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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 부자의 종착역은 어디일까?

그만하고 싶다. 취미 부자...

by 단아한 숲길


요즘 중학생들에게 하고 싶은 일이 뭐냐고 물으면 대부분의 아이들이 잘 모르겠다고 하거나 없다고 대답한다고 한다. 한창 꿈 많을 나이에 꿈이 없다는 건 얼마나 서글픈 일인가...


그런데 꿈이나 열정이 너무 많아도 힘들다. 관심분야가 많고 다 잘해 낼 것 같은 자신감까지 넘칠 경우, 너무 많은 가지로 인해 어느 순간 지치게 된다. 내가 그렇다.


돌이켜보니 중고등학생 시절엔 나 역시 이렇다 할 꿈이 없었다. 막연하게 글 쓰는 작가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그래서 문학 동아리 활동을 했으나 열심이 부족했다. 그때 조금 더 글쓰기에 집중했더라면 지금쯤 내 인생은 달라져 있을지도 모른다.


결혼 이후, 10년 동안 우왕좌왕했다. 둘 다 아이를 엄청나게 이뻐하는데 우리를 닮은 존재가 뜸을 들였기 때문이다. 건강관리와 병원(시험관 시술) 스케줄로 인해 직장을 꾸준히 다닐 수 없었다. 그때부터 무언가 새롭게 배우는 걸 즐기기 시작한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니 배움은 스트레스에 대처하는 나름의 방식이었다.


결국 취미 부자의 시작은 방황 때문이었던 걸로. 하하하.

내겐 취미가 많아도 너무 많다. 이미 지나온 취미도 있고 현재 진행형인 취미도 있다. 취미가 많은 게 무슨 문제냐고 하는 이도 있겠지만 사실 심각한 문제다. 조그만 나무가 가지만 무성하다고 생각해보라. 분명 심각한 일이다. 나무가 제대로 자랄 수 없다.

즐기면서 해야 할 취미생활이 시간적 경제적 부담으로 작용하기 시작하면 불안해진다. 아마 나처럼 취미 부자로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할 것이다. 그렇게 부담스러우면 가지치기를 하면 될 일이다. 이론상으로는 이게 답이다. 하지만 안타까운 건 가지치기할 결단력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다 좋다. 다 하고 싶다. 다 잘해 낼 것만 같다. 마음과 달리 현실은 버겁다. 이것이 지금 내 상태이며 이 상태가 5년 이상 지속되어 왔다. 지친다.

도대체 취미가 얼마나 많길래 취미부자일까? 아래에 지금껏 내게 달라붙은 취미들을 열거해 보려 한다.


독학으로 퀼트홈패션, 비즈공예를 배웠다. 비즈공예 재료와 각종 원단이 서랍장에 쌓여있다. 가끔씩 재료들을 꺼내어 뭔가를 만들긴 하는데 너무 많이 쌓여 있어서 안타깝다. 싸게 처분하자니 아깝고 가지고 있자니 짐이다. 그나마 퀼트는 비교적 자주 했더니 실력이 많이 늘었다.


사진을 취미로 시작했다가 지금껏 하고 있다. 가끔 행사 사진을 찍어주기도 하고 자연이나 일상을 찍기도 한다. 찍고 보정하는 일이 너무 재미있어서 되도록 계속할 예정이다.


캘리수채화는 강사에게 수업을 통해 잠깐씩 배웠다. 한 없이 부족한 실력이지만 요즘도 가끔씩 붓을 든다. 붓 끝에서 꽃이 피어나고 나무가 살아나는 경험은 참 매력 있다. 당장은 아니어도 나이 들어서라도 계속 하고 싶은 취미생활이다.


글쓰기는 꾸준히 해왔다. 틈 나는 대로 일기를 쓰고 생각을 정리해왔다. 그러다가 제대로 배우고 싶은 욕심이 생겨서 5년 전부터 시와 수필을 배웠다. 하다 보니 욕심이 생겼다. 사이버대학 문예창작과에 편입해서 2년 동안 수업을 듣고 올해 졸업했다. 코로나 때문에 졸업식이 취소된 게 아쉽지만 매우 뿌듯하다. 내 자신이 기특하다.


결혼 하기 전에 연극도 오랜 기간 했었고, 몇년 전에는 시낭송도 배웠다. 연극은 그렇다 치고 시낭송은 나중에라도 계속 배워나가고 싶다. 앞으로 기회가 된다면 목공예와 도자기 공예도 배우고 싶고 동영상 편집도 배우고 싶다.


상황이 이러하니 '선택과 집중'이라는 말에 관심이 갈 수밖에 없다. 하나씩 관심 갖고 하다 보니 어느새 취미 부자가 되어버린 나. 그래서 여러 번 가지치기를 시도했지만 비즈공예 하나를 떨구는 데 성공했을 뿐이다.


더 이상 이렇게 살 수는 없다. 과감한 결단이 필요하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을 거듭한 결과 글쓰기라는 결론이 났다. 그러므로 앞으로는 글쓰기에 좀 더 집중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 '브런치'라는 공간을 알게 되었을 때 기뻤다. 내 글을 남기고 공유할 수 있는 공간으로 블로그도 가능하긴 하지만 블로그와는 또 다른 매력이 있는 공간이다.


글쓰기에 집중하면서 다른 취미들은 하나씩 정리하거나 보류하는 걸로 하자. 다 잘하고 싶은 욕심을 조금씩 비워가기로 하자. 지금으로선 이게 최선이다. 취미부자의 방황을 끝낼 수 있을 것인가. 나도 내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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