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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피스마일 11시간전

워킹맘, 여자가 겪는 인생의 사계절

심리학 인생수업 노트

중년기에 접어들었다는 인식을 하게 된 건 작년, 나이가 아닌 신체에서 오는 신호를 알아차리면서부터였다. 깨알 같은 글씨를 보려면 안경을 벗어야 하고 흰머리를 감추려면 더 자주 염색을 해야 한다는 걸 알았을 때, 나에게도 노화가 시작되었음을 인지했다. 그것은 이전엔 느껴보지 못한 상실과 아쉬움을 느끼게 했다.




이것은 마치 뜨겁게 내리쬐던 해가 한풀 꺾여, 내실을 다지고 추수를 준비하는 가을이 내게 찾아온 것과 같은 느낌이 들게 했다. 여름과 겨울 사이 전환기에 가을이 있는 것처럼, 젊음과 늙음 사이에 중년이 있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이젠 더 이상 성장은 없고 노화와 쇠퇴의 내리막길 남은 것은 아닐까 불안을 갖게 되었는데, 그러던 어느 날, Levinson의 성년기 발달이론을 접하게 되었다.




Levinson은 성인기를 ‘변화와 발달의 과정’, 즉 일련의 시대(eras)와 시기들(periods)의 계열을 따라서 개인의 인생 구조(life structure)가 진화되어 가는 과정이라고 보았다. 인생의 시기에 각기 독특한 질적 특성과 발달 과제가 있고, 이 시기들은 ‘전환기(이전 인생구조를 수정해 새로운 구조를 준비하는 변화의 시기)와 ‘안정기’(새로운 구조를 구축해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비교적 안정된 시기)로 이루어진다고 보면서, 이런 전환기와 안정기의 순환적인 교차에 의해 인생이 진행된다고 보았다. 




Levinson은 성인 초기부터 40대 후반까지 성인 발달이론을 연구하면서 처음에는 성인 남성을 대상으로 연구하였다가 그 뒤에는 성인 여성의 발달에 대해서도 연구하였다. 성인 여성 연구는 당시 1980년대 35~45세였던, 소수의 여성만이 반전통적 인생행로를 개척해 나가던 시기에 행해진 것으로, 가정주부 15명, 기업체 재개 여성 15명, 학문 세계 여성 15명을 대상으로 하였다. 



그가 여기서 발견한 것은 남자와 여자의 발달은 놀랍도록 유사했지만, 이 둘을 확연하게 분리시켜 삶의 내용을 다르게 만드는 것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사회와 개개인 속에 존재하는 ‘성의 분리(gender spittting)’인데, 이것은 여성의 내면에 전통적인 가정주부상과 반전통적 여성상이 공존하게 하였고, 이 두 심상은 여성의 내면에서 치열하게 싸우며 각 발달의 시기마다 위력을 발휘하기도 하고, 갈등이 어떻게 해결되느냐에 따라 인생의 선택과 방향이 달라지게 하였다.



Levinson이 1980년대에 살펴보았던 경력여성의 삶은 내가 워킹맘으로 일할 때의 인생행로와 많이 닮아 있었다. 고등학교 졸업과 대학교 입학, 대학교 졸업과 직장 취업, 결혼과 출산, 육아라는 인생의 과업 앞에 1980년대의 경력여성이나 40년이 지난 지금의 나는, 시대는 다르지만, ‘여성’이기 때문에 비슷한 고민과 갈등을 겪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30대 전환기는 유별나게 어려운 시기였으며, 특히 여성들에겐 그랬다. 입문 인생구조에 주요한 결함이 있고 그것으로는 남은 인생을 만족스럽게 살지 못하리란 것을 인정하는 것은 충격적인 것이었다. 약 30세경에 아직도 성장해야 할 것이 너무 많다는 것을 발견하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다. -p.412




지난 인생행로를 반추하면서 드는 생각이, 나도 모르는 사이, 무의식적으로 반전통적인 여성상을 꿈꾸었고, 원했던 대로 그렇게 사는 것에 자부심을 느꼈다. 하지만, 그것이 출산과 육아로 좌절되는 순간 어찌할 바를 몰라했고, 이유 모를 분노를 나와 가까운 사람들에게 뿜어내며 힘들게 살았구나 생각이 들었다. 




아쉬운 것은 그럴 때 ‘그렇게 힘든 것이 인생이니, 참아라’라는 자조 섞인 조언 대신, 현실적이고 희망적인 조언을 해준 사람이 없었다는 점,  엄마와 직장인이라는 역할을 어떻게 하면 지혜롭고 현명하게 수행해 갈지 알려주는 사람이나 사례가 없었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과 양육을 병행하며 엉망진창, 좌충우돌, 우왕좌왕, 영광과 실패를 거듭했던 그때가 아직도 내게 의미가 있는 것은 인생을 통틀어 그때만큼  나는 누구이고,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스스로에게 그렇게 많이 물어본 적이 없었다는 점이다. 




만약에 인생 구조가 어떤 면에서 매우 만족스럽지 못하다면, 여자들은 핵심요소 안에서 중요한 변화를 일으키려는 강한 충동을 느낄 수 있다. 사실, 그렇게 하는 것은 현재의 인생구조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그러나 변화를 위한 소망은 삶의 구조적인 안정성을 유지하려는 강력한 보수적인 성향과 부딪치게 된다. p.457




무수한 과업을 수행하면서 불리는  엄마, 아내, 딸, 며느리, 직장인으로  매몰되어 사는 것이 아니라,  '진짜 나'가 되고 싶었던 것 같다. 누구로 불려지는 것이 아닌 '나'라고 말할 수 있는 무엇으로 살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러한 소망과 질문들이 나의 인생행로와 구조를 조금씩, 그리고 천천히 바꾸어 놓았다.




치열하고 뜨거웠던 여름을 지나 인생의 가을로 접어드는 지금, 마지막 순간 가장 나다운 나를 만날 수 있기를 소망하며 오늘도 성장과 쇠퇴를 반복하며 그렇게 하루를 살아간다. 




그들의 마음 한가운데에서 "나는 누구이며,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하는 물음이 심각하게 일어나면서 그들이 자신과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을 때, 개인적인 성장과 발달이 가장 크게 일어나고 있었다. - p.555 




읽은 책: 대니얼 J. 레빈슨 「여자가 겪는 인생의 사계절(The seasons of a woman's life)」

사진출처: pixcel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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