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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델몬키 Apr 11. 2023

우리는 어떻게 아침형 인간이 되었는가

이제 4일 차


미라클 모닝!


작심삼일은 차라리 양반이라는 잔인한 성공률.

체력, 의지, 생활습관 3박자를 골고루 갖추어야 들이댈 법한 넘사벽 난이도.

비장한 각오가 무색하게 '그래, 나는 안될 거야'로 슬그머니 접는 것이 미라클 모닝의 참된 깨달음이다. 우리 부부로 말할 것 같으면 이런 깨달음에 수 십 번 담금질된 철저한 저녁형 인간이다.


저녁형 인간에게도 인생을 개벽할 기회는 찾아오는데, 반주를 곁들인 저녁 식사 중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면 대책 없이 희망적으로 변해 계획을 세우고 뭐든지 할 수 있다는 격렬한 믿음(알고 보니 술기운)에 빠져버린다.


"우린 이렇게 살 사람들이 아니다."

"어? 그거 될 거 같은데?"

"나는 너 똑똑한 거 알았다"

"할 수 있다, 해보자, 내일부터."


...애초에 무의미한 작당이었던 걸까. 열정으로 이글대던 다짐들도 아침의 직사광선 앞에선 하염없이 타들어 간다. 밤 시간을 좀 즐겼다는 이유로 간밤의 희망들을 제 손으로 박살 내는 심정을 아는가? 수면 부족, 피로, 늦잠, 눈치, 무기력함, 게으르다는 자책, 잠만보라는 불명예... 이런 게 반복되면 주어진 운명에 순순히 따르는 것이 차라리 개운하다고 믿는다.


저녁밥을 가장한 평일 술상과 적당히를 모르는 진상 둘



그랬는데! 그런 우리 집에도 6시, 아니 더 구체적으로 말하고 싶다, '새벽' 6시면 모닝콜이 울린다. 역시나 두어 번 모닝콜을 넘기는 듯하다가... 10분 뒤면 정말 침대에는 아무도 없다! 장족의 발전이다.


우리는 이번 주 월요일부터 무려 4일째 새벽 기상을 이어가고 있다.

"6시가 새벽이라고? 아침이지"라고 김 빼지 마시라. 원래 13kg보다 3kg 빼기가 더 어렵고, 밤을 새우는 것보다 2시간 일찍 일어나는 것이 더 힘든 법.


계기는 현실적이다.

내 남편 룡이가 요즘 목수학교를 다니기 때문이다. 9시 수업 전까지 1시간 30분 거리를 달리려면 6시에 부지런히 일어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나는 어떠한가?

출근 소요 시간은 역시 1시간 30~40분 내외(어디든 1시간 반, 이것이 경기도의 국룰). 나는 전형적인 ENTJ형으로 통제와 계획에 특화된 인간이기에 소중한 3시간을 출퇴근 길에 흩뿌린다는 느낌이 싫었다.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고 작년 이맘때 갓생 살던 느낌을 살려 아침 시간을 활용해 보기로 했다. 때마침 집사람도 등교를 위해 그 시간에 일어나야 한다니 듣던 중 반가웠다.(원래 부부는 누구 하나가 편하게 있는 꼴을 보면 부아가 치미는 법이다.)


성인 적정 수면시간(7~8시간)을 고려한다면 우린 밤 10시경에는 곤히 잠들어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집에 와서 저녁밥을 지어먹으면 10시다. 치우고 씻으면? 애처롭게도 11시. 결국 우린 배부른 보아뱀처럼 저녁밥을 채 소화시키지도 못한 채 11시가 되면 서서히 자야 한다는 강박을 느끼고, 11시 반이면 이젠 모든 게 다 끝났다는 심정으로 자리에 든다.


잠 못 이루는 밤, 내 옆 사람은 이미 잠든 것 같은 위기감에 초조하게 줄어드는 수면 시간을 계산하는 것은 정말이지 고통스럽다. 하지만 자야 한다. 몇 시간 뒤면 지금 이 10분이 얼마나 소중한 지를 처절하게 느끼게 될 테니.


1시간 동안 눈 감고 있기로 벌 받는 기분...


자, 이제 엄연한 4일 차가 되었으니 동료 올빼미들에게 미라클 모닝에 대해 조언 좀 하겠다.

성공 방법은 하나다. 그냥 몸뚱이를 일으켜라.


은은하고 경쾌한 음악을 듣거나, '오늘도 감사합니다' 속삭이거나, 기분 좋은 하루를 떠올리는... 뭐 그런 달콤한 방법은 일단 몸을 일으킨 뒤 할 일이다. 미라클 모닝의 시작은 고강도 운동처럼 거칠고 단호하다. 단번에 몸부터 일으켜야 한다. 오늘이 소풍날임을 깨달은 아이처럼 눈을 번쩍! 번개처럼 후다닥!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생각 같은 거 하지 말고 발로 이불을 박차고 그 반동으로 몸을 일으키는 거다. 살살 달래 봤자 "그럼 딱 10분만 더..."라는 위험한 협상에 빠진다. 10분 뒤가 2시간 뒤가 되는 경우, 허다하다. 더 잘까 말까 머리를 굴리는 대신 몸을 굴려 일으키자. 그러면 모든 번뇌가 끝난다.




하, 6시네? 으ㅓ하라화ㅏ촿ㅎㅎ!!!! 자, 이렇게 일어나는 겁니다. 참 쉽죠?


그러려고 그런 건 아닌데, 기상 시간의 변화가 제주 이주를 준비 중인 우리 부부에게 좋은 계기가 되었다. 간절한 염원이나 굳건한 희망회로가 지쳐갈 즈음 등장한 현실적이고 반복적인 실천 강령! 어느 것 하나 결정되거나 진행된 것 없는 상황에서 그럼에도 나아간다는 확신을 준달까?


제주 이주를 결정한 뒤 주변에 곧장 선언을 하고, 곧장 일을 그만두고 빠르게 임장을 다녀오고, 오일장시장 매물을 달달 외운다고 해서 제주에 바로 가지진 않더라. 전세 만료일, 부동산 시세, 보았던 매물의 조건 등등... 되려고 하면 쉽게 될 일들이지만 아직은 뭔가 하나씩 어긋났다. 서로 말하지 않았지만 약간씩 김이 빠졌고 '이러다 가긴 가려나?' 싶은 생각도 살포시 들었다.


'6개월이면 제주에 내려가겠는데?'라고 자신만만했던 계획표를 현실적으로 뜯어보니 이건 최소 1년짜리 프로젝트였다. 그러려면 지치면 안 된다.


룡이도 매물 찾기에 대한 조바심을 내려놓고 목수 학교에 등록을 했다. 나도 느슨해진 마음을 단단히 조여 매고 싶었고. 그렇게 우리의 아침 시간이 시작되었다. 6시 알람이 울리면 죄 없는 이불은 또 옆구리를 걷어 차인 채 하루가 시작된다. 부스스 눈을 뜬 우리 강아지도 느닷없이 빨라진 아침밥 시간에 바로 적응했다(밥은 늘 반가워!).



오늘도 우리 의지와 선택으로 기상 시간을 선택했다는 자신감! '하니까 되더라'는 단순하고 강인한 믿음!

이런 하루가 켜켜이 쌓이면 우리는 제주에서도 잘할 거고, 하면 된다고 말할 것이다. 더 이상 한밤 중의 작당이 아니라 아침 댓바람의 실천인 것이다.


폰도 좀 보고, 괜히 아령 한번 들었다 놓고, TV소리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간간이 개도 짖고, 이방 저 방 불을 켜며 돌아다니던 밤 시간의 넉넉함은 사라졌지만 대신 단단한 아침 시간으로 몸과 마음에 잔근육을 붙인다.


그러려면 오늘도 11시 반 전에는 자야 한다.

사실은 이게 제일 어렵다.


일어나자마자 코를 파고 바로 글을 쓴다.


늘 2차 안주로 라면이나 끓이던 냄비였는데 이 시간에 아침용 계란을 삶는다? 인생 재밌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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