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다녀보자라는 마음으로 골랐던 첫 번째 직장.
사람들은 옷을 살 때 보통 얼마나 고민하고 결정할까?
나는 선택하기까지의 과정이 피곤해서 쇼핑을 즐기지 않는다. 소유의 기쁨보다는 이것저것 따져가며 고민하는 게 더 버겁다고 해야 할까. 옷 하나를 고를 때도 이렇게 신중하게 고민하는데, 직장을 선택하는 건 그야말로 대략 난감이었다. 뭘 기준으로 골라야 할지, 잘 고른다는 게 무엇인지 전혀 감이 오질 않았다. (옷은 심지어 살을 빼든 수선을 하든 억지로 맞출 수라도 있고 정 안되면 안 입으면 된다.)
스무 살이 넘으면 꽃길이 펼쳐질 거라 믿고 고등학교 3년을 꾹 참고 살았다. 그렇게 마주한 이십 대는 혼란스러움의 연속이었다. 막연히 기대했던 어른으로서의 삶과 내가 직접 마주한 현실은 매우 달랐다. 스스로 선택해야 할 것들이 갑자기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지만 어떤 기준으로 결정해야 할지 막막했다. 특히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에 대한 고민은 나를 통째로 집어삼켰다. 그 고민이 절정에 달했던 스물한 살의 어느 겨울에는 지하철역에 앉아서 지나다니는 사람들만 쳐다봐도 하염없이 눈물이 나왔다. 고시원 침대에 누워있으면 몸이 지하 500m로 푹 꺼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시간이 흘러 졸업이 코앞으로 다가올수록 마음은 더 조급해졌다. 어떤 기준으로 회사를 골라서 지원해야 할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먼저 졸업한 선배들이 주로 일하는 곳 혹은 잘 알려진 대기업? 여러 곳을 둘러보아도 내게 잘 맞는 곳이 어딘지도 모르겠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은 어떤 것인지 정할 수 없었다. 그나마 관심이 가는 곳에 지원을 해서 첫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어설프게 고른 첫 직장이었다.
그렇게 한 연구기관의 계약직으로 생애 첫 출근을 하게 되었다. 그곳을 선택했던 이유는 조금이라도 흥미가 있는 분야에서 일을 시작해보고 싶다는 생각에서였다. 관심사를 쫓아 선택했으니 만족했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대답할 수 있다. 음... 출근한 지 2주가 지나자 잘못 왔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환불은 안 되나요...?)
처음으로 맡은 일이 수십 페이지의 인쇄된 자료를 일일이 ppt 파일로 다시 만들어내는 것이었는데, 열흘 넘게 그것만 하다 보니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알고 보니 조직이 내게 기대하는 역할과 내가 조직에 기대했던 역할은 서로 다른 것이었다. 돌이켜보면 사회초년생이다 보니 면접 자리에서 그걸 간파하는 능력이 부족했다. 게다가 막연히 관심 있는 분야라고 해서 선택한 것부터가 이미 그런 리스크를 안고 가는 행동이었다. 왜 그 분야가 좋은지,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이 좋은지 스스로 좀 더 깊이 있게 물었어야 했는데 졸업에 심리적으로 쫓기다 보니 일단 지르고 뒷감당은 나중에 하자는 마음이었던 것 같다.
선택에 후회는 들었지만 쉽게 무르지는 않았다. 웬만하면 2년은 버텨보라는 부모님과 교수님들의 조언이 떠올라서였다. 그리고 이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해서 당장 뾰족한 대안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일단 마음 한 구석에 다음 선택에 대한 고민은 품은 채로 계속 일을 이어나갔다.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업무에서 유능감을 느꼈다. 새로운 일을 맡은 지 3개월 차가 되던 어느 날이었다. 일을 맡기던 한 고객이 “그거 제대로 할 수 있겠어요?”라고 웃으며 내게 물었다. 그 말을 들은 나는 속으로 발끈했다. “그래도 제가 매일 이것만 하는데 설마 이거 하나 못하겠어요?”라는 말이 내 입에서 튀어나왔다. 최대한 웃으며 친절하게 답하려고 했지만 표정관리가 되지 않았다. 사실 3개월이면 초보 맞는데. 그때는 맡은 일에 대한 자부심과 자신감이 넘쳤다. (나중에는 이 분이 내게 본인이 창업한 회사로 오지 않겠냐고 제안하셨다. 근자감이 인상적이었다나.)
첫 직장에서 1년 반 정도의 시간을 보내고 퇴사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등 떠미는 사람' 때문이었다.
회사의 전체 직원 수는 적었지만 업무적으로 상대해야 할 고객이 많은 덕분에 정말 다양한 인간군상을 겪었다. 이보다 더 이상한 사람(소위 말하는 돌+I)이 있을까 싶은 사람도 만났지만 다행히 멋진 어른도 만났다. 그리고 운이 좋게도 멋진 어른이 내 사수이자 부서장이었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 티타임을 가질 때면 ‘앞으로 어떤 일을 해야 할까’에 대한 고민을 끊임없이 하고 있는 내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주셨다. 본인이 관리하는 조직의 구성원임에도 불구하고 내게 어울릴 만한 다양한 길을 제시해주셨다. 더 많이 배우고 성장하고 싶으면 큰 회사로 가라는 말씀을 듣고 옮겨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그렇게 첫 직장을 뒤로하고 대기업 입사를 앞두게 되었다.
아직도 마지막으로 출근하던 날이 잊히지가 않는다. 많은 분들의 격려와 응원을 받았고, 특히 부서장과 그 위의 더 높은 분이 나를 위한 저녁 식사자리를 마련해주셨다. 부서에서 나는 계약직이었고 막내 사원이었다. 객관적으로 그렇게 극진한 퇴사 대접을 받을 만한 사람이 절대 아니었는데도 불구하고 떠나보내는 아쉬움과 앞날에 대한 응원을 정말 진하게 받았다. 조직에서 떠나는 사람을 항상 특별하게 대접하지는 않으니까... 참 이례적인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 당시에는 실감하지 못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감사하고 또 감사한 마음이 든다. 분명 그곳에 다닐 때는 참 많이 울었는데 마지막을 훈훈하게 마무리한 덕분인지 희한하게도 좋았던 순간들이 더 많이 생각난다.
도대체 왜 다들 대기업에 들어가고 싶어 하는 걸까, 무엇이 얼마나 좋은 걸까 궁금했던 차에 등 떠밀어주는 사람까지 생기니 실행에 옮기게 되었다. 그리고 생애 첫 직장을 퇴사한 지 3개월 후에는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과 함께 버스를 타고 으슥한 산속에 연수를 받으러 가게 되었다. 그때는 떨리면서도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이전 회사에서 아쉬웠던 체계적인 교육도 받고 좋은 사람들을 더 많이 만날 수 있을 거라 상상하며 설렜다.
서툴게 골랐던 첫 번째 옷을 고이 접어두고 주변 사람들의 조언으로 마침내 두 번째 옷을 선택했다.
내게 잘 맞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지만 잘 어울릴 거라는 다른 사람들의 말을 믿고 골랐다. 새로운 옷이 처음엔 무척 마음에 들고 신기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어딘가 불편해졌다. 사실 나는 그때까지도 스스로에게 잘 맞는 옷이 무엇인지 잘 몰랐기 때문이다. 새 옷에 몸을 억지로 욱여넣을수록 나는 어떤 사람일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에서 점점 더 멀어져 갔다. 멀어질수록 나는 더 괴로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