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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원 상신할 때는 휴가원만 쓰는 게 아닙니다

by 좋은남편연구소

며칠 전부터 인스타그램 피드에는 휴가 관련 사진이 올라오고 있습니다. 저희 회사도 25일부터 1월 1일까지 휴가를 권하고 있어서 많은 동료들이 휴가를 떠났습니다. 직장인이 회사에서 휴가를 준비하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휴가원을 상신하는 일입니다. 언제부터 언제까지, 어디로, 어떤 목적으로 가야 하는지 간단하게 작성해서 부서장에게 승인을 받고 동료에게 공유를 합니다. 예전엔 '여자 친구랑 가냐?'같은 사적인 질문들을 쉽게 하는 분위기라서 휴가원 작성 자체가 약간 부담도 되었지요. 하지만 요즘에는 '휴가에는 사유가 없다'며 휴가원을 써도 일정이나 장소 정도만 작성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본인 업무에 지장이 없다면, 부서 상황만 나쁘지 않다면, 본인의 휴가를 쓰는 것은 당연하고 권장할 일입니다. 하지만 회사라는 조직에서 근무하는 구성원이라면 '휴가원'을 작성하는 것보다 먼저 할 일이 있습니다. 바로 인수인계서입니다. 반나절 또는 하루 정도라면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미룰 수도 있고, 국내에 있기 때문에 연락이 쉽게 됩니다. 하지만 3일 이상, 해외로 가는 휴가라면 반드시 '인수인계'를 준비해야 합니다.


1. 나에게 전화할 일이 없도록 합시다.

휴가 중에 회사에서 오는 전화를 받는 건 부담됩니다. 하지만 전화를 해야 하는 동료도 부담이 갑니다. 그러니 서로 연락할 일이 없어야 합니다. 그것이 인수인계서의 목적입니다. 간단하게는 컴퓨터나 E-mail 비밀번호부터, 대략적인 업무용 파일 위치, 휴가 기간 중에 정기적으로 하는 일, 내부/외부에서 자주 발생하는 일들에 대해 간략한 대처방안이나 답변도 함께 생각해 놓습니다. 그리고 부재중 메일 설정을 해놓습니다. 외부에서 메일을 보내는 사람도 휴가 중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니까요. 단순히 휴가 중이라는 이야기보다는 '어떤 업무는 누구에게, 어떤 업무는 누구에게' 안내하면 전화가 올 확률은 줄어듭니다.


2. 내가 업무를 얼마나 잘 통제하고 있는지 점검할 기회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내 업무를 맡긴다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닙니다. 동료가 내 업무를 잘 처리할 수 있게 이해시키려면 평소에 자신의 업무를 스스로 잘 정리하고 통제하고 있어야 합니다. 하다못해 컴퓨터 폴더가 업무별로, 연도별로 잘 정리되어 있다면, 파일 이름이 업무의 내용과 버전을 알 수 있도록 되어 있다면 업무를 잘 모르는 동료도 쉽게 이해할 겁니다. 만약 부서 주간회의 엑셀 파일이 직박구리 폴더에 까마귀. xls로 되어 있다면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요.


휴가는 짧은 퇴사입니다. 퇴사를 하는 마음가짐으로 자신의 업무를 정리하고 살펴보면 좋겠습니다. 사람은 마지막 모습만 기억에 남는 법입니다. 떠나는 순간 업무를 잘 정리해서 주는 사람이 좋은 동료입니다. 평소에 일을 잘하는 사람도 좋은 동료지만, 업무 인수인계서를 보면서 '아.. 이 사람 일 잘했구나'하는 평가를 받아야 정말 좋은 동료라고 생각합니다.


3. 동료가 휴가 갈 때도 인수인계서를 요구해야 합니다.

동료가 휴가를 떠난다는 것을 알게 되면 물어보는 것이 '어디? 누구랑? 왜?'같은 휴가 내용이어선 곤란합니다. '사무실에서 만났으니 사무적으로 대하자'는 어느 시인의 말처럼 사무적인 것이 우선이어야 합니다. '혹시 인수인계할 거 없어요?'라든가, '혹시 휴가 중에 처리해야 할 일이 있으면 저에게 알려주세요'라고 먼저 요청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런 분위기를 만들어야 개인이 아닌 조직이 움직이는 문화가 만들어진다고 생각합니다.


가끔씩 '내가 없으면 회사가 돌아가지 않는다'는 말을 자랑하듯 하는 분을 만납니다. 그런 말은 자랑이 아닙니다. (그런 분이 퇴사해보면 실제로 그렇게 되지 않는다는 것도 알게 됩니다.) 내가 없어도 일이 되도록 만들어 놓는 것이 직장인에게 첫 번째 목표여야 합니다. 자신의 업무를 효율적/효과적으로 만들어 놓은 후에 다른 일을, 더 가치 있는 일을 만들어 내는 것.. 그것이 성장하는 구성원, 바람직한 구성원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Small things often.


* 휴가 가는 길에서 가장 즐거운 순간은 '공항 가는 길'이지요.


[직장생활 관련 글은 제가 근무하는 회사와는 관계 없고, 개인적인 의견임을 말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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