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공선옥의 산문을 읽었어요. 지금껏 그가 살아온 수많은 집들과 아릿하면서 가슴 아픈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뛰어난 문체로 담아낸 책입니다. 산 높고 골짜기 많다 보니 햇빛보다 그늘이 많았던 어린 시절 작가의 집은 여름엔 더 덥고 겨울이면 더 시리고 추웠다고 해요. 이후 아버지가 어설프게 지은 집은 부로꾸벽에 시멘트 기와를 얹은 겉모양만 한옥이었던 집이었대요. 아늑하고 편안한 집을 꿈꾸었으나 좌절되었던 것이죠. 부엌 아궁이가 뒤꼍보다 낮아서 비만 오면 아궁이 가득 물이 차는 바람에 비 오는 날 아침엔 아궁이 물부터 퍼내야 했던 집, 물을 퍼내고 다시 물이 고이는 동안 책을 읽다 보니 오히려 책을 많이 읽는 기회가 되었다고 하면서 힘듦 속에 큰 위안을 찾아냅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했겠죠?
< 집도 사람과 같다. 사람에게 인격이 있으면 집도 그와 같은 것이 있다. 집도 생각할 줄 안다. 집도 표정이 있다. 때로는 집이 말도 한다. 집은 웃는다. 집은 울기도 한다. 나는 그 모든 것을 느낌으로 알았다. 이제 와 생각해 보니 그 집이 내게는 얼마나 미운 집이고 미운 만큼 얼마나, 얼마나 정다운 집인지. p31>
집에 대한 추억과 사색이 담긴 글을 읽다 보니 내 삶에 추억으로 새겨진 수많은 집들이 떠올랐어요.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집은 태어나 자란 집이었죠. 키가 160cm만 넘어도 고개를 숙이고 들어서야 할 만큼 지붕이 낮았던 낡은 한옥. 작은 마당과 작은 텃밭 그리고 파란 페인트 칠한 철대문이 있었어요. 지금보다 훨씬 작았던 유년의 내가 잠자고 놀았던 집과 마당, 새로 집을 지어 이사 가고 나서 한참 후에 그 집은 사라졌어요. 새로운 집 주인이 부부 싸움 끝에 불을 냈고 그 뒤로 아예 부수어 버렸다고 하네요. 어린 시절의 집이 사라졌다는 건 매우 허탈하고 아쉬운 일이더군요. 마치 어린 시절의 내가 사라진 것 같아요. 더 아쉬운 건, 그 이후에 지은 집도 또 다른 사정으로 몇 년 전에 사라졌어요. 마당에 심은 갖가지 유실수가 풍성한 열매를 내어 주던 집, 아버지가 직접 돌을 쌓고 소나무를 심어 제법 그럴듯한 조경을 자랑하던 집이었는데... 글을 쓰다 보니 갑자기 슬픔이 밀려옵니다. 내게 말 걸어 주고 보듬어 주던 오래전 집들이 그리워집니다.
< 나는 그러니까 너무도 진부한 이유에서 글을 썼던 것이다. 다른 무엇도 아닌, 가난하고 외로워서! 가난하고 외로운 나날들의 노동이 너무 힘겨워서. 그것이 서러워서. 그해 여름방학, 선풍기도 없는 방 안에 틀어 앉아 안방에서 들려오는 아버지의 고통에 찬 앓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불현듯 글을 썼던 것이다. p 227>
가난하고 외롭고 서러워서 글을 썼다는 말에 슬픔이 서려있네요. 중학교 1학년, 그 어린 나이에 글쓰기를 통해 위로받고 힘 받는 경험을 하게 되었던 게 아닐까 싶어요. 답답하고 힘들 때 글을 쓰다 보면 어느 사이엔가 마음이 풀어지고 답을 발견하는 경험을 하기도 하잖아요. 글로 수다를 떨다가 마음이 홀가분해지기도 하고요. 이처럼 글쓰기는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는 힘이 있습니다.
집이라는 공간이 우리에게 주는 위안과 의미를 되새기며 각자의 추억을 되새기게 만들어주는 책입니다. 전라남도 사투리의 섬세한 아름다움을 음악처럼 담아냈고요, 평소에 생각지 못했던 사회적 문제의 일면을 전하며 공감을 끌어내 주기도 해요. 아, 그렇구나. 누군가의 사치가 누군가에게 죽도록 힘든 고통이 될 수도 있겠구나. 이런 생각이 들게 해준다는 것이지요. 문학적 감성과 깊이가 있어서 좋은 책, 다 읽었는데도 한번 더 읽고 싶어지는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