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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튼 파는게 이리 어려워서야.

육아는 어려워. 물건에 대한 집착일까, 정이 많은 걸까?

by 단아한 숲길

커튼을 팔아야겠어

자꾸만 안방 커튼이 눈에 거슬렸다. 처음에 살 때는 예쁘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걸어 놓으니 길이가 바닥에 끌리고 색감도 가구와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미 설치했으니 그냥저냥 1년 넘게 사용긴 했는데 갈수록 눈에 거슬리니 이를 어찌할꼬. 궁리하던 끝에 생각났다. 바로 당근 마켓!

당근 마켓에 팔고 다시 주문하면 될 일이었다. 알아보니 구매한 가격의 반 가격에 판 후에 몇만 원 더 보태면 원하는 커튼으로 교체할 수 있었다. 남편에게 얘기했더니 굳이 바꿀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했다.

퇴근하자마자 사진을 찍어서 당근 마켓에 올렸더니 30분 만에 연락이 왔다. 다음 날 오전으로 거래 약속을 잡고 나서 새로운 커튼을 온라인으로 주문했다.

"여보, 안방 커튼 바로 팔렸어. 낼 오전에 문고리 거래하기로 했으니까 커튼 좀 떼줄래요?"


이때 예상치도 못한 복병이 나타났다.

"엄마, 커튼 팔았어?"

"응. 왜?"

"왜 팔아? 내가 저 커튼을 얼마나 좋아하는데."

"그래? 엄만 몰랐네. 걱정 마. 더 예쁜 커튼 주문했어."

"싫어. 싫단 말이야. 난 저 커튼이랑 정들었는데 왜 나한테 말도 안 하고 팔아? 팔지 마, 팔지 말란 말이야."


아이의 눈에서 액체가 솟아나기 시작했다. 당황스러웠다. 안방 커튼을 바꾸는 것이 도대체 저랑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아이가 울자 남편이 아이 편을 들었다.

"그냥 팔지 마. 난 지금 커튼 이쁘기만 하고만 왜 굳이 바꾸려고 해?"

"뭐야. 당신도 괜찮다고 했잖아?"

"마지못해 그러자고 한 거지. 애가 저렇게까지 말하는데 꼭 팔아야겠어?"


며칠 전에 컴퓨터 의자를 팔 때도 저 녀석은 눈물을 줄줄 흘리며 팔지 말아 달라고 애원했었다. 좁은 컴퓨터방에 큰 의자가 두 개나 있을 필요가 없어서 하나를 판 거였고 평상시에 아이는 그 의자를 거의 사용하지 않았었다. 이미 약속한 거라서 어쩔 수 없다며 결국 의자를 팔았데 현관문 밖에 두었던 의자가 사라진 걸 확인하더니 한참을 더 울었다.


일단 후퇴, 그러나 포기는 안 해

그때 일도 마음에 걸리고, 남편도 그리 말하니 일단은 마음을 접기로 했다.

"알겠어. 둘 다 싫다고 하니까 내가 양보할게."

바로 당근 마켓을 통해 구매 예정자에게 양해를 구했고 주문했던 커튼도 취소했다.


렇다고 포기한 건 아니었다. 기회를 보아 다시 추진할 생각이었다. 며칠 뒤에 아이를 설득해 보았으나 아이는 커튼에 대한 자신의 애정을 거듭 강조할 뿐이었다. '흠... 그렇다면 강수를 둘 수밖에.'

"아들, 네 마음도 중요하지만 엄마 마음도 중요해. 엄마가 지난번에 양보했으니까 이번에는 네가 양보해줬으면 좋겠어. 그리고 이 방은 엄마랑 아빠가 사용하는 방이니까 엄마가 원하는 대로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 커튼 팔고 새로운 커튼 주문할 거야. 알겠지?"

"응. 알겠어. 어쩔 수 없지."

어라? 아이는 예상보다 시원하게 대답했다. 너무 쿨해서 러우면서도 다행이다 싶었다.


다시 당근 마켓에 올렸더니 바로 톡이 왔다. 약속을 잡았고 남편한테 기존 커튼을 떼어달라고 부탁했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아이가 다시 억지를 부리기 시작했다.

"엄마가 분명히 너한테 동의를 구했잖아. 게다가 또 약속을 취소하면 엄마도 사기로 한 사람한테 미안해서 안돼. 그만 울어. 울어도 소용없어."

"동의 구한 게 아니라 엄마 맘대로 한다고 한 거잖아. 그리고 그때는 괜찮을 줄 알았는데 안 괜찮아. 커튼이랑 정들었단 말이야."

"이제 그만하자. 네가 아무리 떼를 써도 엄마는 예정대로 할 거야. 괜한 에너지 낭비하지 말고 얼른 자."



울고 싶어라

다음 날 아침에 커튼을 떼어다가 깜짝 놀랐다. 두 폭의 커튼 중 오른쪽 커튼 맨 아래쪽에 손톱만 한 크기의 구멍이 있었기 때문이다.

"보, 혹시 커튼에 구멍 난 거 알고 있었어? 이거 모르고 팔았으면 큰 일 날뻔했네. 구멍이 언제 생겼지?"

그렇게 말하던 중 뭔가 강렬한 느낌이 뇌를 강타했다. 구멍을 자세히 보니 가위로 오려낸 모양이었기 때문이다.

'서... 설마!'

"아들, 혹시 네가 그랬어?"

아이는 눈을 피하면서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남편과 나는 잠시 동안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로를 마주 보았다. 아이는 제 뜻이 관철되지 않자 심술을 부린 것인데, 아홉 살짜리 아이가 한 짓 치고는 너무 과감했다. 아이의 행동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스러웠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누군가에게 손해를 끼쳤다는 사실이었다. 리는 아이에게 심각하게 말했다.

"이건 절대 대충 넘어갈 문제가 아냐. 네가 원하는 걸 얻기 위해 다른 사람에게 불편함을 끼치거나 멀쩡한 물건을 상하게 하는 건 분명 잘못된 행동이고 아주 심각한 거라고. 알겠어?"

아이는 자신의 잘못을 순순히 인정했고 벌도 받겠다고 했다. 언제 그랬냐고 물으니 어젯밤에 몰래 가위로 잘랐으며 래 놓고 저도 불안하고 힘들었는 말도 했다. 잘못된 행동에 대한 반성의 의미로 일주일간 유튜브 시청 금지령을 내렸고 앞으로 그러지 않겠다는 약속도 받아두었다.


어렵다. 육아

육아는 어렵다. 아이가 예상치 못한 말이나 행동을 했을 때 부모로서 어떻게 반응하고 도와줘야 할지 고민될 때가 많다. 이번 경우도 그랬다. 육아 선배인 언니는 아이가 자신을 위계질서상 첫 번째로 두고 싶어 하는 심리적 저항이었을 수도 있으며 성장하는 과정에서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위로해주었다. 미완성의 아이는 앞으로도 성장하는 과정에서 더 많은 실수와 잘못을 저지를 것이다. 그때마다 그냥 지켜보며 기다려줘야 할지 길을 제시해줘야 할지를 부모로서 고민해야 할 것이다. 이미 다 성장한 어른들도 미숙함이 많은데 아이들은 오죽하랴.


아들의 도발로 인해 커튼은 결국 장롱 신세가 되었다. 팔 수도 없고, 버리기는 아까우니 일단 모셔둘 수밖에. 커튼을 수선해서 어딘가 필요한 곳에 활용하면 좋을 텐데 게 언제쯤 가능할지 아직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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