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를 타면 기사님께서 경로를 물어보십니다. '알아서 가주세요'라고 하면 '네가 경로를 말하지 않으면 나는 가지 않겠다'는 느낌으로 경로를 취조(?)당하는 느낌을 받기도 합니다. 막히는 시간이라면 책임소재부터 괜한 오해까지 다양한 이유로 부담스러울 수 있지만 자정 즈음되면 어디로 가든 비슷한데도 답을 원하는 분에게는 "네비대로 가주세요."라고 대답을 합니다.
강남지역에서 중학생 아들을 키우는 지인께서는 '니 인생은 네 것이다'라는 말을 자주 하셨다고 합니다. 아들이 다니고 있는 학원은 그날의 과제를 모두 해야 집으로 보내는 것이 규칙인데, 어느 날 아들이 선생님에게 '저희 엄마가 제 인생은 제거라고 했어요'라면서 컨디션 난조를 이유로 집에 왔다는 겁니다. 며칠 후에 학원 선생님께서 전화를 하셔서 '어머니께서 ㅇㅇ에게 그러셨다고 들었습니다.'를 시작으로 '그러면 안된다. 학원의 규칙을 잘 지킬 수 있도록 지도해주세요.'라는 요청을 하셨다고 합니다.
택시기사분에게는 '나에게 어떤 것도 부담을 주지 말아라'라는 느낌을 받고, 학원 선생님에게는 '나에게 모든 것을 맡겨라'라는 느낌을 받습니다. 조금 극단적으로 보면 완전히 시키거나, 완전히 맡기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듯 하지요. 그렇지만 세상에 달고나 아니면 마라탕만 존재하진 않을 뿐만 아니라 그럴 순 없습니다.
두 상황의 공통점은 '주체성'의 결여라고 생각합니다. 사용료라는 핑계, 전문성이라는 이유로 우리의 삶에서 조금씩 주체성을 놓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듭니다. 언제부턴가 우리는 층간소음마저 남에게 해결해 달라고 요청하게 되었을까요. 내가 해야 하는 일,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내가 하는 세상을 기대해 봅니다.
Small things often.
* 저 길의 끝에 무엇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스스로 그리고 함께 가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