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자기 존재의 상태를 주목해 주고 알아주는 사람을 찾지 못한 채 기진맥진한 상태로 발견된 것이다. 그런데도 아이 옆의 어른들은 수건 돌리기 하듯 아이의 고통을 다음 사람에게 순차적으로 넘기고 있었던 셈이다. 상담 교사는 부모에게, 부모는 정신과 의사에게 정신과 의사는 약물치료와 다음 만남으로 공을 넘겼다. 이런 행위는 '일상의 외주화'다.
- <당신이 옳다>, 76p, 정혜신 저
'외주화(outsourcing)'는 2020년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더 이상 낯선 단어가 아닙니다.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업무 처리를 위해서 때로는 외주화가 합리적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 속에서는 효율이라는 이유로 수많은 기업이 하청업체에게 어렵고, 힘든 일을 맡깁니다. 때로는 전문화라는 미명 아래 기업이 갖춰야 할 핵심 역량을 외부에 맡기기도 합니다.
우리 삶에서도 어느덧 '외주화'는 조금씩 늘어나는 듯합니다. 언론에서 말하는 '위험의 외주화'라기보다는 '불편의 외주화' 또는 '책임의 외주화' 정도가 적당할 듯합니다. 물론 시간을 돈으로 사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하지만 '부모 자녀 관계'에도 외주화가 활성화되는 것은 '핵심역량'을 외주화 하는 기업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자녀에게 all in 하는 것을 권하는 것은 아닙니다. 적절한 수준으로 전문가의 도움이나, 외부의 지원을 받는 것은 부모의 에너지 관리에도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주가 되어서는 곤란합니다. 부모와 보내는 시간이 거의 없다는 요즘 아이들 이야기를 들을 때면 가정이 키우는 것인지, 학원이 키우는 것인지.. 안타깝기만 합니다. 조금은 어렵더라도.. 자녀는 가정에서 커가는 기회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살면서 불편함을 직면할 때가 성장의 기회를 만날 때라고 믿습니다. 그런데 그 불편함을 '외주화'의 대상으로 본다면 우리가 성장할 기회는 그만큼 줄어들 겁니다.
Small things often.
* 행복은 스스로 살펴보면 어디서든 발견할 수 있는 것 아닐까요? 스마일이 보이시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