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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좋은남편연구소 Jan 28. 2020

아내 앞에서 울던 날..

나는 진정한 용기란 '내가 누구인지에 대해, 그리고 내가 경험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그것이 좋든 나쁘든 솔직하고 당당하게 말하기 위해 필요한 내면의 힘과 진실함'을 아우르는 의미라고 생각한다. '진심에서 우러나 자기 생각을 말하는 것'이야말로 '평범한 용기'라고 생각한다. (나는 왜 내 편이 아닌가, 브레네 브라운 저, 24p)




저는 눈물이 없는 편은 아닙니다. 어릴 때는 혼나면 종종 울었고, 고등학교 시절엔 수학 문제를 풀기가 어려워 머리를 감으며 울기도 했고, 군생활 시절엔 교회에서 울었습니다. 그런데 사회생활을 하면서는 울어 본 일이 거의 없었습니다. 10 수년 전 몹시 따르던 선배가 퇴직한 날.. 울었던 게 마지막인 듯했습니다.


최근 몇 년 간 업무 스트레스가 적지 않았습니다. 업무량도 많았고, 저의 판단이 누군가에게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게다가 꼼꼼한 타입이 아니라서 '낙장불입'이라는 업무 특성이 스트레스였지요. 몇 년을 꽤 잘 버텼는데, 어느 날 터져버렸습니다.


잠자리에 들려고 누웠는데 갑자기 이상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날 외부에 보낸 제안서 내용에 문제가 있는 듯했습니다. 액수가 크지 않았고, 예외 조항에 포함된 내용이라 부서장께 자초지종을 보고하고, 상대방 측에 사과를 하면 해결될 수준이었습니다. 게다가 아직 그 실수가 사실인지도 확실치 않았지요. 그런데 갑자기 마음이 너무 불안했습니다. 머릿속이 비어있는데 복잡한 느낌이랄까요.


제가 불편하게 심호흡을 여러 번 하자 아내가 저를 불렀습니다. 왜 그러냐, 아프냐, 무슨 일이라도 있냐.. 물어보는 아내의 목소리를 듣고 고민이 되었습니다. 어차피 내용을 설명해도 잘 모를 텐데, 이야기해봐야 해결이 되는 것도 아닌데, 괜히 걱정만 시키는 것은 아닌가.. 그런데 아내에게 지금 나의 상황과 감정을 이야기하는 것이 맞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내니까' 말이죠.


아내에게 이야기를 하다가 울컥 눈물이 터졌습니다. 걱정되는 마음, 힘든 마음을 아내에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아내가 꼭 안아주고 토닥토닥해주고, 괜찮다, 문제없을 거다 라는 이야기를 해줬습니다. 문제는 전혀 해결되지 않았지만, 마음이 조금.. 아주 조금 편해졌습니다. 마음이 편안해진 부분은 '문제가 잘 해결될 거야'라는 것보다는 '아내에게 나의 이야기를 더 많이 할 수 있겠구나'하는 마음이었습니다.


매일 저녁 아내에게 그날 있었던 모든 일과 내 감정을 시원하게 말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감정적으로 어렵습니다. 하지만 용기는 근육 같아서 쓰면 쓸수록 강해진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경험이 조금씩 쌓이다 보면 좀 더 아내에게 많은 이야기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언젠가는 말이지요.


Small things often.


ps.

아내분들께 말씀드립니다.

만약 아내가 '당신이 그럴 줄 알았다, 내일 회사 가면 큰 일어나는 거 아니냐.. '등 비난이나 더 큰 고민을 안겨주었다면 아마도 저는 아내에게 그 후로는 어떤 고민도 이야기하지 않았을 겁니다. 혹시라도 남편이 작은 고민을 털어놓으면 '혼냄'보다는 '괜찮을 거야, 너무 걱정 말아, 당신은 잘할 수 있어, 이야기해줘서 고맙다' 같은 격려와 동감의 표현을 부탁드립니다. 아시잖아요. 남편들이 아이 같다는 것을..


* 몇 년 전 퇴근길.. 문득 내일이 두려웠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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