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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좋은남편연구소 Mar 01. 2020

만나고 헤어지며 성장하는 딸(feat. 튤립아, 안녕)

지난 월요일에 튤립 10송이가 집에 왔습니다. 보라색, 오렌지색, 노란색, 분홍색 등 색이 다양했지요. 아이는 그중에서 오렌지색 망고 튤립을 골라서 작은 화병에 따로 놓고서 '내 튤립'이라고 불렀습니다. 매월 꽃꽂이를 할 때마다 아이가 서운해하지 않도록 꽃 1~2송이를 따로 주곤 했지요. 아이는 그 꽃들을 '내 꽃'이라고 불러왔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한두 송이 시들기 시작했고, 어제저녁엔 딸아이의 꽃이 시들어서 운명을 다했습니다. 튤립이 있던 곳에는 원래 있던 목화솜 꽃을 다시 놓았지요. 아침에 일어나서 거실을 돌아다가 딸아이가 '어? 내 튤립은 어디 갔어요?'라면서 꽃을 찾았습니다. 그래서 어제 시들어서 버렸다고 말해줬습니다.

아이는 처음엔 아무렇지 않은 듯하더니 '창문을 보니까 눈물이 나네'라며 눈을 찌푸렸습니다. 그 순간 '아.. 말을 하고 버려야 했구나. 아이가 이별을 느끼는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아이에게 '튤립이랑 헤어져서 슬퍼?'라고 물어보자 아이는 잠깐 울먹이더니 '튤립 보고 싶어..'라며 아이가 울음을 터트렸습니다. 생각해보니 그 튤립은 아이가 처음으로 본인이 직접 고른 꽃이었습니다. 다른 꽃들보다 유난히 아꼈고요. 문득 30년 전에 소풍 가서 잡아온 작은 고기가 며칠 만에 죽자 옥상에 묻어준 어린 시절 기억이 났습니다. 혼자서 그 슬픔을 감당했을 제 어린 시절이 말이죠. 

훌쩍이는 아이에게 '아빠가 마음대로 튤립 버려서 미안해. 갑자기 헤어져서 슬프구나.. 앞으로는 '안녕'할 수 있게 해 줄게.'라고 하자 겨우 아이는 진정이 되었습니다. 그러더니 방으로 가서 튤립에게 그림 편지를 쓰더군요. 자신만의 '이별 의식'이랄까요. 자신의 감정을 잘 표현하는 것, 상대방의 감정을 잘 파악하는 것 그리고 그 감정을 때로는 다양한 방법으로 보여주는 것.. 아이의 마음이 건강하게 성장하게 도와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인데 쉽지는 않네요. (마치 회사에서 임원분 눈치 보는 것과 비슷해서 그럴까요. 하핫)


Small things often.


* 튤립과의 헤어짐을 예술(?)로 승화시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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