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은 고민 많은 세 사람이 모여
서로의 고민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것이 있었는데,
그중 가장 큰 고민거리 중 하나는
무언가 결정해야 하는 상황에서
'이거다'라고 자신 있게
결정하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상황이 이러하다 보니
자신의 결정을
누군가 해주면 좋겠어서
답답한 마음에
누군가는 점집을 기웃거리기도 했단다.
맞다.
선택의 순간은 불안하다.
제 아무리 사소해 보이는 선택일지라도
그 선택의 순간만큼은 사소하지 않다.
점심메뉴를 정하는 것이
사소해 보이는가.
오늘 먹은 점심 한 끼가
반나절의 기분을 망칠 수도 있다면
아무거나 먹을 수 있겠는가?
단 한 번의 선택으로
일을 망처 버리지 않을까
걱정이 되고,
망처 버린 일을
겸허히 받아들일 수 있을까
자기 의심이 들고,
그 외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불안이 샘솟는 건...
어쩜, 모든 인간이
공통으로 겪는 경험이자
또 선택 앞에서 겪는
당연한 경험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선택의 순간은 불안하지만,
그 순간이 불안한 것은 당연하기에
조금 더 용기를 내보자고 이야기하고 싶다.
사실 인생이란 것이
언제부터 내 생각대로 되었으며
예견되고 통제되었던가.
그런데, 그 진실을 잊고
선택의 순간 앞에만 서면,
인생이란 것이
내 생각대로 되고 예견되고
통제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인간은 어쩌면,
이렇게 앞 뒤가 맞지 않는
진실을 붙잡고
선택의 순간 앞에서
불안해하고 주저하는 것은 아닐까.
그냥 불안은 불안대로 내버려 두고
과감하게 선택해 보는 건 어떨까.
그 선택이 나를 포함한 누군가를
해치거나 피해를 주는 선택이라면
하면 안 되겠지만,
그렇지 않은 것이라면
무엇이든 선택해 보는 건 어떨지.
실존주의 철학자들이
인간은 태어난 이상
자신의 삶을 자신이 선택할 수밖에 없는 존재라고까지 했을 만큼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명체 중
인간처럼 선택의 폭이
넓은 생명체도 없는 것 같다.
우리 앞에 무언가 하거나 하지 않을
선택의 자유가 놓여 있다는 것은
불안한 일이기도 하면서도
인간만이 누리는 축복일 수도 있다.
무엇을 하고 하지 않느냐를 통해
내가 만들어진다.
선택을 통해 새로운 무언가를 할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왕이면 긍정적이고 밝은 쪽을 보면 좋겠다.
선택이 주는 불안만 볼 것이 아니라
선택으로 할 수도 있고
될 수도 있는 가능성을
보았으면 좋겠다.
물론 그 선택은
다른 누군가의 지시가 아닌
내 안에서 우러나온 선택이어야 할 것이다.
그래야 진짜 나로서
자유롭게 살 수 있으니깐.
정말로, 나와 남에게 해가 되는 선택 이외에는
어떤 선택을 해도 다 좋다.
완벽한 선택을 하고 싶은가?
100% 완벽한 인간이 없는 것처럼
완전무결하고 완벽한 선택이란 있을 수 없다.
완벽한 선택이란 없다는 것이
사실이고, 진실이다.
어떤 선택을 하든
그 결과가 당장에 실패 같아 보이더라도
그것을 감당하고 책임지다 보면
새로운 경험이 나를 이끌어줄 것이다.
인생을 믿고 어떤 경험이든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여 보라.
개인적으로
그땐 힘들었고 후회되는 선택이었어도
지금 되돌아보면
어떤 선택이든 다 좋았다는 생각이 든다.
꿈을 쫓기보다
안정적인 삶을 위해
안정적인 직장에 들어갔던 그때의 선택은
그때로선 최선이었다.
그 선택 덕분에 내게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경험하는 기회를 가졌고,
제2의 인생을 살고 있으니..
어떤 선택이든
잘못된 선택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수많은 선택을 하면서 용기를 배우고,
선택의 결과를 책임지며 인생의 무게를 배워간다.
어른이 되고, 내가 되어간다.
그러다 보면
어느덧 선택이 쉬워질 때가 있다.
그 답은 내 안에 있기 때문이다.
명백한 답이 있어서
그 답을 따라가면 되는 때가 온다.
그 답을 따라가면 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