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가끔 연락하는 한 살 어린 동생이 있습니다. 마흔을 훌쩍 넘긴 그녀는 세 아이를 양육하면서도 여전히 소녀처럼 맑은 사람입니다. 오랜만에 그녀에게 카톡이 왔습니다. 그녀의 카톡을 확인하는 순간 묵은지 사건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때는 약 20년 전 신혼 초반,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랬는지 남편 생일을 축하해 주겠다며 지인들을 집에 초대한 적이 있었어요. 남편 생일에 손님을 초대하는 일이 그때도 흔치는 않았거든요. 다들 속으로 별나다고 했을 거예요. ( 굳이 변명하자면 친정어머니가 매 년 아버지 생신 때마다 동네 친척분들 초대하는 모습을 보고 자란 영향인 듯합니다...)
어쨌든 몇 가지 요리를 준비했는데 마무리가 덜 된 상태여서 좀 일찍 오신 분들의 손길이 보태졌습니다. 이때 집에 조금 일찍 도착한 동생이 뭐라도 돕겠다며 그릇에 음식을 담은 후 깨를 뿌렸습니다. 아니, 뿌린다기보다는 들이부었습니다. 평소 참깨를 조심스레 솔솔 뿌리던 내 눈에 퍽퍽 뿌리는 동생의 모습은 낯설고 불편하게 느껴졌어요.
"아, 이렇게 많이 뿌리면 어떻게 해! 아 진짜!"
톤이 낮으면서도 짜증이 묻은 목소리였어요. 이성이 제지할 틈도 없이 욱하는 감정이 툭 솟아올라 동생을 구박하고 만 것입니다. 도와주려고 수고하고 있는 사람한테 말이지요.
평소 화를 잘 내는 편도 아닌데 그날따라 왜 그리 까칠했는지 모르겠어요. 여하튼 일은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그 자리에서 바로 미안하다고 할 수도 있었고 그날 오후 늦게라도 미안하다고 하면 좋았을 텐데 참 길고 긴 시간을 지나 오늘에서야 미안하다는 말을 꺼냈답니다. 워낙 오래전 일이라서 동생이 기억하고 있을까 싶었는데 기억하고 있더라고요. 때린 사람은 쉽게 잊어도 맞은 사람은 잊을 수 없는 법이지요. 그 날 보았던 동생의 당황스러운 표정이 아직도 선명하게 그려집니다.
별 일도 아닌데 왜 그렇게 마음에 오래 담고 있었냐고 하면서 동생이 웃었습니다. 사실 저도 그 이유를 잘 모르겠습니다. 생각났지만 망설였고 미루다가 깜빡하기를 반복한 것 같아요. 그리 큰 사건도 아니었는데 왜 그렇게 미련하게 굴었는지 스스로 생각해도 답답한 노릇입니다.
"너한테 그렇게 하고 나서 나 이불킥 했잖아. 그러니 어찌 잊을 수가 있겠니? 진작 사과 못해서 미안"
"언니, 그럼 오늘부터 이불 덮고 편하게 자."
결국 동생이 사과를 받아 주었어요. 명치에 얹혀있던 작은 고기 조각 하나가 쑤욱 내려간 느낌입니다. 사람들과 얽히고설켜 살다 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에게 상처를 준 일들이 참 많았겠다 싶어요. 그 모든 상처를 다 수습할 수는 없겠지만 할 수 있다면 하나라도 더 수습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혹시 이 글을 읽으시는 분 중에 제 지인이 있다면 과거에 실수와 부족함을 넓은 아량으로 이해해 주시길 부탁드려요.)
김수현 작가의 책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에 상처의 수요와 공급 불일치에 대한 내용이 참 인상적이었어요. 우리는 나 혼자 상처받았다고 생각하며 자기 연민과 분노에 빠지지만, 우리가 받은 상처를 상대가 전부 알지 못하는 것처럼 우리 역시 우리도 모르게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며 산다는 것을 기억해야겠다는 내용이지요.
상처받은 사람은 많지만 상처 준 사람은 없는 수요 공급의 불일치.
그런데 가만히 보면 상처를 많이 받는 사람들이 오히려 타인에게 상처를 많이 주는 경향이 있더라고요. 내 상처에만 매몰되지 말고 나 역시 누군가에게 상처 주며 살고 있지 않은지 살펴야겠어요.
동생에게는 뜬금없는 사과였겠지만 서로의 마음이 말캉해지는 시간이었어요. 20년 만에 용기 내어 건넨 사과 덕에 마음에 햇살 한 자락이 추가되었네요. 완벽하지 않은 존재끼리 서로 상처 주고 상처받으며 사는 게 어쩌면 당연한 것 같아요. 받은 상처는 무딘 맘으로 털어버리려고 노력하고 혹여 내 말과 행동이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지는 않았는지 살피면서 오늘도 살아가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