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하기 좋은 날
퇴사고민이 한도를 초과해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을 때, 나를 가장 잘 이해해 줄 거라 믿음이 가는 한 친구에게 고민을 털어놓은 적이 있었다.
'이 친구는 다른 사람들과 좀 다르게 말해주겠지. 날 이해해 주겠지...'
하지만, 이 친구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인 '뻔한 조언'으로 내 가슴을 날카롭게 후벼 팠다.
'잘난 척하지 마. 밖은 전쟁터야. 여기가 그래도 천국이라고. 여기서 버티는 게 최고야. 승진할 때까지 아무 생각 말고 버텨. 그게 답이야...'
나도 그 뻔한 답을 알기에 십몇 년을 버틴 거였고, 나의 퇴사고민이 한낯 철없는 투정에 불과한 것일까 의심하고 또 의심하며 하루하루를 버텨내다 도저히 참지 못해 털어놓은 이야기였는데... 돌아온 것은 삶은 힘든 것이고, 나의 고민은 철없는 아이의 것이고, 답은 정해져 있으니 얌전히 따르라는 말....이었다.
상처는 절망이 되어 사람에 대한 기대는 사라졌고, 나는 혼자만의 골방으로 도망쳤다.
그때의 절망감과 상처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었지만, 지금의 나는 안다. 그 친구가 그렇게 이야기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그 친구 입장에서는 그게 답이고 최선이고, 정말 현실적인 조언이었다는 것을. 이제야 그 친구를 이해할 수 있게 된 건 그 친구와 내가 지각하고 생각하는 현실이 달랐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
하지만, 누군가에게 고민을 털어놓는다는 건, 나의 현실에서 내가 아는 정답을 누군가의 입으로 한번 더 듣고 싶은 마음 때문이 아닐까.
사실, 그때의 나는 바라고 있었다. 누군가 한 명쯤은 퇴사해도 괜찮다 말해주기를. 그래도 세상 무너질 일 없다고. 중요한 것은 너라고. 죽을 것처럼 힘든데 뭘 위해 그렇게 버티는 거냐고. 한 번쯤 물어봐 주는 사람이 있기를 바랐던 것이다.
퇴사 전, 누군가에게 퇴사해도 좋다는 말을 듣긴 했다. 답답한 마음에 용하다는 점술가를 찾아갔는데, 그는 내 고민을 듣고 단번에 그만둬도 좋다는 말을 해주었다. 다른 말은 잘 들리지 않고, 오직 그만둬도 좋다는 그 말이 뇌리에 박혀서 그 자리에서 하염없이 울었던 기억이 있다. 내가 듣고 싶었던 말, 누군가 해주길 바랐던 그 말을 듣게 되니 감격스럽고 서러운 마음이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퇴사고민을 할 때부터 이미 나는 답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오랫동안 나라고 믿어왔던 또 하나의 나를 잘라내야 했기에 너무 두렵고 무서웠던 것이다. 하지만, 나는 선택해야 했다. 진짜 나로 살지, 아닐지를.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져보지 않은 사람에겐 언젠가, 반드시,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져야 하는 순간이 찾아온다. 나도 선택을 미루고 미루었기에 선택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커지게 되었지만.
결국 인생은 선택과 책임을 강요했고 그 산을 넘게 만들었다. 잔인하지만 이건 누구에게나 통용되는 진실이자, 인생을 사는 인간의 숙명이고 얼렁뚱땅 넘어갈 수 없는 법칙과도 같다.
지금의 나는 퇴사라는 선택을 하고 책임을 지며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고 있다. 사십이 넘어 꿈으로만 간직했던 것을 이루기 위해 공부하고 있는데, 희미하게나마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거구나 싶다.
이 글을 보는 누군가, 예전의 나처럼 오랫동안 퇴사를 고민하고 있다면 말해주고 싶다.
사람들이 말하는 정답이 있다. 그 답이 내 안의 답과 같다면 좋겠지만 달라도 괜찮다. 사람들이 말하는 답과 다르게 살아도 괜찮다. 다르게 살아도 세상 무너지지 않는다. 정말이다. 중요한 건 당신이다. 이 세상에서 당신이 가장 중요하다. 정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