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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피스마일 5시간전

나답게 살 용기 : 실존적 죄책감

퇴사하기 좋은 날

공무원을 그만두었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자기 일처럼 참 아까워하면서

용기 있다 말한다..



그런데, 그 용기 있다는 말이 어쩔 땐, 

'참 무모하네요..'라고 들리기도 한다.



그럴 땐 용기와 무모함이 동전의 양면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공무원을 그만둔 건 용기일까, 무모함일까.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세상.

미래가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데...

미래가 보장된 철밥통을 걷어찬 것은 

정말 무모한 일이다.



하지만, 어떤 사람에겐 용기이기도 하다.



그 사람에게는 간절한 바람이 있다.

철밥통을 걷어차서라도

얻기 원하는 것.

위험에도 불구하고 

원하는 것을 위해 과감하게 세상에 뛰어든 것이니

그것은 용기라 할 수 있다.



한때, 나의 퇴사가

순간의 분노에 사로잡혀 저지른 무모함인지,

간절한 무언가를 바라는 마음에서 나온 용기인지,

헷갈리던 때가 있었다.



'조금만 더 참았다면 좋지 않았을까...'



'조금 더 버틸 수 있었는데 포기한 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되돌아보면 그때의 나는 최선을 다했다.

잠시 잊고 있었는데,

그때의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의 150%, 아니 200%를 했다.

이런 방법, 저런 방법 모든 방법을 다 써봤고, 

최선을 다했고 끝까지 애썼고 죽을힘을 다했다.

그래도, 길이 보이지 않았고 절망했기에 용기를 낼 수 있었다.



절망 끝에 용기가 있었다.



그래, 그건 용기였다.



이렇게 인정하고 보니

퇴사에 대한 미련은 1g남아있지 않게 되었다.



철밥통을 걷어차고라도

간절히 

얻고 싶었던 건 자유였다.



그냥 나답게 살고 싶었고, 그 자유를 누리고 싶었다.

그뿐이었던 것 같다. 



실존주의에서는 말한다. 

인간에겐 나답게 살아야 할 책임이 있고,

그렇게 살 자유가 있다고.



철밥통을 차고 있으면서도

삶이 공허하고 무의미하게 느껴졌던 것은 

실존하지 않아서였다.



나는 존재로 살지 못했고,

죄책감에 괴로웠다.



존재로서 선택하고 책임지는 것을 하지 않을 때

실존주의에서는

실존적 죄책감을 느낀다고 말한다.

실존으로 진실하게 살지 않았을 때 

경험하는 감정인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당신,

혹시 실존적 죄책감을 느끼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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