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보다 조금 늦은 퇴근 시간, 집으로 향하는 사람이 제법 있는 지하철에 앉아 있습니다. 책은 가방에 넣고, 스마트폰은 손에 있습니다. 저녁 9시 10분이 되자 [전화영어] 수업시간이라며 스마트폰이 진동을 합니다. 자연스럽게 전화를 받으며 말합니다. "Hello?"
선생님 : 안녕! 어디? 지하철?
나 : 네, 지하철 예요. 오늘 일이 좀 많아서요.
선생님 : 지하철에 수업해도 괜찮겠어?
나 : 그럼요. 괜찮아요.
선생님 : 보통 한국 학생들은 지하철에서 전화받으면 수업 안 한다고 하던데..
나 : 아.. 여기 있는 사람들 중에 나를 기억할 사람이 한 명도 없는 걸요.
선생님 : 맞아. 그럼 수업 시작해 볼까?
10년 전만 해도 부끄럽고 민망한 것들이 많았습니다. 예의라는 명분으로, 타인을 먼저 생각한다는 핑계로 말이죠. 나이를 먹으면서 조금 뻔뻔해진 것도 있긴 한데.. 내게 필요한 일을 하는 것이 타인에게 피해를 끼치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고, 사람들이 생각보다 타인에게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것을 믿게 된 후로는 상당히 자유로워졌습니다.
아빠를 닮아서 소심한 딸아이를 볼 때면 '수줍게 지내는 기간'이 하루라도 짧았으면 하는 마음에 "용기를 내봐. 할 수 있어."라고 응원도 해봅니다. 결과보다 과정을 칭찬하면서 시도하는 삶을 살도록 응원도 해봅니다. 하지만 알고 있습니다.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이죠. 그래도 아빠보다는 조금 더 많이 '자유롭게' 살기를 바랍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인생 드라마로 손꼽는 <나의 아저씨>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명대사라고 생각하는 부분을 마지막으로 공유합니다. 다른 삶을 살았지만 타인에 대한 두려움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는 이지안(아이유 분)에게 박동훈(이선균 분)이 삶에 대해서 담백하게 알려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