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건축학개론>은 여러 모로 흥미로운 영화입니다. 90년대 레트로 감성을 자극하는 음악과 영상뿐만 아니라 주연/조연 배우들의 연기 또한 훌륭했지요. 특히 '연애'라는 측면에서 소심한 20대 남성에게 <광식이 동생 광태>과 함께 추천하고 싶은 영화입니다. 대표적인 오답이 곳곳에 숨겨진 보석 같은 영화들이지요.
그중에서도 <건축학개론>에서 제 마음에 깊이 남은 것은 수지의 미모(응?)가 아니라, 교수님(김의성 분)이 학생들에게 제출하라고 하는 과제입니다.
첫 번째, 내가 사는 곳을 돌아다녀라.
두 번째, 내가 갈 수 있는 먼 곳까지 다녀와라.
세 번째, 내가 살고 싶은 곳을 그려라.
이 과제를 하다가 승민(이제훈 분)과 서연(배수지 분)은 만나게 되고, 함께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친구가 됩니다. 제가 이 과제들을 인상적으로 생각하는 이유는 우리의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요소(특히 나 자신을 발견하고 성장하게 만드는)를 생각하게 했기 때문이지요.
첫 번째 과제는 자신을 발견하는 일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잘하는 것, 못하는 것.. 아.. 나는 어떤 사람이구나, 아.. 나는 이럴 때 행복하구나.. 이건 자신에 대한 안다는 것은 '나'라는 기준을 세우는 일이지요. 이건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닌 다름의 문제입니다. 만약 '나'에 대해서 잘 모르고, 기준이 세워져 있지 않다면 모든 결정이 매번 어렵고 힘들고 아리송해집니다.
두 번째 과제는 세상을 향해서 자신을 시험하는 일입니다.
나를 안다고 해서 세상 모든 것을 아는 건 아닙니다. 이제는 우리 주변, 예를 들어 타인과의 관계와 다양한 환경에서 우리는 경험을 해야 합니다. 공부, 연애, 군대, 직장 등 우리는 다양한 경험을 통해서 성장을 합니다. 성장을 위해서 때론 용감하게 결정을 하고, 행동으로 옮겨야 할 때가 있습니다. 영화에서 두 사람이 버스 종점에 다녀오고, 춘천에 가듯 말이죠.
세 번째 과제는 목표를 설정하는 겁니다.
나는 이런 재능과 흥미가 있고, 세상은 이렇게 변하고 있으니... 나는 앞으로 이렇게 살아야겠다. 물론 나의 경험과 판단만으로 세상 모든 일이 해결되진 않습니다. 하지만 앞선 두 가지 과제가 어느 정도 해결되지 않은 채 무언가 진행되면, 우리는 다른 사람의 생각으로 다른 사람의 세상을 향해 뛰게 됩니다. 그런 삶은 결과에 상관없이 힘들고, 후회가 남기 마련입니다.
만약 전형적인 한국인의 삶을 산다면.. 세 가지 과제를 해결하는 것은 매울 어려울 겁니다. 하나도 제대로 하기 쉽지 않겠지요. 하지만 이제는 세상이 많이 바뀌었고 앞으로는 더 많이 바뀔 겁니다. 그래서 꾸준히 자신을 발견하고, 시험하고, 목표를 설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무언가 이루는 것도 좋지만 무엇보다 나 자신이 되기 위해 말입니다.
Small things often.
* 아마 제 딸아이가 생각하는 '살고 싶은 집'은 이런 느낌일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