웬만하면 딸아이의 요구를 받아주는 편입니다. 피곤해도 '놀아주세요'하면 놀고, '그려주세요'하면 그립니다. 아마 몇 년 후엔 이런 사소하고 쉬운 요구를 하지 않을게 뻔하니까요. 그런데 아이와 자꾸 부딪히는 상황이 있습니다. 부모님(그러니까 아이에겐 조부모)과의 영상 통화하는 도중에 아이와 실랑이를 하는 겁니다.
부모님께 아이의 얼굴을 조금이라도 보여 드리고 싶은데.. 아이는 제 마음도 모르고(이게 당연한 건데 저도 참 받아들이기가 어렵네요.) 얼굴을 카메라에 가까이 가져가거나 딴짓을 합니다. 어제저녁에도 할아버지와 이야기를 하면서 자꾸 카메라에 얼굴을 가져가길래 아이의 다리를 뒤로 잡아당겼습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아랫입술을 깨물었습니다.
아이는 제가 입술을 깨무는 표정을 무서워합니다. 아빠가 화났을 때 하는 표정이라는 걸 잘 알거든요. 어찌 영상통화를 마치고 나서 아이는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뾰로통한 아이에게 '왜 그러냐?'라고 물어봤고, 아이는 아무 말 없이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러더니 책을 가지고 와서 읽어달라고 하더군요. 아까 이야기 하기는 싫고 책은 읽어달라는 겁니다. 본인의 감정과 의견에 대해서 잘 표현하는 걸 나름 중요한 교육 사항으로 삼아온 터라 '지금 기분이 어떠냐, 아빠한테 뭐가 서운하냐'라고 물어봤습니다.
딸 : 말하기 싫어..
나 : 왜? 말하기 싫어?
딸 : 그냥.. 책 읽어줘요..
나 : 그럼 글로 쓰는 건 괜찮아?
딸 : 응.
나 : 그럼 방에 가서 아빠한테 하고 싶은 말 적어서 줘.
딸 : 알았어요.
부녀지간의 다툼을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지켜보던 아내에게 '화내서 미안한다고 사과할 거야. 그런데.. 난 지금 녀석이 어떤 마음인지 표현했으면 좋겠어' 아내는 '알았다'며 두 사람을 계속 지켜보기로 했습니다. 얼마 후에 방에서 적은 종이를 여러 번 접어서 저에게 주더군요.
나 : 지금 읽어도 괜찮아?
딸 : 응..
마음처럼 삐죽빼죽 접은 편지를 펴서 보니.. 아프고, 무서웠다고 썼더군요. 제가 편지를 펴자마자 아이는 울기 시작했습니다. 우는 아이를 안고서 "아빠가 다리 잡아서 미안해. 무서운 표정 지어서 미안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는 마음을 표현해서 잘했다고 칭찬도 했습니다.
개운치 않은 얼굴을 한 아이를 옆에 두고 '브레멘의 음악대' 한 권을 다 읽었습니다. 잠들 때까지 아이의 마음은 개운치 않아 보였습니다. 괜한 짓을 한 건가 싶었습니다. 무엇이 옳은지, 무엇이 정답인지..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본인의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 가르친 다고 되는 것인지, 이렇게 가르쳐야 하는 것인 지도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