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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지현 Apr 23. 2021

삶을 이어가는 곳

강화도일만위순교자현양동산

15세의 나. 울 곳이 필요했다. 학교나 학원에선 나를 탐탁지 않게 여기는 아이들이 많았다. 학원 교실에 들어가면 여자아이들 몇몇이 나를 흘겨봤다. 귀 옆으론 당당한 험담이 오갔다. 그 아이들도 어린 마음에 그랬을 거라 이해는 하지만, 그 얼굴들과 목소리는 어쩐지 잊히질 않는다. 


태연한 듯 지냈지만 가끔 우울해질 때가 있었다. 그럴 때면 성당으로 향했다.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상황이 달라졌지만 보통 성당 문은 늘 열려있다. 평일 오후에 성당에 가면 조용하고 쾌적하게 마음껏 홀로 앉아있을 수 있다. 이 시간에 왜 중학생이 성당에 있나, 의아하게 보는 성당 방문객들도 있었지만 다들 그러려니 지나갔다. 그렇게 멍하니 앉아있다가, 벌떡 일어나 학원으로 갔다. 


그게 습관이 돼서 그런가. 나는 어른이 되어서도 근처에 성당이 보이면 꼭 들어가 본다. 이 성당 분위기는 어떤지, 저 성당 분위기는 어떤지. 들어가서 구경도 하고, 가만히 앉아있다 나오기도 하고. 요즘은 성당에 막 들어가는 게 힘들지만, 코로나 이전까지는 그랬다. 성당을 찾아다니는 게 일상이 된 후론 천주교 성지도 찾아다니게 됐다. 


인천 강화도엔 ‘일만 위 순교자 현양 동산’이라고, 천주교 박해 때 이름 없이 죽어간 천주교 순교자들을 위해 조성된 숲이 있다. 한국 천주교 순교자는 1~3만 명에 이른다고 하나 그중 이름이 알려진 순교자는 2천 명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이런 무명 순교자를 위해 만들어진 순례지다. 


이곳은 흡사 작은 수목원과 같은 구조를 가지고 있다. 정원과 호수, 오솔길과 흙길이 있고 데크길도 있다. 데크길에선 묵주기도를 하면서 걸을 수 있도록 일정 간격으로 묵주알 10개를 상징하는 조경을 구성했다. 연못도 있고 길 곳곳에 무명 순교자의 길, 묵주기도길 같은 테마 숲길도 조성되어 있다. 차분하고 간소한 성모당도 있다. 숲 뒤로는 퇴미산 자락과 평온한 하늘이 언뜻언뜻 보인다. 숲 자체가 고요한 성당 같았다. 내가 좋아하는 숲과 성당이 한데 모여 있다니, 걷는데도 신이 났다.


걸으면서 자연스레 천주교 순교자들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됐다. 유학파도 아니고, 신부도 아닌 탓에 이름 없이 죽어간 순교자들. 그들은 순교의 순간에 무슨 생각을 했을까. 후회했을까, 절망했을까, 덤덤했을까. 말이 없는 죽은 자들에게 반복해서 물었다. 지난 가을의 끝, 시들어가는 잡초와 누렇게 질린 나뭇잎을 보며 걸었다. 즐거운 걸음의 절정에서 무명 순교자상 앞에 서게 됐는데, 마음이 꽤 복잡해졌다. 일만위 순교자 현양동산의 트레이드 마크처럼 되어 버린 무명 순교자상. 무릎을 꿇고 엎드린 사람의 등 위로 뾰족한 철제 십자가가 그의 몸을 관통하고 있다. 


신은 잔인하지 않아도 신을 바라보는 종교는 잔인해질 수 있다고 생각됐다. 순교자들을 기린다고 하면, 그들의 죽음보다는 삶에 더 관심을 두는 게 옳지 않을까. 아무리 조형물이라곤 하지만, 엎드린 그의 등에 시퍼렇고 날카로운 쇠기둥을 꽂아야 했을까. 세상을 살아가는 어떤 사람으로서, 행여나 누군가 나에 관해 관심을 둔다면 나는 그게 내 죽음보다는 삶에 대한 것이면 좋겠다. 


잊으려고 해도 잊히지 않는 이 조형물을 보며 느꼈던 무서움이랄까, 그 마음만 빼면 일만 위 순교자 현양 동산에서의 걸음은 꽤 좋았다. 풍경도 좋았고 간소하게 마련된 작은 성당도, 산책길도 좋았다. 순교자를 기리는 숲답게 이곳을 걷는 사람들도 멀찍이 떨어져서 고요하게 걸었다. 차분하고 조용한 분위기는 좋았다. 침묵의 순례지라 불리는 곳에서 조금 붉으락푸르락했지만 나는 여전히 성당에 열심히 다니고 있다. 예전처럼 멍하니 앉아있거나, 이날처럼 가끔 감정을 삼키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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