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좋은 아빠일까?
겨울이 끝나간다. 정확히는 겨울방학이 끝나간다.
40대에도 방학이 있다. 대학강사인 까닭이다. 다만 학생이 아닌 관계로 방학이 반갑지만은 않다. 가장 큰 이유는 주 수입이 끊기는 까닭이다.
매 학기 4개월간 강의하고 2개월 방학을 반복한다. 계절학기 강의가 없다면 1년에 4개월은 강의가 없다. 숨만 쉬고 있어도 나갈 돈이 많은데 한 달만 수입이 없어도 무척 걱정스러워진다. 강사법 개정 이후 학기 준비 및 마무리 업무를 인정해 줘서 방학 때도 약간의 강사료가 나오지만 생활하기에 부족한 게 사실이다. 그렇다고 학기 중에 풍족한 것도 아니고 임용이 장기간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나는 이 일을 좋아한다.
경제적인 문제를 강의 외 수입과 비축한 돈, 또 아내의 육아휴직급여, 부모급여 등으로 어느 정도 충당할 수 있기에. 강사 일이 재밌다. 지속적으로 연구하고 경험하며 축적한 지식과 정보를 적절하게 제공하는 일이 재미있다. 또 좋은 강의평가를 받으면 뿌듯하다.
물론 요즘 대학생은 내가 대학생일 때와 여러 면에서 다르다. 대학문화와 시대배경도 그렇고. 다양성의 범위가 더 넓어졌다고나 할까? 강사 역시 달라졌다. 요즘은 강의계획서 모니터링도 받고, 강의 중간/최종 평가도 받는다. 중간시험 피드백과 세부 평가내역 공개, 종강 후 강의품질개선을 위한 CQI 보고서도 작성해야 한다. 불과 몇 년 사이에 강의 외 업무가 늘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학생 입장에서 모두 누려야 하는 권리라고 생각한다. 다만 강사 입장에서는 적응기가 필요했다.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도 당연한 권리라는 생각을 하니까 불만 대신 빠르게 적응할 수 있었다. 한동안 대학을 떠났었기 때문에 걱정스러운 마음도 있었는데 다행이었다. 역시 나와 잘 맞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결정적으로 강사 일의 여유 시간이 컸다.
9시부터 6시까지 출퇴근하는 일이 아니라서 상대적으로 시간 여유가 있다. 또 여러 학생을 상대하기는 하지만 직장 내 인간관계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덜하다. 10개월 아기를 키우는 내향아빠 입장에서 너무나 매력적인 조건이다. 그래서 다른 일을 하다가 아이의 탄생과 맞물려서 복귀한 것이다. 정말 잘한 선택이었다.
만약 내가 전일제 근무를 해서 아내가 육아와 가사를 도맡았다면 너무나 힘들어했을 것이다. 당연히 아내가 힘들면 나도 힘들 테고. 무엇보다 육아의 모순을 이해하지 못했으리라. 하루종일 아이를 돌보며 할 일이 어찌나 많고 피곤한지, 그러면서 행복한 (찰나의) 순간순간이 교차하는지 결코 몰랐을 것 같다.
아이를 갖기 전에 먼저 경험한 지인에게 육아가 어떠냐고 물어봤을 때 왜 묘한 표정을 지으며 명쾌하게 답을 못했는지 이제는 안다. 경험해보지 않으면 모르는 그런 세계이며, 행복과 괴로움이 공존하는 모순으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다만 생각해 볼 질문은 '아빠와 엄마가 공동육아하는 게 무조건 좋은가?'이다.
특히, 우리처럼 '내빠외마'라서 성향이 다른 경우 괴로움이 더 커질 수 있다. 우리도 갓난아기 시기에는 다투기도 했다. 생각이 다른 데다가 잠이 부족한 탓에 굉장히 예민했다. 다행히 지금 우리 부부는 시행착오를 거치며 어느 정도 합이 맞다.
역할 분담을 정리해서 주 양육자 역할은 아내가 맡고 있다. 그래서 아내는 아침 6시 반쯤 일어나서 하루를 시작한다. 아이가 일어나는 시간에 맞춰서. 규칙적으로 정해진 시간에 아이를 깨우고 씻기고 먹인 다음에 심신의 성장에 도움이 되는 놀이교육을 한다. 나는 8시쯤 일어난다. 아내가 배고플 시간이라서 아침식사를 차리며 일과를 시작한다. 점심과 저녁 식사도. 그렇다. 내 주 역할은 아내를 챙기는 것이다.
매일 세끼 아내의 식사 챙기기. 또 심신의 건강 챙기기. 각종 집안 일과 육아도 병행한다.
그중에서도 워낙 제약이 많은 상황이라 먹는 거라도 잘하자는 주의라서 중요하게 여긴다. 또 아내의 말을 잘 듣고 대화하려 애쓴다(육아하는 엄마가 힘든 이유 1위가 말상대 부재임을 알고 나서 더 그렇다). 작은 일에도 칭찬하는 노력도 한다. 집돌이인 내가 날씨 좋은 오후라면 무조건 외출을 생각하는 이유 역시 아내가 좋아하기 때문이다.
육아가 그렇듯이 특별히 티 나는 일을 한 것도 아닌데 하루가 저물어간다.
아이가 잠든 밤이면 내 야근은 시작이다. 40대가 되면서 자정 넘을수록 급격히 피곤해진다. 다음날 일어나기도 힘들다. 그래서 샤워하고 작업실에 앉으면 대략 4~5시간 일할 수 있다. 짧다. 부족하지만 오롯이 혼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너무나 감사하다. 초집중해서 일을 처리하거나 시간을 쪼개서 활용하는 점은 좋다. 하지만 이따금씩 몸도 피곤하고 마음이 힘들 때가 있다. 나도 쉬고 싶고 자고 싶은데 그 시간이 아까워 새벽까지 혼자 일할 때 서글프다. 그래도 나의 사정을 이해해 주는 아내 덕분에 8시까지 잘 수 있다.
반복된 일상이 더디게 지나가는 느낌이었는데 어느덧 겨울방학이 끝나간다.
정성스레 강의계획서를 입력하고 강의준비 중이다. 틈만 나면 연구계획서와 논문 및 저서도 집필한다. 3월로 향할수록 점점 초조한 마음이다. 개강하면 더 바빠질 텐데, 강의가 있는 주 3일은 아내가 독박육아인데 걱정스럽기도 하다. 얼마 남지 않은 방학 시간을 끝까지 잘 살려야만 한다.
피 같은 돈이 끊겨도 방학이 싫지 않았던 이유는 결국 시간 때문이다.
내향아빠의 홀로 충전하는 시간, 아내랑 아이와 함께하는 일상 모두 방학이라서 가능했다. 돈을 덜 벌어도 아이와 함께한 첫 방학이라서 뜻깊다. 하루가 다르게 놀라운 성장 중인 아이를 실시간으로 지켜보는 매 순간이 어찌나 값진지! 아마도 내 생애 가장 피곤하고 단조롭지만 소중한 겨울방학이 끝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