방식이 문화적 배경에 따라 어떻게 다를 수 있는지를 파악할 때에 크게 3가지 차원으로 볼 수 있다. 첫째는 다른 사람들과 의사소통하고 협업하는 방식, 둘째, 생각하는 방식, 셋째, 자신의 정체성을 만드는 방식이다.
먼저 다른 사람들과 ‘의사소통하고 협업하는 방식’에서 독일 사람과 한국 사람의 일반적인 경향의 차이점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거듭 강조하지만 이것은 경향분석이지 모든 사람이 그렇다고 단정하는 것이 아니다. 개인적인 분석은 구체적인 컨설팅이 필요하다). 의사소통에 대한 문화적 차이를 보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하위 요소를 살펴야 한다. 첫 번째 하위요소는 시간개념으로 업무를 함에 있어 시간을 고정불변의 것으로 보느냐 아니면 유동적인 개념으로 보느냐이다. 구체적으로 말해서, 미팅시간을 얼마나 잘 지키느냐, 보고 제출의 기한을 잘 맞추느냐 등이다. 시간을 고정적인 것으로 보고 딱 맞추어 근무하는 직원은 그렇지 못한 사람들과 업무 할 때 스트레스를 받는다. 5분, 10분 미팅에 늦는 상대에 대해 심기가 불편해질 수 있다. 게다 이러한 행동이 반복되는 경우에는 문제가 커진다. 반면에 시간과 약속을 유동적을 보는 직원이라면 3,4분 지각에 대해 불만을 갖는 융통성 없이 근무하는 파트너의 빡빡한 태도에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독일에서는 업무뿐 아니라 개인적 약속도 시간을 엄수해야 한다. 회의를 계획했다가 없애기를 반복하거나 회의시간을 갑자기 뒤로 미루거나 하는 행동은 진지하고 프로답지 못한 행동일 뿐 아니라 무례한 행동이다. 여러 명의 간부들이 함께 하는 한독 회의에서 대부분의 한국 직원들은 칼 같이 시간을 맞추어 들어오지만 간부들이 늦게 들어오는 경우가 있다. 한국 사람들에게는 당연하게 보일 수 있지만 독일직원들의 눈에는 다른 모든 사람들을 기다리게 만들면서 늦게 들어오는 한국 간부들의 태도는 무례하게 보인다. 10명의 아랫직원들이 시간을 지켜 들어온다 하더라도 간부직원이 시간을 지키지 못해서 미팅이 제시간에 시작되지 못한다면 한국 사람들이 시간을 못 지키는 것으로 각인될 수 있다. 이렇게 시간의 엄수에 대해 업무파트너가 상반된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 협업하는데 어려울 뿐 아니라 크게 감정적 에너지가 들기에 결코 작은 문제가 아니며 더 나아가서는 서로 신뢰를 구축함에 있어 커다란 방해요소가 되기도 한다.
두 번째 하위 요소는 과업 지향적(doing)인가 아니면 상태 지향적(being)인가 이다. 예를 들어 줄넘기를 한다라는 행위 (doing)는 몸이 건강해지는 상태 (being)나 스트레스가 풀리는 상태(being)를 만들기 위함이다. 정리를 한다는 행위(doing)는 쾌적한 환경이라는 상태(being)를 만들기 위해서 하는 행위이다. 어떤 행위를 하든 특정한 상태를 만들기 위해서 해야 하는 것인데 사람에 따라 행위에 더욱 초점을 맞추어 업무를 하는 사람과 상태에 더 초점을 맞추어 업무를 해서 실행력이 떨어지는 사람이 있다. 이렇게 상반된 경향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일할 때 둘 사이에는 갈등이 생긴다. 이메일만 주야장천 보내는 것이 업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나 내가 할 일만 체크리스트에서 지워 남에게 넘기면 자신의 일은 끝났다고 생각하는 경우 행위에 집착해서 목표한 상태가 제대로 이루어졌는지 책임지지 않은 경우이다. 반면에 원하는 상태는 정확하게 알고 있지만 그것을 이루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목적은 이루어질 수 없다. 과업중심형 문화 (doing)가 더 효과적이냐 상태중심형 문화 (being)가 더 효과적이냐라는 판단은 옳지 않다. 업무의 사안에 따라 그 둘 사이에 균형이 이루어져야만 좋은 성과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즉 무슨 일을 하든 그 일이 어떤 상태를 만들기 위해서 하는 것인지 인지하고 있어야 하고, 반대로 성과목표 (즉 상태)를 인지했으면 그것을 위한 행동을 취해야만 이루어낼 수 있다. 독일 및 서양 문화는 과업중심(doing) 경향이 더 강하다. 그래서 상태중심형(being)인 한국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독일사람들의 일하는 모습이 그저 답답하게 체크리스트를 지워나가는 과정으로만 보인다. 근시안적인 태도로 자신의 일만 하기에 급급하게 보일 수 있다. 반면에 독일 사람들의 입장에서 한국사람들은 해 내는 일도 별로 없이 자리에 앉아 시간만 때우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 상태는 인지하고 있지만 그에 상응하는 일을 체계적으로 꾸준하게 해내는데 미비하게 보인다.
이 두 가지 상이한 하위요소, 즉 시간에 대한 다른 개념을 가지거나 과업중심인지 상태 중심인지의 경향이 상반된 파트너와 함께 일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일단 가장 중요한 것은 업무에서 서로의 경향차이를 깨닫는 것이다. 이것이 성향의 차이라고 생각하지 못하면 서로 헐뜯고 감정적으로 대립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일단 이것이 개인의 성향뿐 아니라 서로가 자라온 문화의 차이에서 일구어진 격차라는 것을 알게 되면 교양 있고 예의 바르게 해결하는 방법을 모색할 수 있게 된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