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오스터의 [빵 굽는 타자기]를 읽고
작가의 발가벗은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빵 굽는 타자기"라는 타이틀은 원래 제목인 Hand to mouth에 비하면 너무 고급스러운 제목이다. 우리말로 번역된 책 제목만 보면 고급스러운 빵 냄새가 물씬 풍기는 그런 느낌이지만, 책의 내용은 젊은 작가가 먹고 살기 위해 글을 쓰는 내용으로, 고급스럽기는커녕 막노동으로 하루하루 사는 노동자의 일기 같은 책이다.
"20대 후반과 30대 초반에 나는 손대는 일마다 실패하는 참담한 시기를 겪었다. 결혼은 이혼으로 끝났고, 글 쓰는 일은 수렁에 빠졌으며, 특히 돈 문제에 짓눌려 허덕였다. 이따금 돈이 떨어지거나 어쩌다 한 번 허리를 졸라맨 정도가 아니라, 돈이 없어서 노상 절절맸고, 거의 숨 막힐 지경이었다."로 시작하는 첫 부분은 이 책의 모든 내용을 설명한다. 어린 시절의 이야기로부터 시작해서 생계를 위해서 했던 많은 일들과 그 속에서 만났던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 속에서의 실수나 경험들, 심지어 파리에서 임질에 걸렸다는 내용까지 작가의 솔직함은 당황스럽기까지 하다. 아름다웠던 추억인 것처럼 포장할만하건만, 남의 뒷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자신을 발가 벗겨나간다.
폴 오스터라는 작가를 알게 된 것은 소설가 김영하의 <책 읽는 시간>이라는 팟캐스트 덕분이다. 약간의 불면증을 갖고 있는 나에게, 김영하의 목소리는 5분 이내에 잠들게 하는 기적의 수면제였다. 그런데, 폴 오스터의 소설은 수면제의 효과를 무력화시켰다. 평범한 이야기 같으면서도, 마치 환상인 듯 느껴지는 묘한 느낌의 스토리는 김영하의 목소리마저 극복할 수 있게 했다. 곧바로 전자책으로 폴 오스터의 소설들을 구입해서, 몇 권을 내리읽었던 것 같다.
폴 오스터를 검색하면, 미국의 대표적인 소설가로 "사실주의", "신비주의" 경향의 작가라고 적혀 있다. 사실주의인데, 신비주의라니... 이건 마치 어느 팀장이 얘기했다던 "디테일하지만, 너무 상세하지 않게"라는 말과 비슷한 느낌이다. 하지만, 폴 오스터의 소설은 매우 사실적이지만, 매우 신비하다.
빵 굽는 타자기를 보면, 이런 소설 작품을 쓴 폴 오스터의 가난한 시절을 만날 수 있다. 책에서는 무덤덤하게 적어내려 가지만, 가난하기 때문에 부랑인, 배안의 선원들, 예술가, 부유한 아마추어 작가,... 등 많은 사람들이 폴 오스터의 소설을 채운 인물들은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결국 내손에 쥐어진 돈은 단돈 900달러였다. 돈을 벌기 위해 책을 쓴다는 건 그런 것이다. 헐값에 팔아 치운다는 건 그런 것이다."
책의 마지막은 쓰다가 그만둔 것 같은 느낌으로 갑자기 마무리된다. 어떤 작품으로 작가로서 대성했다는 내용으로도 책을 마무리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냥 씁쓸한 푸념으로 글은 툭 끝나 버린다. 젊은 날 생계를 위해 글을 쓰며 지내온 모든 시간이 이 책의 결론일 텐데, 속물근성에 빠져 뭔가 특별한 엔딩을 기대했었나 보다.
책장을 덮으면서, 수많은 젊은 작가들이 이 책을 봤겠지라는 생각을 했다. 편의점에서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생계를 이어나가면서도,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펜을 들고 있는 작가 지망생들은 어떤 느낌으로 이 책을 봤을까 궁금해지기도 한다. 그래도, 그들 중에 내일의 폴 오스터가 있지는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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