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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tthew Aug 31. 2016

파리에서 오리손까지

August 29th, 2016

시차때문일까? 아니면 화징실에 들락거리는 사람들 때문일까? 저녁을 먹고는 새벽1시에 깼다가 5시에 일어났다. 코고는 소리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었는데, 다행히 잠자는데 방해될 정도의 코고는 사람은 없었다.
어쩜 내가 크게 코를 골지 않았을까하는 걱정도 들었다.

새벽에 뭐라도 보일까하고 밖을 나가보니 어두운 밤 안개속이어서 어떤 것도 보이지 않는다. 산장 문틈으로 나오는 빛외에는 어떤 빛도 없는 완전한 어둠속에서 혼자만있다는 생각도 든다.
태양을 피하기위해 새벽 4,5시부터 걷는다고 들었는데, 피레네 산맥을 넘어서 부터는 나도 이런 어둠 속을 걸어다녀야 하겠지.

어제는 정말 정신없이 하루가 지나갔다. 새벽에 깨어 드골곤항에서 비아리츠 비행기를 타고, 비아리츠에 도착해선  버스를 잘못타 한번 헤메고, 다시 되돌아오는 버스를 타고 공항으로 다시와, 바욘역까지, 바욘역에서 다시 생장행 기차를 타고 ... 5시에 호텔에서 나와 12시가 넘어서야 목적지에 도착했다.

순례자 사무소에서 크레덴셜과 조개를 받고 오늘의 목표인 오리손으로 향한다. 사무소에서 반대방향으로 길을 잡는 바람에 1-2km를 더 걷긴 했지만 덕분에 생장의 성채를 볼수 있었다. 영화에서나 보던 중세로 돌아간듯한 마을을 걷는 느낌은, 박물관이나 억지로 예전것을 복원해 만든 것과는 확연히 다른 느낌이다. 지금도 사람들이 살고 있고, 이전의 삶의 방식을 크게 바꾸지 않고 살아간 것이 쌓여 빠르게 변하는 세상속에서 다른 가치를 만들어낸것이 아닌가 싶다.

예약한 오리손까지 오는 길은 8km정도로 이중 3-4km 정도는 경사가 이어지는 난구간이다. 양떼가 풀을 뜯어먹고 있는 초원이 펼쳐진 길을 걸어가며 처음엔 낭만적인 생각에 빠지지만, 끝없이 올라가다보니 낭만이고 뭐고 이 구간을 빨리 벗어나고자하는 생각에 자꾸 지도를 펼쳐보게된다. 한참을걸어올라온 길을 뒤돌아보면 넓은 시야로 양떼와 초원과 예쁜 집들이 어울어지는 풍경이 펼쳐져 있다. 올라온 과정은  힘들지만 힘들여 걸어온 것에 대한 보상이라도 되는듯하다.

숨을 헐떡이며 길을 걷다보면, 어느새 산 아래를 한눈에 펼쳐볼수 있는 곳에 있는 오리손 산장에 도착한다.
세요(알베르게나 성당에서 순례자에게 찍어주는 도장)를 받고나니  숙소안내와 식사시간을 알려주면서, 샤워용 코인을 준다. 5분이라고 해서 충분하다 싶었는데, 땀에 젖은 옷을 빨다보니 약간 시간이 부족하였다.

식당에 도착하니 맥주를 마시는 사람들이 손짓하며 부른다.  필 이라는 덩치 좋은 아저씨였는데, 세번째키미노라고 한다. 산티아고까지 가서는 다시 포르투갈길을 갈거라고 하는데, 걷는 거리가 1천 km라고 한다. 제임스 아저씨, 클라라 아주머니와도 이야기하는데, 서툰영어를 배려해서 천천히 얘기해주는게 고맙다. 산장에  한국인 나 혼자 뿐이라 약간은 긴장도 됐지만, 서툰 영어로 더듬거려도 뭐라 할 사람이 없으니 편한 면도 있었다.

6:30부터 저녁식사였는데,  다모이니 40-50명 정도 되었다.  카미노 기간동안 스페인어에 둘러쌓여 지내는 상상을 했지만 여기선 서로 영어로만 이야기하여 어느정도는 의사소통은 가능했다. 문제는 시끄러운 상황에선 우리말도 잘 안들리는데, 조용한 곳에서 들어도 알아듣기 어려운 영어여서  바짝 신경을 바짝세워야했다.  

비행기 안  순례 책에서 봤던대로  오리손 산장에선 자기 소개시간이 있었다. 여러 이유로 온 사람들을 본다.  생일을 기념하러, 딸과 엄마가, 부부끼리, 몇번째 방문하는 사람들도, 암을 치료하고는 ...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같은 길을 가야한다는 동질감을 서로 느끼게 되는 것 같다.

고역이면서도 한편으론 즐겁기도 한 식사를 마치고 식당밖을 나오자  산그늘 사이로 해가 들며 장관이 펼쳐진다.  날은 아직 밝았지만, 내일을 위해 일찍 잠을 청한다.

오리손에서 저녁을 먹고 나오니 구름사이로 마을쪽에만 햇볕이 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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