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하기 좋은 날
공무원을 그만두었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자기 일처럼 참 아까워하면서
용기 있다 말한다..
그런데, 그 용기 있다는 말이 어쩔 땐,
'참 무모하네요..'라고 들리기도 한다.
그럴 땐 용기와 무모함이 동전의 양면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공무원을 그만둔 건 용기일까, 무모함일까.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세상.
미래가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데...
미래가 보장된 철밥통을 걷어찬 것은
정말 무모한 일이다.
하지만, 어떤 사람에겐 용기이기도 하다.
그 사람에게는 간절한 바람이 있다.
철밥통을 걷어차서라도
얻기 원하는 것.
위험에도 불구하고
원하는 것을 위해 과감하게 세상에 뛰어든 것이니
그것은 용기라 할 수 있다.
한때, 나의 퇴사가
순간의 분노에 사로잡혀 저지른 무모함인지,
간절한 무언가를 바라는 마음에서 나온 용기인지,
헷갈리던 때가 있었다.
'조금만 더 참았다면 좋지 않았을까...'
'조금 더 버틸 수 있었는데 포기한 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되돌아보면 그때의 나는 최선을 다했다.
잠시 잊고 있었는데,
그때의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의 150%, 아니 200%를 했다.
이런 방법, 저런 방법 모든 방법을 다 써봤고,
최선을 다했고 끝까지 애썼고 죽을힘을 다했다.
그래도, 길이 보이지 않았고 절망했기에 용기를 낼 수 있었다.
절망 끝에 용기가 있었다.
그래, 그건 용기였다.
이렇게 인정하고 보니
퇴사에 대한 미련은 1g도 남아있지 않게 되었다.
철밥통을 걷어차고라도
간절히
얻고 싶었던 건 자유였다.
그냥 나답게 살고 싶었고, 그 자유를 누리고 싶었다.
그뿐이었던 것 같다.
실존주의에서는 말한다.
인간에겐 나답게 살아야 할 책임이 있고,
그렇게 살 자유가 있다고.
철밥통을 차고 있으면서도
삶이 공허하고 무의미하게 느껴졌던 것은
실존하지 않아서였다.
나는 존재로 살지 못했고,
죄책감에 괴로웠다.
존재로서 선택하고 책임지는 것을 하지 않을 때
실존주의에서는
실존적 죄책감을 느낀다고 말한다.
실존으로 진실하게 살지 않았을 때
경험하는 감정인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당신,
혹시 실존적 죄책감을 느끼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