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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필로 쓰기 /김훈 산문/ 문학동네

연필로 써 내려간 아프고 다정한 이야기들

by 단아한 숲길

연필로 쓰기 /김훈 산문/ 문학동네


"연필은 내 밥벌이의 도구다.

글자는 나의 실핏줄이다.

연필을 쥐고 글을 쓸 때

나는 내 연필이 구석기 사내의 주먹도끼,

대장장이의 망치, 뱃사공의 노를

닮기를 바란다."



초등학교 국어시간에 글짓기를 하다 보면 여기저기에서 사각거리는 연필 소리가 들렸던 기억이 나요. 물론 곳곳에서 한숨 쉬는 소리도 섞여 나왔지만요. 컴퓨터를 활용해서 글 쓰는 게 당연해진 시대에 김훈 작가님은 여전히 아날로그 감성으로 글을 씁니다. 책 날개에 보니 48년생이라고 하시네요. 아무래도 연필로 쓰는 것이 훨씬 익숙한 세대이기 때문이겠지요. 아니면 연필의 감성을 사랑하시기 때문일지도.


제가 김훈 작가를 처음 알게 된 건 「칼의 노래」라는 소설을 통해서였어요. 역사를 기반으로 한 이순신 장군에 대한 이야기로, 김훈 작가님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죠. 그 후 「남한산성」이라는 소설도 읽어보았는데, 매우 깊이 있고 인상적인 작품이었어요. 구성과 문체가 뛰어난 건 말해 뭐할까요. 책날개에는 소설 「공터에서」와 산문 「라면을 끓이며」를 언급하셨더라고요. 이 책들도 꼭 읽어봐야겠습니다. 우리 시대 최고의 문장가 중 한 명으로 꼽히는 김훈 작가님의 작품은 소설이든 산문이든 쏙 빠져서 읽게 만드는 매력이 있거든요. 혹여 글쓰기에 관심이 있고 필사할 만한 문장이 많은 책을 찾으신다면 바로 이 책 #연필로쓰기 를 추천합니다.

2019년에 일산에서 마무리하신 이 책에는 작가의 삶을 구성하는 여러 파편들, 스쳐 지나가는 것들, 하찮고 사소한 것들, 날마다 부딪치는 것들을 담았다고 하셨어요. 책을 읽어보니 작가님이 70년 이상의 세월을 살아오면서 마음에 깊이 새겨진 역사적 아픔과 절망 혹은 삶에서 발견한 다정한 것들이 담겨 있더군요. 다양한 주제로 글을 쓰셨는데 세월호나 민주 항쟁에 관련한 부분에서는 울컥 눈물이 솟기도 했어요.


처절하게 가난했던 시절의 기억들, 슬프고 가슴 아픈 역사에 대한 이야기, 오이지나 떡볶이 등 음식에 대한 추억과 명상, 이순신 장군에 대한 이야기 등 수많은 이야기가 작가의 깊은 의식에서 연필심을 타고 종이로 흘러 이 책을 탄생시켰습니다. 역사와 문장에 대한 감각을 키워준다는 점에서 매우 훌륭한 책이라고 생각해요. 작가가 온몸으로 겪어낸 경험들이기에 더 강렬하게 공감되기도 하고요.


작가의 삶이란 이런 것일까요. 지우개 가루가 눈처럼 쌓이도록 쓰고 지우고 다시 쓰는... (노트북에 쓰고 지웠다가 다시 쓰는)

이렇듯 힘겨운 과정을 통해 얻어진 결과물을 보면 정말 감동적일 것 같아요. 이 책은 이번에 두 번째로 읽어 봤는데, 담에 한 번 더 읽어봐야겠어요. 너무 유익하고 멋진 책이라서.



지우개 가루가 책상 위에

눈처럼 쌓이면

내 하루는 다 지나갔다.

밤에는 글을 쓰지 말자.

밤에는 밤을 맞자.

(김훈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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