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아내가 읽는 책을 슬쩍 보니 '육아 회화'라는 단어가 보였습니다. 부모가 되어서 아이에게 하는 말은 평소에, 예전부터 쓰던 말이 아니라 '회화'처럼 다시 배울 필요가 있다는 의미였습니다. 잠시 고민을 해보니 '그럼 <부부 회화>도 배워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는 아내에게 "우리가 대화할 때, 약간 영어회화 교재에서 나오는 말처럼 하지 않아?"라고 물어보니 아내는 "응, 가끔은 그렇지."라며 수긍을 하더군요.
돌이켜 보면 제 모국어는 '아들 회화'였습니다. 아침에는 '다녀올게요', 저녁에는 '다녀왔어요. 주무세요.' 말고는 거의 '무음'에 가까웠습니다. 그리고 아내를 만나서 연애를 할 때는 '남자 친구 회화'를 사용했습니다. 감언이설이 큰 특징이죠. 모국어가 아니라서 익숙지는 않지만, 모국어와의 유사점인 '거짓말(!)'이 많아서 조금은 수월했습니다. 게다가 데이트 동안에만 쓰니까 견딜만했습니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 나면 다시 모국어를 쓸 줄 알았는데, '남편 회화'와 '부부 회화'를 해야 했습니다. 모국어와는 전혀 다른, 남자 친구 회화와도 또 다른 말을 말입니다. 이제 조금 있으면 부부 회화를 쓴 지 7년 정도 되어 가는데요. 중급.. 정도는 된 것 같다고 자평합니다만 아직도 모국어가 튀어나와 아내의 마음을 불편하게 합니다.
앞으로 <부부회화:>라는 소재로 가끔씩 글을 써보려고 합니다. 오늘은 첫 번째로 '질문'입니다. 부부 회화의 가장 큰 특징은 질문을 많이 한다는 겁니다. 내가 생각하는 것, 내가 원하는 것을 말하기보다는 배우자의 생각, 감정을 먼저 들어야 하는 것이죠. 이것이 부부 회화의 문법적(?)인 특징이자, 학습의 걸림돌입니다.
저희 부부는 제가 퇴근하면서 '왔어요'라고 아내에게 인사를 하자마자 거의 매일 똑같은 질문을 서로에게 합니다.
아내는 저에게
- 식사했어요? 일찍 왔네? 식사 안 했으면 씻고 먹을래요?
- 오늘 회사에서 어땠어요? 요즘은 안 바빠요?
- 저런.. 기침하네. 괜찮아요?
- 마스크 내일 새 거 쓸래요? 챙겨줘요?
저는 아내에게
- 오늘 어땠어요?
- 오늘 녀석이 유치원 안 가서 하루 종일 같이 있느라 힘들었지?
- 뭐 재밌는 일 있었어요?
- 빨래 건조기랑 음식물 쓰레기는 내가 정리할게요. 좀 쉴래요?
매번 같거나 비슷한 질문이라 대답도 비슷하거나 같습니다. 하지만 매일 서로의 상황을 궁금해하고, 말로 확인하는 과정이 '부부 회화'에서는 매우 중요합니다. 질문을 하지 않으면 대화를 할 기회가 사라지고, 대화가 없으면 그 자리를 TV나 스마트폰이 차지합니다. 침묵이 익숙해지면 우리는 다시 모국어로 회귀할 가능성이 높아지죠. 오늘부터라도 배우자에게 어떤 말을 전하기에 앞서 질문 2~3가지만 해보면 어떨까요? 같은 말이지만 다른 경험을 하시게 될 거라고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