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회사에서 '2번 타자'가 되고 싶었습니다.

by 좋은남편연구소

사실 저는 야구를 잘 알지는 못합니다. 경기장에 직접 가본 것도 4~5번 정도 되죠. 상황에 따라서 두산, LG, SK, 롯데, 키움 구단을 응원하는데.. 이 정도면 응원 구단도 없는 셈입니다. 그랬던 저에게 야구에서 가장 인상적인 포지션은 '2번 타자'였습니다. 그렇다고 좋아하는 2번 타자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하핫..


한참 직장을 구하던 20대 시절에 두산 광팬이 친구가 자기소개서에 '2번 타자가 되겠습니다'라는 표현을 듣고서 딱 꽂혔습니다. 2번 타자는 1번 타자가 출루를 하면 중심타선에서 점수를 낼 수 있도록 희생번트를 하거나 1루와 2루 사이로 안타를 만들어 내는 '팀워크'의 상징이었는데, 아직 할 줄 아는 게 많지 않은 신입사원에게는 딱 맞는 자세와 태도 같아 보였거든요.


직장 생활을 하면서 '2번 타자'가 되기 위해 나름 노력을 했습니다. 기본적인 업무 외에도 동료 생일 챙기기, 가끔씩 간식 사기, 가끔은 단합행사도 준비하고 심지어 송년회 장기자랑 준비까지.. 업무 하고는 직접 관련이 없어 보이지만 팀 분위기가 좋아지는 일이라면 가급적 참여하려고 노력했지요. 이제는 장기자랑을 할 시대도 아니고, 제가 준비하면 '감' 떨어질게 뻔해서.. 주로 커피머신 청소, 복합기 A4용지함 채우기, 세절기 종이 비우기 같은 것들로 '2번 타자'일을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2번 타자'에 관한 글을 읽게 되었습니다. 2018년까지 2번 타자는 잘 치는 타자보다는 감독 말을 잘 듣는 타자였지만 이제는 중심타선보다 더 출루율과 장타율이 좋아야 한다는 겁니다. 이미 메이저리그에서는 그 중요성을 알고 있었고, 최근 한국에서는 홈런타자 박병호가 2번을 맡는 실험이 진행되고 있다고 하더군요.


[본문 중]

한국 야구의 2번 타자 역할은 ‘감독의 뜻’을 이행하는 자리였다. 번트와 앤드 런 등 감독의 작전으로 점수를 만들어내는 시대의 상징과도 같은 타선이었다. 번트 대고, 밀어치고, 당겨 칠 수 있는, 감독의 의지를 전달하는 페르소나. (중략) ‘강한 2번’의 필요성은 오래전부터 확인됐고, 강조돼 왔다. 번트 대는 2번은 오히려 팀의 득점력을 감소시킨다. 2번 타자가 2번째로 나오는 것은 1회뿐이다.


'이제 정말 2번 타자가 되어야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번 타자의 의미와 역할이 바뀌었듯 스스로 무언가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시기가 되었는데.. 마음은 오래전 신입사원 같은 마음으로 살아온 것은 아닌지 하는 반성을 하게 했습니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_id=202006302228005


써놓고 보니 팀장님 말을 잘 듣고, 자잘한 일부터 큰 일까지 모두 잘 해온 것처럼 보일까... 괜한 걱정이 드는데요. 그.. 그건.. 아닙니다. 하핫..


Small things often.


스샷 18.png

* 2013년.. 아마도 마지막 야구 직관일 겁니다. 조만간 또 갈 수 있길..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퇴사를 앞둔 후배 M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