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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지현 May 31. 2021

어쩌다 갈 걸, 작심하고 가버렸네

세종국립수목원

지난 2020년 가을, 새로운 국립 수목원 오픈 소식을 들었다. 한참 수목원과 식물원에 빠져있을 때라 당장 달려가고 싶었는데 하루이틀 미루다 새 봄에서야 들르게 되었다. 일요일 아침 6시 30분, 일찍부터 운전대를 잡고 두 시간을 달려 세종시에 도착했다. 멋진 신도시와 글라스 월의 번쩍이는 건물들. 건물의 규모를 보면 요일 시간 구분 없이 북적일 것 같은 도시인데 일요일 아침이라 그런지 걷는 사람을 찾기가 어려웠다. 거대하지만 한적한 도심을 지나 수목원에 들어섰다. 


수목원의 꽃은 아무래도 온실이다. 기후대 별로 만들어진 온실이야말로 식물 세계에 관한 색다른 경험을 전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냥 구경하고 '예쁘다~'를 남발하는 것 이외에 대한민국의 기후를 벗어난 다른 기후를 조금이나마 느껴보고 그곳에 터를 잡았을 식물의 삶과 주변 환경을 상상할 수 있는 유익한 장소다. 세종수목원의 온실에 방문하기 위해선 최소 하루 전까지 인터넷으로 예약해야 한다. 


세종수목원의 온실은 크게 세 개 관이 있는데, 하나는 열대 하나는 온대관이다. 열대관에서 본 식충식물과 온대관에서 본 하와이 무궁화는 자면서 떠올랐을 정도로 인상적이었다. 그중 파리지옥을 기념품 샾에서 대량 팔고 있는 것은 충격적이었다. 파리지옥을 집에 들여놓고 싶지도 않지만, (날)파리가 많지 않은 우리 집에서 파리지옥을 긴 시간 건강하게 키울 자신도 없었다. 엄지손톱만 한 자그마한 파리지옥이 작은 화분에 담겨 아파트 여기저기로 옮겨지는 것을 생각하니 그것 또한 별로 유쾌하진 않았다. 하나 남은 관은 온실이라고 할 순 없다. 포토존이다. 테마를 구성하고, 알록달록한 식물을 가져다가 아이들이 사진 찍기 좋은 장소를 만들어 두었다. 아마 처음 구성할 때는 냉대로 만들고 싶었기에 세 개 관을 만들었다가, 햇빛을 온전히 다 받아내야 하는 평지라 냉대 구성이 어려웠던 게 아닐까. 사막 환경을 구성해도 좋았을 텐데... 그 거대한 온실을 포토존으로 쓰고 있는 건 아무래도 많이 아까웠다.




아, 온실 내부에서 하고 있던 전시는 좋았다. 나뭇잎 하나 하나 세밀하게 그려 놓은 허윤희 작가님의 전시. 하루의 일기를 곁들인 나뭇잎과 꽃 그림은 식물의 생에 애정을 가진 수많은 사람들의 존재를 확인한 것 같아 마음이 조금 포근해졌다. 


야외 정원은 걷기에 좋다. 평지라 걷기엔 큰 무리가 없다. 다만, 큰 나무가 없기 때문에 햇볕을 피할 수 있는 곳이 거의 없다. 이날은 여름 날씨를 예고하는 날이었기 때문에 꽤 덥고 뜨거웠다. 하늘을 가린 전나무가 가득한 포천의 국립수목원이 그리워졌다. 한참 걷다 보니 이곳은 수목원이라기 보단 도심의 중앙공원 같았다. 아니다. 공원이라면 쉴 곳도 있고 아이들이 놀 곳도 있어야 하는데 이곳은 아스팔트 길을 따라 마냥 걸어야 했다. 주변은 온통 잔디와 인공 호수뿐이었다. 다양한 식물이 심어져 있는 것도 아니었다. 어설픈 주제 정원이 넓은 평지에 툭, 툭 던져져 있었다. 





분재원과 암석원, 이끼원 또한 내가 좋아하는 곳이다. 세종수목원에는 분재원 환경은 한옥 구조물로 멋들어지게 만들어놨는데 정작 그 분재는 종류가 제한적이었다. 종류도 곰솔과 단풍나무가 대부분이라, 멋있기는 하지만 볼거리가 많지는 않았다. 그 화분을 새집 냄새가 진동하는 건물 안에 놔두는 게 옳은지도 잘 모르겠다. 멋있게 자란 그 화분을 화담숲의 분재원으로 당장 옮겨주고 싶었다. 암석원은 없었고, 이끼원도 없었다. 산을 끼고 있지 않은 도심 한복판 평지의 수목원이라 이끼원 조성은 아무래도 힘들었던 게 아닐까 예상해봤다. 


수목원이란 이름을 붙이는 데 기준이 따로 있는지 모르겠다. 세종수목원은 그 옆에 있는 세종중앙공원과 무엇이 다른 건지 애매했다. 결정적으로, 세종수목원의 온실은 서울수목원의 온실과 디자인과 구성이 비슷하다. 같은 회사에서 설계하고 만든 건가. 서울수목원 온실의 샘플 같단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세종수목원 만의 특별한 무언가를 기대하고 갔는데, 150km 떨어진 남의 동네 공원에 다녀온 기분이다. 어쩌다 갔으면 좋았을 텐데, 작심하고 다녀왔더니 아쉬운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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