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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아한 숲길 Feb 11. 2022

그녀의 슬픔을 애도합니다.

아픔이 조금씩 희석되기를

  일주일에 세 번 그녀를 만납니다.

아침 일곱 시에 우린  온라인으로 만나서

20분 정도 영어수업을 합니다.

그녀는 나의 좋은 선생님이고 나는 그녀의

착실한 학생입니다.


  오늘도 여느 때처럼 그녀와 만났습니다.

그런데 화면의 배경이 평소와는 달랐어요.

안 그래도 궁금하던 차에 그녀가 말했습니다.

부모님 집에 와 있다고. 어제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그녀는 필리핀 마닐라에 살고 부모님은

멀리 떨어진 시골 마을에 사십니다.

내게 선생님이자 친구인 그녀의 아픔에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어설픈 영어로 그녀를 위로했고

오늘 수업은 그만하자고 했습니다.

경황도 없을 텐데 수업이라니요.

그러자 그녀는 한국말로

"괜찮아요."라고 했어요. 

하지만 어떻게 괜찮을 수가 있을까요.

결국 오늘 수업은 짧게 마쳤습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너무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겨우 59세라고 했습니다.

폐암으로 두 달간 심하게 고생하시다가

돌아가셨다고 말하는 그녀는

애써 담담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내 아버지를 떠올려봅니다.

그녀의 아버지보다 훨씬 나이가 많으신데도

혹여나 아버지가 떠나시면 그 슬픔을

감당할 자신이 없습니다.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꽉 막혀오고

눈물이 납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다는 것

그 이상의 슬픔이 있을까요?

반대로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것

이보다 감사한 일이 있을까요?


  오늘도 아침 일찍 일어나서

까불거리며 장난치는 아들과 남편을

가만히 바라보면서

사랑하는 이와 함께 하는 모든 시간의

소중함을 되새깁니다.

소중한 존재가 곁에 있다는 것 맛으로도

충분히 감사한 일이라고

더 큰 것을 바라는 건 욕심일 뿐이라고.


  그녀의 아픔을 애도하며

저절로 차분해지는 아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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