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사교육을 많이 받으면서 자란 편은 아니지만 적지 않은 사교육을 받으며 자랐습니다. 돌이켜 보면 부모님께서는 엄청난 희생과 투자를 하셨던 셈입니다. 자연스레(?) 사교육 무용론(!)을 옹호하게 되더군요. 가장 돈을 많이 썼던 수학은 2번의 수능에서 모두 끔찍한 점수를 받았고, 싫다며 뛰쳐나온 피아노 학원이었는데.. 피아노 선생님과 결혼(?)을 한 것을 보면 말이죠.
그래서 아내에게 종종 '우리 애가 한글을 안 깨치고 학교에 가면 좋겠어. 추억이 될 것 같지 않아?'라고 말했다가 등짝 스매싱을 당할 뻔한 게 여러 번이었습니다. 아내에게 '한글을 모른다'는 것은 '놀림감'이라는 상황을 먼저 연결한 것이죠. 그런 저에게도 아내에게 강요하는 사교육이 있는데 바로 '수영'입니다. 안전을 위해서도 필요하지만 삶의 지평을 넓게 해 준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산을 오르고, 도로를 달리고, 강을 건너는 행위는 단순히 인도에서의 삶과는 차원이 다르니까요. 하지만 아내는 전혀 수영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수영 = 위험, 두려움'이었고, 저와는 다른 '정의'와 '경험'으로 바라본 것이죠. 그래서 제가 수영을 이야기할 때마다 '아직.. 아직.. '이라는 대답을 했던 겁니다.
최근에 들은 인상적인 고급진 단어(?)가 있는데, 바로 ‘소박한 현실주의(Naïve realism)’라는 사회심리학 용어입니다. 바로 자신이 세상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을 뜻합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행동이 기준이고, 자신과 다른 사람은 이상하거나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경향을 말합니다. 자신의 과거 경험이 엄청난 것인 양 '나 때는 말이야'를 자주 말하는 어른(이라고 쓰고 꼰대라 읽음)들을 비꼬면서 'latte is a horse ('라테는 말이야'를 영작한 것)라는 신조어와도 비슷한 맥락인 듯했습니다.
저희 부부에게 한글 깨치기와 수영 배우기에 대해 간극이 있었던 것처럼 우리는 매우 많은 일들을 '당연히', 'ㅇㅇ라면'이라는 수식어로 연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남자라면', '신입사원이라면', '부부라면' 같은 수많은 라면(?)에 우리는 '자연스럽게 대화'를 하고 있다고 믿는 경우가 많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도 상대방이 싫어할 수 있다는 것, 내가 그렇다고 상대방이 그럴 거라고 판단하는 것.. 그것이 부부 사이에 간극을 만들고 부모와 자녀의 관계를 소원하게 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앞으로 타인과 대화 도중 F5(새로고침) 버튼을 종종 눌러보려 합니다. 쉽지 않겠지만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