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내향아빠 외향엄마(내빠외마)

나는 좋은 아빠일까?

by 파비

MBTI를 참고만 한다.


혈액형으로 사람을 유형화하는 것보다 설득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모든 인간 유형을 MBTI로 구분할 수 없다고 본다. 우선 몇 가지 질문으로 개인의 성격, 성향을 제대로 파악하기 어렵다. 다음으로는 인간은 흔들리는 갈대 같은 면이 있어서 시시각각 변하거나 변수가 많다.


그럼에도 MBTI는 꼭 필요한 인간관계에서 이해의 폭을 넓혀주는데 기여한다. 부부관계가 대표적이다.


나는 ISTJ다. 해당 성향을 풀이한 내용이 모두 맞지는 않으나 납득하는 부분도 많다. 내향적이고 예민한 성격은 세월의 풍파를 겪으며 인간관계에 대한 실망과 회의감이 영향을 미친 부분도 있다. 또 강의와 연구를 업으로 삼으며 글자 하나도 꼼꼼하게 살피는 직업병의 영향도 받았다.


나의 선천적인 본성이 ISTJ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 알 수 없다. 중요한 점은 지금 내가 그런 유형의 인간이라는 점이다. 유형을 논하면 아내가 나와 참 반대의 인간이라고 생각했다.


우선 외향적이다. 직업적 특성도 있지만 여러 사람과 어울리는 사교적인 성격이다. 집에 있는 것보다 나가는 쪽을 선호한다. 그래서 코로나19 사태 때 너무 힘들어했다. 반면에 나는 집에서 잘 놀고 일도 한다. 아내는 집에서 일이 잘된다는 나를 여전히 신기하게 본다.


아내는 뭔가 생각을 하면 바로바로 실천하는 행동파다. 상대적으로 느긋한 나를 답답해할 때가 있다. 한 번은 이사할 집을 몇 군데 봤는데 아내는 그 안에서 선택하고 싶어 했다. 집 보러 다닐 여유가 없긴 했다. 그럼에도 나는 중요한 일인 만큼 조금 더 집을 보자고 강하게 주장했다. 결국 막판에 본 집으로 이사했고 우리 부부는 만족스러워했다. 또 아내는 계획적인 편이다. 여행 갈 때 성향 차이가 확연히 드러난다. 난 중요한 목적지와 동선 외에는 여유로운 일정과 우연의 여지를 남기는 편이지만 아내는 다르다. 계획적인 면도 좋지만 문제는 자기 계획대로 실행되지 않았을 때 힘들어한다.


같이 살다 보면 매일 하는 행위 중에 식사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식구라는 말이 괜히 있겠는가.


특히 우리는 하루 세끼를 대부분 같이 먹기 때문에 더 그렇다. 만약 식성이 다르다면 얼마나 힘들겠는가? 사실 우린 식성이 다른 편이다. 나는 자극적인 맛을 불호하며 심심하게 먹는 편이다. 그리고 안(못) 먹는 음식이 꽤 있다. 아내는 그 반대다. 홍어도 먹을 줄 안다. 초반에는 웬만한 음식마다 매운 고추를 추가해서 먹는데 빨간 라면에도 그럴 때는 혀를 내둘렀다.


개인적으로 튀긴 닭, 양념통닭을 무척 좋아하는데 아내는 지코바 같은 구운 닭을 선호한다. 최근에 처음으로 각자 좋아하는 치킨을 시켜서 한 번에 먹는 호사를 누렸는데 너무나 행복했다. 돈이 많으면 적어도 치킨 취향 때문에 싸울 일은 없겠구나 싶었다. 또 한 가지 특징적인 게 위스키다. 우린 위스키를 좋아하는데 나는 온 더락, 아내는 스트레이트를 선호한다. 그렇게 마시면 같이 잔을 부딪혀도 위스키를 먹는 양이 다르다. 더 빨리 취하기도 하고.


소소한 부분부터 중요한 부분까지 우린 참 다르다.


그게 연애 때부터 결혼하고 나서도 많이 싸운 이유인 듯하다. 다툴 때면 아내는 불, 나는 얼음 같다. 나는 화가 나면 말이 없어진다. 그런 상황에서 내뱉는 몇 마디는 고드름이나 우박 같다. 소리 지르거나 욕하는 것도 아닌데 아내는 상처를 많이 받았다고 한다. 물론 나도 아내의 불 같은 성격에 화상을 입기도 했다.


우린 꽤 심각했고 많이 힘들었다. 그때 접한 게 MBTI였다.


저 인간이 왜 저러나... 서로 이해하지 못하며 불만이던 우리 부부는 MBTI를 해봤고 놀랍게도 비슷한 유형인 것을 알게 됐다. 아내는 E와 I를 오가는 STJ였던 것이다. 대수롭지 않은 MBTI도 우리가 처한 상황에서 중요한 의미로 다가왔다. 서로 다르게만 생각했던 배우자가 알고 보니 비슷한 인간이었던 것이다. 해당 유형의 특징을 살펴보면서 상대를 더 이해하고 배려하기 시작했다. 돌이켜보면 많은 부분이 반대로 보였지만 종교, 정치성향, 경제관, 음주가무 취향 등 굵직한 부분에서 일치하기도 했다.


갈등을 줄일 수 있는 실마리를 찾았다.


당연히 서로가 비슷한 유형임을 알게 됐다고 해서 갑자기 갈등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가령, 아이를 갖기 직전에 큰 걱정이었던 부분은 육아방식 차이였다. 서로의 교육관은 특히나 이견이 컸다. 아이가 생긴 지 10개월인데 내 기준으로 아내는 개방적이고 나는 보수적인 편이다. 나는 감기 걱정으로 겨울에 가능한 나가지 말자는 주의고, 아내는 아이 옷을 따뜻하게 잘 입혀서 나가자는 입장이다. 또 문화센터, 방문체험수업 등을 활용하길 원하는 아내와 달리 나는 부모가 더 잘해주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내향아빠와 외향엄마의 어쩔 수 없는 생각 차이가 존재한다.


처음에는 나와 다르기에 불만스러운 아내의 언행이 많았다. 그러면서 다시 갈등과 시행착오를 겪었다. 다행히 이전에 경험한 학습효과가 있어서 우리가 동맹을 넘어 혈맹 관계인 상황을 직시했다. 다툼은 줄고 화해는 빨라졌다. 매일 힘든 육아와 가사의 현장에서 부부 갈등은 서로를 더 힘들게 할 뿐이다. 그동안 다투며 서로를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는 점도 도움이 됐다.


생각이 다르더라도 일단 서로를 존중하고 말을 예쁘게 하기 시작했다. 상대를 통해서 할 일은 존댓말과 부탁조로 말하고 '~용'체를 쓰기도 한다. 커피 내려주세용. 무엇보다 '다름'과 '다양성'에 대해 많은 생각을 시작하게 됐다.


얼마 전에는 아이를 어린이집 보내는 시점 때문에 이견이 있었다.


개인적으로 아쉬운 마음이 있지만 아내의 뜻을 따르기로 했다. 그쪽이 아이에게 더 유익하다고 판단한 까닭이다. 내 생각, 감정보다 중요한 건 아이니까. 그러다가 훗날 내 생각, 감정을 앞세우는 날도 있을 듯하다. 아내도 항상 옳은 판단만 할 수는 없을 테니 마찬가지 아닐까? 상호보완이 필요한 부분이다. 그리하여 '내빠외마'의 다른 성향을 좋아하기로 결심했다. 별의별 인간이 존재하는 세상에 대한 아이의 내성을 키우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아서다.


요즘 소원은 아이가 우리 부부의 장점만 닮길 바라는 것이다.


꿈이 이뤄지려면 먼저 부부가 소통하고 행복감을 조금이라도 가져야 한다. 그래야 상호 존중하고 보완하며 아이에게 좋은 언행으로 모범을 보일 수 있다. 행복감은 생각하기에 따라서 얼마든지 찾을 수 있는 것이다. 난 딸들(?)로부터 충분한 행복감을 느낀다(갈등을 줄이는 방법으로 아내를 큰 딸로 생각하며 대하기도 한다).


더하여 겉만 화기애애하지 말고 진심으로 사랑을 넣기. 어렵지만 오늘도 "고생했어요~잘자용"이라는 애정 어린 말로 하루를 마무리하려 한다. 사랑스러운 말 한마디부터 부부, 부모 관계의 시작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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