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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좋은남편연구소 Nov 24. 2019

누구나 자신만의 방법으로 사랑을 표현한다

오랜만에, 그러니까 추석 이후 처음으로 부모님 댁에 다녀왔습니다. 경기도에서 사시던 부모님은 몇 년 전부터 조부모님 생전에 사시던 집으로 이사를 가셨습니다. 40년 가까이 도시에 살던 분들이 귀농을 하셔서 이런저런 농작물을 키우십니다. 농번기엔 충청도, 농한기엔 경기도에서 주로 지내시죠. 멀어진 거리만큼 찾아뵙는 것도 줄었습니다.


자주 뵙지 못해서 가능한 매일  부모님과 영상통화를 합니다. 물론 제 얼굴은 거의 나오지 않습니다. 짧게라도 당신들의 손녀를 보여드리는 것이 목적이니까요. 딸아이가 밥 먹는 모습, 장난감 갖고 노는 모습, 장난치는 모습을 보여드리는 것이 그분들에게 큰 기쁨인 것을 압니다. 사실 딸아이는 어느덧 영상통화를 귀찮아하는 나이가 되어 9시 즈음되면 딸아이를 설득하고, 꼬셔야 합니다. 짧게라도 부모님께 고품질(?) 영상을 보여드리려면 말이죠. 이것이 제가 부모님께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입니다.


집에 도착해보니 어머니께서는 벌써 이것저것 준비를 해 놓으셨습니다. 어젯밤 늦게까지 한 김장김치부터 밭에서 뽑은 대파, 아내가 좋아하는 무절임, 딸아이 이름을 붙인 사과나무에서 따온 사과, 입맛이 까다로운 손녀를 위해 굳이 껍질까지 까서 말려놓은 감말랭이, 농사가 잘 되었다며 콩 한 자루에 참기름까지.. 무엇을 만들 때마다 무엇을 수확할 때마다 어머니께선 저와 아내 그리고 손녀를 생각하신 듯했습니다. 이것이 어머니께서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입니다.  


점식 식사를 마치고 어머니께서 저에게 불쑥 '니 아버지 발톱 좀 봐라. 지난번에 손녀가 손톱 발톱 칠해준 걸 얼마나 아끼는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는 전형적인의 60대 남성이십니다. 물론 재밌고, 활달하고, 본인 이야기를 솔직하게 하시는 성격이시지만 그래도 한국 아버지의 범주를 넘어가는 정도는 아니십니다. 그래서 손녀와의 영상 통화도 찬조 출연에 가깝게 나타나시는 분입니다. 샤워를 하고 나온 아버지의 발을 슬쩍 봤습니다. 엄지발톱 절반 정도를 덮은 분홍색 패디큐어가 보였습니다. 장난감이라 접착성이 좋지도 않은데 지금까지 붙어 있는 것을 보니 샤워할 때마다, 발톱을 깎을 때마다 아버지께서 어떻게 하셨을지 상상이 갔습니다. 이것이 아버지께서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입니다.


누구나에게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이 있습니다. 그 방식이 적절하고 적당할 때 우리는 사랑을 받음을 느낍니다. 물론 어떤 이에게는 그 사랑의 메시지가 전달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꾸준하게 표현하는 사랑은 그 방식에 관련 없이 언젠가, 언제나 느끼게 됩니다. 그 방식이 조금은 촌스럽고 조금은 바보 같아 보여도.. 나만의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이 있다는 것은 참 좋습니다. 더 늙기 전에  부모님의 사랑을 오래오래 느끼고 싶네요.


Small things often.


* 몇해전 아버지와 딸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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