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미나 지음
오래간만에 집어든 여행 에세이다.
2023년 따스한 어느 봄날, 서서히 쌓여가는 여러 스트레스가 마음을 흔들기 시작하던 즈음, 무심코 들른 서점에서 단번에 눈길을 사로잡았던 손미나 님의 산티아고 순례길 여정.
눈길을 사로잡은 이유는 스페인 관련 활동이 활발한 손미나라는 유명인사의 글이라는 점도 있었지만, 사실 그보다는 산티아고 순례길이라는 포인트가 더 크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스트레스로 인한 일종의 도피처로서 산티아고 길이 확 끌렸는지도 모르겠지만, 무엇보다 버킷리스트라고 할 만큼 꽤 오랜 시간 산티아고 순례길에 대한 로망이자 희망이 마음 깊이 자리 잡은 점이 더 컸다.
꽤 오래전, 2005년쯤인 것 같다. 산티아고 순례길이 나의 뇌리에 똬리를 튼 것이.
어떤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서 본 것 같은데, 약 40여 일에 걸쳐 배낭을 짊어지고 오로지 두 발에 의지하면서 기나긴 여정을 펼쳐나가는 것이 꽤 매력적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숙소 또는 걷는 중에 만나는 다양한 사람들과 주변 풍경 그리고 피할 수 없는 자기 자신과의 대면 등이, 비록 종교적 목적이 아니더라도 나도 꼭 한번 순례여정을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 했다.
그러기를 적잖은 세월 동안 책이나 영화 등을 통해 산티아고에 대한 관심을 계속 가져왔지만, 사실 관련 서적을 제대로 읽어본 적은 없다.
언제 실행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관련 책을 읽다 보면 괜한 부러움과 함께 더 큰 희망고문이 될 것 같았기에.
이 책은 일종의 여행 에세이답게 다양한 사람들과의 만남과 사연, 프랑스와 스페인 각 지역의 풍경, 음식, 문화, 그리고 자신의 내면과 세상에 대한 시선 및 사유 등을 스케치하듯이 담담하게 담아낸다. 또한 저자 자신이 스페인 유학시절 때 가봤던 곳을 다시 방문하면서 느끼는 개인적 소회 등도 잔잔하게 담겨 있어, 책이 전체적으로 너무 세세하거나 지나치게 깊지도 않기에 편하고 수월하게 읽혔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면서 깨달은 게, 2005년 즈음에는 산티아고 순례길 보다는 '까미노 순례'라는 명칭으로 더 알려졌던 것 같은데 이제는 산티아고 순례길이 보통명사화 된듯하다.
그래서 이 참에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정식 명칭이 "El Camino de Santiago". '산티아고 순례'가 맞네.
* 책 속 몇가지 인상적이었떤 내용들.
"카미노의 아름다움은 천천히 갈 수밖에 없다는 거죠. 한 달 동안 내 몸의 리듬만을 따라 걸으면서 살아본다는 건 엄청난 기회예요. 모든 것에서 멀어질 수 있으니까요. 완전한 단절 속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은 인간에게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왜냐면 그렇게 해야 진짜 나 자신을 만나고, 그 진짜 내가 밖으로 나올 수 있거든요. 나이, 출신, 국가, 문화, 교육 배경 등 모든 것에서 비로소 완전히 자유로워지는 진짜 나를 만나는 것, 그건 정말 환상적인 일이랍니다."
- 순례길에서 만난 스페인 발렌시아 출신 아티스트 니아의 인터뷰 중. p.178. -
"인생이란 결국 그런 건가 보다. 누구나 가슴에 응어리 하나 정도 얹어 놓고 살아가는 것. 각자의 짐을 들고 걸어가는 것. 십자가 아래에 놓인 모든 이들의 소원이 다 이루어지길 간절히 기도하면서 다시 걸음을 옮겨 다음 마을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이제서야 조금 알 것도 같다. 카미노란 것이 그냥 발을 움직여 걷는 게 아니라는 것을. 카미노는 마음으로 걷는 것이다. 두 발이 아닌 하나의 마음으로.
- 39세 젊은 아들을 병으로 잃은 노년의 순례객과의 만남 이후 남긴 저자의 감상. p.199. -
"종착지를 얼마 남겨두지 않은 시점에 든 생각은 인생은 버텨내는 거구나 하는 것이다. 고난의 순간들이 있을 때 피하는 대신 버티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 고통을 이겨내는 순간이 온다. 그렇게 할 수 있는 데에는 걸으면서 만나는 좋은 풍경이나 앞뒤에서 나처럼 힘든 것을 참고 걷는 사람들, 내 마음속에 피어나던 수많은 생각들이 도움이 되었다."
- 저자의 감상. p.244. -
"원하지 않는 혹은 우리를 슬프게 하는 일들이 벌어졌을 때 끝없는 나락으로 곤두박질치는 대신 그런 일이 우리 삶에 존재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슬픔을 그저 짙은 슬픔으로만 묻어두는 대신 다른 빛깔의 옷을 입혀 간직하는 것이다.
- 저자의 감상. p.267. -
돌이켜보면, 인생 첫 배낭여행이었던 2002년 여름 무렵의 36일짜리 유럽 단독 배낭여행은 그때는 몰랐지만 세월이 흐르면 흐를수록 내 삶의 소중한 자산이 되어 주는 것 같다.
숙소를 대신하는 야간 열차의 6인실 객실에서 만난 세계 각지의 여행객들, 길을 가다 우연히 마주친 한국인 여행객들, 그러다 마음이 맞아 함께 며칠을 여행하다 다시 또 각자의 길로 향하는 만남과 이별이 일상이었던 다양한 여정들.
이 모든 것들이 어쩌면 이 책에서도 나타나는 산티아고 순례 여정의 모습과 흡사한 게 아닐지. 그래서 때로는 나 자신에 대한 도전적 차원에서도 산티아고 순례, 꼭 한번 해보고 싶다. 그런 날이 언젠가는 꼭 오기를.
2023년 여름 무렵의 감상을 뒤늦게 옮겨 적으며, 2025. 2. 2.
※ 최근, 2011년부터 2023년 동안 9차례나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온 어느 여성분의 SNS가 어떤 알고리즘 때문인지 모르겠는데 불현듯 나의 SNS피드에 떴다. 그 참에 이 분의 SNS를 한 번씩 살펴보게 됐는데, 지금은 국내에서 트레킹 여정을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한두 번은 몰라도 9차례나 다녀왔다는 건 자신의 삶을 자신의 방식대로 만들어가고 살아간다는 건데, 그래서 대단하고 멋지다는 생각이 든다. 더욱이 오랜 시간 지속하고 있다는 것에 더없이 응원을 하게 된다. 조만간 산티아고 순례 여정에 대한 관심 제고차 이 분의 책도 살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