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 식구들이 모이면 치킨을 자주 시켜 먹어요. 일단 아버지가 치킨을 엄청 좋아하시고, 형부와 조카들도 치킨에 열광하기 때문이죠. 얼마 전에도 치킨을 함께 먹다가 우리 사 남매 초등학교 시절 얘기가 나왔어요.
"우리 어릴 적엔 치킨 한 번 먹기가 그렇게도 힘들었었지."
언니가 운을 떼고 나니 다들 한마디씩 거들었어요.
"맞아. 일 년에 한 번 어린이날에나 먹을 수 있는 귀한 음식이었어."
"어린이날인데도 밭에서 일하느라 엄청 힘들고 속상했지. 그러다가 치킨이 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 행복하더라."
"난 치킨도 좋았지만 먹고 나서 소나무 아래 누웠을 때 불었던 시원한 솔바람이 잊히지 않아. 더위에 지친 몸을 되살려주던 바람."
그때 아버지가 말씀하셨어요.
"지금 와서야 하는 말이지만, 그때는 살림이 힘들어서 치킨 한 마리 시키려고 돈을 꿨었다."
그 말씀에 모두 숙연해졌답니다. 우리 부모님이 사 남매 키우시느라 얼마나 고달프게 살아오셨는지 어느 정도 안다고 생각했는데... 치킨 한 마리 살 돈이 없을 만큼 힘드셨다는 건 몰랐었거든요. 지금으로부터 30~40년 전만 해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렵게 살았었죠. 그때에 비하면 참 많이 풍요로운 시대가 되었어요. 치킨 한 마리로 어른 둘과 아이 넷이 먹으려면 양이 많이 부족했을 텐데... 아버지랑 어머니는 거의 못 드셨겠다 싶은 생각이 이제서야 드네요.
며칠 전에 친구가 보내 준 쿠폰으로 치킨 한 마리를 주문한 후 찾으러 갔어요. 치킨 가게 아저씨가 휴대폰 번호 뒤에 네 자리를 물으시는데 갑자기 생각이 안 나지 뭐예요. 그냥 생각나는 대로 대답했는데 말하고 나니 아뿔싸, 남편 휴대폰 뒷번호였습니다. 혼자 얼마나 민망하고 황당하던지. 전에 없이 사소한 기억을 놓치는 일이 생길 때마다 나이를 실감합니다. 아버지와 어머니처럼 나이 먹어 가는 것이겠지요.
치킨을 받아들고 집으로 가다가 아파트 단지 안에 있는 야외 테이블 앞에 멈추어 섭니다. 같은 음식이라도 집에서 먹는 음식보다는 야외에서 먹는 게 훨씬 맛있잖아요? 평소에는 건강을 생각해서 먹는 시늉만 하던 치킨을 신나게 먹어줍니다. 건강을 위하는 것도 좋지만 어차피 먹을 거 기분 좋게 먹었더니 완전 꿀맛이네요. 어린 시절에 먹었던 치킨 맛이 그대로 살아나는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