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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굿키드 May 20. 2024

네 번의 소풍

7일 중에 4일을 소풍으로 보낼 줄은 몰랐어요.

은영님에게.


 지난 편지 제목을 읽고, 비워둔 1점은 무엇이었을까 궁금했는데 끝까지 읽고 나서는 고개를 끄덕였답니다. 생각해 보면 저도 누군가가 오늘 하루의 점수를 물어본다면 아무리 좋았던 날도 9점으로 대답했던 것 같아요. 10점을 주려다가도, '진짜 만점을 줄 만큼의 날이었나?'라는 질문이 선뜻 10점을 주기엔 스스로 주저하게 만드는 그런 마음이었다고나 할까요. 은영님의 남은 1점 속에 남겨둔 겸허함, 감사함 덕에 제게 남은 1점의 의미도 들여다볼 수 있게 되어서 너무 좋네요. 어쩌면 그 남은 1점은 다른 누군가를 위한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니 굉장히 의미 있게 다가오기도 해요!


은영님이 잠시섬에 참여해 강화도를 다녀온 게 평범한 워케이션과는 달랐다는 게 많이 놀라웠어요. 이번 주에 만났을 때 자세히 이야기를 들은 뒤에도 자주 생각이 나더라고요. 말 그대로 '잠시' 그리고 오롯이 내 감각에 집중하는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게, 그리고 그걸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게다가 지역에서!) 너무 좋은 것 같아요. 아이가 방학을 하면 함께 가볼까 하는 생각을 했지만, 그렇게 되면 '오롯이 나에게 집중'하는 건 한계가 있을 것 같더라고요. 짧게라도 혼자 다녀오는 일정을 고려해 보아야겠다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고 있어요. 가게 된다면 꼭 조언을 구할게요!

 

 이번 주에 저는 무려 네 번의 소풍을 다녀왔어요. 한 주가 7일인데 4일을 소풍으로 보냈다는 사실에 스스로도 좀 놀랐어요. 자주 간 것도 놀랍지만 모두 다른 사람들과 다른 관계 속의 '나'로 함께했던 소풍이었거든요.

첫 번째 소풍은 부모님과 셋이서 에버랜드로 다녀왔어요. 평소에는 애교 많은 딸이 아니지만, 그 날 만큼은 양쪽에 엄마, 아빠 팔짱을 끼고 "아, 너무 좋다~"하고 너스레를 떨었어요. 셋이서 놀이공원에 가는 것도 게다가 제가 모시고 가는 것도 처음이었기 때문에 모두에게 좀 더 특별한 하루로 다가왔답니다.

 두 번째 소풍은 은영님을 만난 날이었어요. 맛있는 국수도 먹고, 햇빛 좋은 옥상 정원에서 차 한잔 하며 이야기도 나눌 수 있어서 너무 좋았어요. 날씨와 장소 모두 우리의 소풍을 환영해 주는 것 같았어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도 왠지 발걸음이 들뜨더라고요!

 세 번째 소풍은 둘째 아이 어린이집에서 간 소풍이었어요. 아이 소풍을 따라가 본 것은 처음이라 저도 설레더라고요. 아침 일찍 일어나 아이가 좋아하는 김밥도 싸고 간식도 든든히 챙겼어요. 소풍 내내 손도 꼭 잡고 다녔고요. 눈이 마주칠 때마다 아이가 기분이 아주 좋을 때면 짓는 특유의 표정을(코를 찡긋하며 눈이 반달이 되도록 웃어 보이는...!) 보여줘서 무척 흐뭇했어요. 처음으로 아이 친구들을 만나 얼굴과 이름을 외우느라 좀 애먹긴 했지만요.


부모님과 함께한 첫 번째 소풍, 은영님과 함께한 두 번째 소풍, 두찌와 함께한 세 번째 소풍의 한 장면이에요.


 네 번째 소풍은 오늘 낮에 다녀왔어요. 오래된 친구들과 서울숲에서 만나 돗자리를 펴고 피크닉을 하고 왔어요.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에 맑은 공기도 좋았고, 아침에 집을 나서는데 베란다 너머로 두 아이가 "엄마, 잘 갔다 와! 사랑해!"하고 흔쾌히 보내줘서 마음이 더 좋기도 했어요. 오랜만에 만난 대학 친구들과 근황도 나

누고 예전 추억들도 이야기하다 보니 잠시나마 스무 살로 돌아간 것 같기도 해서 즐거웠어요.

 네 번의 소풍을 돌아보니 딸, 동료, 엄마, 친구... 제가 가진 여러 역할들이 보이더라고요. 신기하게도 다 다른 역할의 나로 함께한 소풍이었던 거 있죠? 오늘 친구들이랑 만났을 때 이런 얘기를 나눴어요.

 "타인에게 어떤 존재로 기억된다는 건 얼마나 특별한 경험일까?"

누군가의 딸, 직장 동료(물론 우리도 이제 친구이지만요.), 대학시절 친구, 누군가의 엄마. 아무런 관계도 정의되지 못한 채로 스쳐 지나가는 수많은 사람들을 생각해 보면 같은 추억을 공유하고 서로의 기억 속에 머무른다는 건 참 소중한 일인 것 같더라고요. 은영님이 잠시섬에서 만난 사람들도 그런 의미에서 참 특별한 인연이었을 것 같아요. 지금의 저와 은영님처럼요!

 

 오늘 하루 스스로 회고해 보며 점수를 준다면 저는 10점 만점에 10점을 줘보고 싶어요. 그동안 확신이 없어서 주지 못했던 점수지만 오늘 만큼은 '이만하면 좋았지 뭐!'의 마음으로, 그리고 소풍을 함께해 준 사람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모두 담아 10점으로 할래요. 아, 그리고 다음 주에는 혼자만의 소풍도 즐겨봐야겠어요. 요즘 날씨가 너무 예쁘니까요!



- 24년 5월 19일, 기분 좋은 일요일 밤


일요일 밤에 적어둔 아홉 번째 편지를 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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