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야기 37. 아버지의 해방일지

# 정지아 지음

by 뽈뽈러


언뜻 제목만 봐서는 온 가족을 지탱하고 책임져온 아비로서의 무게와 그 어려웠던 삶을 내려놓고, 한 인간으로서 자신만의 새로운 삶을 개척해 나가려는 과거와 다른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주는 내용일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보단 1945년 일제로부터의 해방 이후 사회주의 사상에 심취하여 고향 구례군과 지리산, 특히 평소 자신의 뼈를 뿌려달라고 했던 백운산을 중심으로 '빨치산' 활동을 했던 아버지와 그 아버지로 인해 화자뿐만 아니라 아버지 주변의 지인 및 친지들이 어떤 영향을 받았고, 그에 따라 아버지에 대해 어떤 생각들을 갖고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내용이었다. 물론 빨치산이라는 시대사적 꼬리표 때문에 아버지가 살아온 사회상과 결부 지어서.


그렇게 하여 마지막에는 아버지에 대한 이해와 함께 일종의 화해로 마무리 짓는.




이야기의 계기는 어느 날 전봇대를 들이받고서 그 길로 삶을 등진 노년의 아버지와 그의 장례식 때문이다.


3일 동안 진행된 장례식을 통해 문상하러 온 아버지의 빨치산 동료에서부터 고향의 지인 및 친지, 그리고 스무 살도 안된 같은 동네의 베트남 혼혈 청소년에 이르기까지 평소 알지 못했던 아버지에 대한 얘기를 소상히 듣게 되면서다.


- 구례군 당위원장까지 지낸 아버지가 변절했다고 생각하는 동료들과 그들이 알지 못했던 극소수 인원만 아는 실상, 그럼에도 개의치 않았던 아버지.


- 아버지의 빨치산 경력 때문에 자신의 아들이 육군사관학교에도 못 가는 등 집안 모두의 진로를 망치게 했다고 생각하는 화자의 막내 삼촌, 그리고 그 푸닥거리를 수없이 봐왔던 화자의 막내 삼촌에 대한 냉랭한 거리감.


- 아버지 장례식장까지 찾아와서도 빨치산이라고 욕하는 동네 노인, 그리고 그 노인의 형과 아버지와의 관계.


- 베트남 혼혈 청소년과 아버지의 세대를 뛰어넘는 우정과 맞담배 이야기.


- 빨치산 자녀로서 느꼈던 한계로 인해 학업을 내팽개친 고등학교 시절의 어느 여름날, 노발대발했던 아버지와 그를 피해 도망치는 화자를 돌봐준 막내 삼촌과의 일화.


이외에도 아버지와 관련된 다양한 스토리가 펼쳐지는 가운데,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것은 그렇게 아버지한테 푸닥거리를 했던 막내 삼촌이 실은 열 살 터울 이상의 아버지를 굉장히 자랑스러워했다는 점이다.


한데, 빨치산 대장인 형이 뭔지도 모르고 자랑스러워했던 유년시절 막내 삼촌의 자랑질은 곧 자신의 아버지가 군인들 총탄에 맞아 죽는 계기가 됐고, 그로 인해 막내 삼촌은 지울 수 없는 트라우마를 안고 살다 보니 술만 먹으면 그렇게 화자의 아버지를 찾아와 닦달했다는 것이다. 단순히 자기 자식들의 진로 때문만이 아닌.


그런 삼촌이 오지 않을 것 같았던 아버지의 장례식장에 들렀고, 묫자리 언급을 하면서 죽은 아버지 및 화자와 나름의 화해를 하고 간다는.




책의 처음과 끝의 작가소개와 작가의 말을 통해서 이 소설은 정지아 작가의 자전적 소설임을 알 수 있다.


무엇보다 빨치산 자녀로서 겪었던 제약과 한계를 때로는 유쾌하게, 또 한편으론 가슴 아프게 그려내면서도 덜하지도 더하지도 않으면서 그냥 툭툭 던지듯이 뱉어내는 게 이 책의 매력으로 다가왔다. 특히, 빨치산의 자녀로서 겪은 제약과 한계를 사회주의자 부모의 이념과 현실이 맞닿지 않는 갖가지 일상을 통해 가벼운 풍자 형태로 그려낼 때는 절로 웃음이 지어질 때가 많았다.


사실 처음에는 아직도 해방 이후 좌우 이념의 시대와 빨치산에 대해 할 얘기가 많이 있을까 생각을 하면서도, 계속 읽다 보니 빨치산의 가족으로서 받아내야 했던 체념과 무력감을 일상적 스케치로 조명함에 따라 역사의 한 페이지를 이렇게 색다르게 그려낼 수 있다는 걸 인식할 수 있었고, 그 점에서 책 읽기의 새로운 묘미를 느끼게 됐던 것 같다.


이와 함께 이 소설을 계기로 문득 떠오른 어떤 한 인물에 대해서도 잠시 생각해 보는 계기도 되었던 것 같고.




아버지의 해방일지.


살아서는 1945년 해방 이후의 아버지 삶의 일지를, 그리고 죽어서야 한평생 감내해 온 빨치산 꼬리표에서 해방된 아버지의 몰랐던 일지를 그려나간 소설. 그렇게 하여 끊임없이 이어져온 과거와 현재의 충돌은 몰랐던 이면의 과거를 통해 현재와 소통하고 화해하는 계기가 되고...


대략 이런 느낌으로 이 소설을 갈무리해 본다.



올해 초 읽은 이 책의 리뷰를 뒤늦게 마무리하며, 2025. 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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