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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굿키드 Aug 02. 2021

여기도 아니면 그럼 어디를 가야 할까

이직을 해도 같은 고민에서 맴돌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

연수원에서 함께 으쌰으쌰 하던 날들은 어디로 가고 언제부턴가 동기들과 함께 '존버'를 외쳤다.

목에 걸고 다니면 자랑으로 느껴졌던 사원증은 점점 목을 죄어오는 목줄이 되어가고 있었다.

버티고 또 버티면 못 버틸 리 없건마는 버팀에도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언제까지 이렇게 버텨야 해?'

'왜 이렇게 버텨야 해?'


하루하루 출근길이 본격적으로 지옥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던 건 첫째 아이를 출산하고 복직하면서 였다.

입사 5년 차에 첫째를 출산하고 1년 3개월의 육아휴직 끝에 돌아왔던 첫날이었다.

앞으로 맡을 업무를 논의하기 위해 들어간 회의실에서 '어떻게 기여할지 생각해 봤냐’는 질문에 멘붕이 왔다.

회사에 기여라니?

그렇게 거창한 생각을 가지고 일해본 적은 없었고 주변에서도 그렇게 일하는 사람은 보지 못했는데.

알고 보니 그 질문은 나의 쓸모에 대한 고민에서 나온 것이었다.

휴직 전에 담당하던 업무는 이미 다른 사람에게 이관된 상황이었고, 나에게 어떤 일을 시키면 좋을지 그들도 몰랐고 나도 몰랐다.

나는 조직에서 무임승차자가 되지 않기 위해 뭐라도 해야 했다.


존버를 함께 외치던 동기들은 하나둘씩 떠나기 시작했다.

떠나서 만족하느냐고 물어보면 대부분은 더 힘들거나 또 다른 어려움에 직면했다.

나도 더 이상 여기는 아니라고 생각했고 다른 데는 가야겠는데 쉽게 결정할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 매일 아침 나와 함께 회사로 출근하는 아이가 마음에 걸렸다.

아이가 회사에서 운영하는 어린이집에 다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집 근처 어린이집으로 옮겨볼까 생각해서 여러 곳에 대기를 걸어보았지만 긴 대기번호를 보면 언제쯤 차례가 올지 알 수 없었다.

내 앞날에 대한 고민도 버거운데 아이의 거취까지 알아보고 결정해야 하는 그 모든 과정이 너무 어려웠다.


언제부턴가 회사를 다니는 이유는 오로지 어린이집 때문이 되었다.

물론 이런 이유로 참고 다니다 보면 다른 이유가 생겨서 회사 생활을 연명할 수 있게 될지도 모르지만, 당장 매일이 괴로웠다.

영혼을 집에 두고 출근하면서 아이를 긴 시간 동안 어린이집에 맡겨두고 일을 한다는 것이 아이에게 미안하면서도, 아이 때문에 출근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때때로 답답하기도 했다.

이렇게 가다가는 '너 때문에 참았다'라는 식으로 아이에게 애꿎은 책임 전가를 하게 될 것만 같았다.


이직을 해볼까, 부서라도 옮겨볼까 여기저기 기웃거려보았다.

그런데 무작정 여기 아니면 나를 받아주는 아무 곳이나 갈 수는 없었다.

그렇게 간다고 해서 근본적인 고민이 해결될 것 같지 않았다.

새로운 곳에 옮기고 적응하면서 고민을 잠시 묻어둘 뿐, 결국 되풀이되는 모습을 주변에서 종종 보았기 때문이다.

기왕이면 좋아하는 일을 찾아서 아이에게 당당한 엄마이고 싶고, 유능감을 느끼면서 일하는 직장인으로 살고 싶었다.

근데 그게 뭘까...

내가 잘하는 건 뭐고 좋아하는 건 또 뭘까 그 지점에서 턱 말문이 막혔다.




일에 대한 고민이 갑작스레 폭발한 건 아니었다.

실은 입사 초부터 맡고 있던 업무에 쭉 고민이 있었다.

대학교 때 여러 수업을 들으면서 '아 이건 절대 업으로 삼지 말아야겠다'라고 생각했던 과목이 있었는데 그게 프로그래밍이었다.

근데 하필 그걸 회사에서 주 업무로 하게 될 줄이야.

고작 학교에서 과목 몇 개 들어본 걸로 제대로 해보지도 않고 속단한 것 같아서 다시 마음을 다잡고 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막상 해보니 생각보다 그렇게 절대 못할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내가 이 일을 오랫동안 계속한다고 생각하면 아찔했다.

나보다 더 애정을 가지고 일하는 주변 동료들을 보면서 '아... 나는 저 정도로 관심 있지는 않은데...'라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그러면서 이 길은 내 길이 아니라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던 와중에 복직 후에는 스스로 일을 만들어서 해야 하는 상황까지 닥치니 미칠 노릇이었다.

옆에서 나를 지켜보던 같은 부서 동료 한 명이 내게 이런 말을 해줬다.


"네가 잘하는 게 열 가지가 있다면, 지금 하고 있는 일은 너에게 열 번째에 해당하는 일인 것 같아."


위로 같으면서도 욕 같기도 한 그 말을 들으며 나에게 첫 번째에 해당하는 일은 무엇인지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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