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가격리 5일 차.
담당 공무원 배정, 자가격리 통지서 수령
격리 4일 차가 되자 전담 공무원이 배정되어 전화가 걸려왔다.
구호 물품과 위생 키트가 도착했는지 물어보셨고, 하루 두 번 아이와 나의 체온을 측정해서 자가진단 앱에 등록을 해야 한다고 알려주셨다.
앞으로 격리가 해제될 때까지 매일 오전 전화를 주실 거라고 했다.
아이가 몇 살이냐고 물으셔서 두 살이라 답하니 아이고… 하며 수화기 너머로 안타까워하셨다.
곧이어 문자로 자가격리 통지서를 수령했다.
점심 무렵에는 보건소에서 보낸 위생키트가 문 앞에 놓여있었다.
살균소독제, 체온계, 쓰레기봉투, 손소독제 등이 들어있었고, 물건을 받았다는 것을 확인하는 수령증에 사인해서 사진을 찍고는 지정된 번호로 문자를 전송했다.
이제 자가격리에 필요한 공식적인 절차는 모두 끝났다.
격리 해제될 때까지 이 생활을 잘 보내기만 하면 된다.
('잘 버티기'라고 쓰려다가 버티는 건 너무 힘들게 느껴져서 바꿨다.)
달라진 일상도 감사히 여기며... 1일 1메시지
처음 어린이집에서 연락을 받고는 당황스러움이 가득했지만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가 휴직 중이라는 사실이 다행으로 느껴졌다.
휴직이 다행으로 느껴진 이유는 일을 걱정하지 않아서이기도 하지만 휴직 덕분에(?) 요즘 심신이 아주 건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상황에서도 마냥 부정적인 감정에 빠져들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 참 다행이다.
평소의 삶과는 다른 일상을 보내고 있지만 사실 일상이 무너진 것 까지는 아니다.
일상이 무너진 게 아니라 달라진 것이라고 되뇌고 있다.
평소에는 오전에 두 아이를 등원시키고 집에서 온라인으로 운동 수업을 듣거나 책을 읽곤 했지만...
지금은 일어나면 스스로에게 카톡 메시지 한 통을 보내고 아침을 챙겨 먹고 아이들과 놀이를 한다.
스스로에게 보내는 카톡 메시지는 원래는 하루 중 아무 때나 생각날 때 보냈는데 자가격리를 시작한 후부터는 매일 아침 눈뜨자마자로 바꿨다.
스스로에게 메시지를 보내기 시작한 건 올여름에 트레바리에서 운영하는 트담트담이라는 프로그램에 참여한 뒤부터였다.
(나다움, 감정, 관계, 일 이렇게 네 가지 주제로 한 달에 한 번씩 모여 여러 사람들과 함께 이야기 나누는 집단 심리 상담 프로그램이었다.)
이때 카운슬러님으로부터 '자기 충족적 예언'이라는 개념을 배운 이후로 실천하기 시작했다.
자기 충족적 예언
정의 : 상황에 대해 잘못된 판단이나 정의를 내려 다음 행동들이 처음의 잘못된 생각을 현실화하는 현상(출처: 나무 위키)
즉, 자기 예언을 충족하는 대로 관계가 흘러간다는 것.
예를 들어, '나 정도면 괜찮지.'라고 스스로 생각하면 실제로 타인과의 관계도 원만하게 흘러간다.
'저 사람이 나를 소극적이라고 생각하면 어쩌지.'라는 식으로 부정적인 자기 예언을 가지고 있으면 자기도 모르게 긴장하게 되고 결국 스스로가 생각한 대로 관계의 흐름이 이어진다는 것이다.
이 개념을 이해한 후 카운슬러님의 질문은 이거였다.
나는 어떤 자기 예언을 하고 있나요?
사실 무의식적으로 부정적인 자기 예언을 많이 했던 터라 굉장히 뜨끔했다.
이후에 알려주신 솔루션은 매일 자신에게 하루에 하나씩 문자를 보내는 것이었다.
주로 나는 감사할 일과 스스로에 대한 신뢰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자가격리가 시작된 이후에는 가족들이 아프지 않고 함께 있을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고, 나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에 감사한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실제로도 감사할 일들이 많이 있었다. (이건 다음 글에...)
24시간 집에서만 생활한 지 5일 정도 되고 보니 이제는 꿈에서도 자가격리 중이라는 것을 자각하고 있다.
어젯밤에는 꿈에 친구에게 산책하자고 문자를 보내려다가 '아 맞다, 나 집 밖으로 나갈 수 없지...' 하고 아쉬워했다. (심지어 이 친구는 실제 친구도 아닌 연예인이었다... 완전 개꿈.)
3일 차쯤 됐을 때 밖에 나갈 수 없다는 사실이 가끔씩 숨 막히게 느껴졌다면 오히려 지금은 제법 적응한 것 같다.
달라진 일상이 점점 익숙한 일상이 되어가고 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