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깊이 들어가고 싶었다. 찰싹 거리는 파도에 발목만 담근 채 폴짝거리는 것도 나름 재미있지만 더 넓고 깊게 펼쳐진 바다가 나를 부르고 있었다. 바다... 얼마나 다이나믹하고 신비로운 세계인가.유연한 물고기처럼 바다를 휘젓고 싶었다. 그러나 내 수영 실력은 오래전에 새싹 단계에서 멈춰버렸다. 아후, 열매 단계까지 갔어야 했는데...
바다를 마음껏 누비고 싶으면 수영의 달인이 되면 된다. 답은 쉬우나 실행이 어려울 뿐. 포기하고 싶은 마음과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들을 이겨내고 또 이겨내야 한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누구나 글을 쓸 수 있지만 글 쓰는 사람으로 사는 건 또 다르다.집중하고 연구하고 노력해야 한다.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지만 내공을 제대로 갖춘 작가가 되려면 보다 치열하게 읽고 써야 한다. 지금 나는 그 출발점에 서 있다.
그동안 글쓰기는 못다 한 숙제처럼 나를 따라다녔다. 학창시절에 글짓기 대회에서 자주 상을 받았던 소소한 이력에 미련을 두었을지도 모른다. 막연하게 작가가 되고 싶었던 어린 시절 꿈을 차마 내려놓지 못하고 살아왔다.
직장에 다닐 때는 잠깐씩 틈을 내어 일기 형식의 글을 꾸준히 썼고, 결혼하고 나서는 라디오에 보낸 사연이 뽑혀서 다양한 선물을 받기도 했다. 아이가 태어나고 나서는 언젠가 제대로 글쓰기를 배워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아이가 네 살이 되어 기관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을 때, 제일 먼저 한 일이 글쓰기 수업 등록이었다. 마흔 넘어 새롭게 시작하려니 막막하기도 했지만 글쓰기를 제대로 배우게 되었다는 기쁨에 하루하루가 꿀같이 달았다. 글이 잘 안 써질 때는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지만 글을 완성하고 나면 어려운 수학 문제를 풀어냈을 때와 비슷한 쾌감에 짜릿했다. 그 이후로 더 욕심을 냈다. 사이버 대학교 문예 창작과에 편입해서 올해 2월에 졸업을 하게 된 것이다.
오래전부터 미친 듯이 읽고 미친 듯이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하지만 현실과 타협하고 게으름에 무너지길 반복해왔다. 졸업하고 나서도 다시 현실과 타협을 시도했다. '글 쓰는 건 나중에 해도 되니까 당장 바쁜 일들에 시간을 투자하는 게 좋지 않을까?' 이런 생각에 흔들렸다. 브런치 작가가 되기 전까지는.
어느 날 뜬금없이 브런치 작가에 도전해보자는 생각이 고개를 들었다. 블로그 이웃을 통해 브런치라는 존재를 알게 된 지 6개월 정도 되었지만 언젠가 도전해보겠다는 막연한 생각을 하던 때였다. 갑자기 글쓰기에 열중하고 싶어졌고 브런치 작가가 되면 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독자와 소통할 수 있는 공간, 출간을 준비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것도 매력적이었다. 나도 언젠가는 내 이름 석 자 당당하게 박힌 책을 쓰고 싶었으므로.
검색해보니 심사가 까다로워졌다고 했다. '내 실력으로 통과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망설였지만 일단 도전하기로 했다. 때로는 계산 없이 무식하게 밀어붙이는 객기가 필요할 때도 있다.
작가의 서랍에 글을 모으고 글의 방향을 잡는데 보름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육아와 살림, 직장 일을 병행하면서 시간을 쪼개어 하려니 쉬운 일은 아니었다. (지금 이 글도 며칠째 쓰고 있는지 모른다.)
떨어지면 말지 하는생각으로 지원하고 나니 시험 결과를 기다리는 수험생처럼 마음이 두근두근했다. 지원서를 내고 나서 평균 5일 안에 연락을 준다고 했는데 정확히 5일 만에 (주말 포함) 연락이 왔다.
'브런치 작가가 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회사에서 일하다가 브런치에서 온 메시지를 보고 깜짝 놀랐다. 혹시 잘못 본 건 아닐까 해서 다시 보고 또 보았다. 분명히 내게 온 축하의 인사였다. 막연하게 미뤄 두었던 꿈이 성큼 다가온 느낌, 이제는 더 적극적으로 노력해 보자는 열정이 가득 차올랐다.
아직 변변한 작가도 아닌데 작가라는 호칭을 들으니 부끄럽기도 하고, 작가라는 이름이 부끄럽지 않을 만큼 성장해야겠다는 욕심도 생긴다. 하루에 겨우 한 시간 정도 시간을 내서 글을 쓰고 있지만, 꾸준히 하다 보면 가랑비에 옷 젖듯 내공이 쌓이고 깊어지리라.
나는 깊어지고 싶고 아름다워지고 싶어서 글을 쓴다. 내면이 깊고 아름다운 사람은 스스로도 행복하고 주변에 좋은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어떤 내용으로 글을 써야 할지 기본적인 구상은 잡았지만 본격적으로 쓰지는 못하고 있다. 눈이 침침한 것과 시간이 부족한 걸 핑계 삼아. 다만 일상에서의 느낌과 감동은 계속 쌓이고 있다. 글로 변환되고 싶은 삶의 조각들이 노트북 앞에 수북하다. 엄마, 아내, 딸, 이웃으로 살면서 겪고 느끼는 소소한 사연들이 글로 태어나고 싶어 한다.
하루 종일 글을 쓰고 싶을 때도 있지만, 우직한 소가 뚜벅뚜벅 앞을 향해 걷듯 욕심을 비우고 써나가야겠다.당장 부족해 보이는 모습에 주눅 들지 않고 노력하다 보면 깊어지는 날이 있으리라. 다른 작가님들도 마찬가지겠지만 브런치라는 공간이 있어서 참 든든하고 고맙다. 막연한 꿈을 구체화시켜 주었고 자꾸 글을 쓰고 싶게 해주었다.자유롭게 바다를 누비듯 사유의 바다를 마음껏 누비며 작가로서 글로 빛을 발하는 그날을 꿈꿔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