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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뽈뽈러 Jul 13. 2021

책 이야기 20. 지리의 힘

# 팀 마샬 저


어쩌면 '르몽드 세계사'의 요약정리판을 읽었다고 하면 될까? 저자가 들으면 섭섭하게 들리겠지만.


그렇다고 다른 책들의 아류라고 폄훼하려는 건 아니다. 이 책의 흥미와 유용성이 르몽드 세계사에 못지않은 느낌이어서 그런 한 줄 평이 떠올랐을 뿐이다.




이 책은 산맥, 고원, 바다, 강, 지류 하천, 호수, 늪지, 정글, 사막, 빙하, 평원 등 대륙이나 국가의 경계가 되는 지리적 요소들을 토대로 주요 이슈지역을 구석구석 훑으면서 당면한 지역정세를 풀어낸다.


글은 중국, 미국, 서유럽, 러시아, 한반도와 일본, 라틴 중남미, 아프리카, 중동, 인도-파키스탄-아프간, 북극 순으로 진행되는데, 눈에 띄는 건 한반도가 5번째로 나왔다는 점이다. 중국과 러시아, 미국, 서유럽이야 국제정세의 단골 소재라지만, 한반도가 그다음에 바로 나왔다는 건 북한과 중국이 잠재적 위험 요소이자 위협이 될 거라는 요즘 서구 전문가들의 인식이 투영된 게 아닐는지.




중국을 첫 번째로 다룬 것도 비슷한 맥락이 아닐까 싶다. 인도와의 국경분쟁, 동남아시아 해역의 여러 섬들에 대한 영유권 갈등 및 장악, 아프리카 대륙의 광물자원에 대한 탐욕과 이를 위한 철도, 도로, 공항, 항만 등의 기반시설 확충, 무엇보다 이 모든 것을 위한 대양해군 육성 및 군사대국화 의지, 그리고 서서히 진행되는 헤게모니 쟁탈 시도 등 현재 벌어지고 있는 중국의 야심과 행동들을 여실히 보여준다.


참고로 2009년에 '차이나프리카'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내용은 간단했다. 중국이 아프리카 대륙의 막대한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각 나라별로 그동안 어떤 일들을 벌였고, 중국 자본과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투입되어 그 결과 아프리카가 중국에 어떻게 잠식당하고 예속되어가는지를 상세히 그린 책이다.


프랑스와 스위스 출신의 기자, 사실상의 불어권 기자들이 쓴 책이라서 프랑스의 영향력이 쇠퇴해감과 동시에 중국의 영향력이 확대되어가는 현실의 불안감이 그런 리포트를 쓰게 한 동기인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중국 해외진출의 실상을 새롭게 알게 되어 인상 깊었다.


시진핑 등장 후 일대일로(一帶一路. One belt, One road. 중국 주도의 新실크로드 전략 구상으로서 내륙과 해상의 실크로드 경제벨트)가 추진되면서 관련 기사들이 쏟아질 때 '차이나프리카'가 떠오른 건  때문이다. 결국 일대일로라는 게 새로운 구상이 니라 지금껏 암묵적으로 진행해온 활동들을 하나의 전략적 개념으로 집약하고, 나아가 세계 패권경쟁에 본격 나서겠다는 의지를 공식화한 게 아닐는지?!




'지리의 힘'을 읽으면서 오래간만에 지구본을 자주 살펴보게 됐다. 계속 옆에 두고서 책을 읽은 셈인데, 그러다 보니 우리가 늘 봐오던 메르카토르 세계지도가 적지 않은 착시를 불러온다는 생각이 다시금 들었다.


유럽과 러시아는 더 크게 보이고, 아프리카 등 적도 부근 나라들은 상대적으로 덜 부각되는 메르카토르 세계지도. 그런데 지구본으로 살펴보면 아프리카나 남미 대륙이 생각보다 엄청 크다. 인도 역시 그렇다. 그에 반해 프랑스, 독일, 영국 등 유럽지역은 다 합쳐도 인도 정도 되려나? 때문에 이 세계지도가 서구 중심적 세계관의 반영이라는 비판론이 있지만, 펼쳐서 봐야 하는 물리적 여건상 어쩔 도리가 없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유럽의 저 작은 나라들이 한때 바다로 진출하여 세계를 누비고 다녔는지를 생각하면, 나라의 물리적 크기는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다. 지리적 여건 외에 그 시대의 사조와 조류, 국가적 방향성이야말로 한 나라의 운명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가 아닐는지 싶다.




'지리의 힘'은 국제문제 전문 기자가 쓴 글이라서 학문적 저서와 다르게 글이 쉽게 읽힌다. 그리고 다루고 있는 나라 및 대륙들의 역사와 현재를 적절한 분량으로 너무 깊지 않으면서도 균형 있게 서술함으로써 늘어지는 것 없이 흥미롭게 읽히는 책이었다.


2016년에 국내에 출판된 책이기에 주요 내용은 2015년까지, 길어봐야 2016년 초반부에서 그치지만, 5년이 지난 지금도 진행 중인 이슈여서 현재와 비교하면서 읽기에도 좋은 책이다.


다뤄지지 않은 곳이라면 동남아시아 지역과 호주, 태평양 등 오세아니아 지역 정도가 되는데, 지리적 요인에 더해 분쟁적 요소와 갈등 수준이 비교적 낮아서 빠진 게 아닐까 싶다.


세계 각 대륙과 주요 국가들의 과거와 현재지리적 요소를 토대로 스케치하면서 당면한 이슈를 중심으로 현실감 있게 다룬 '지리의 힘'. 전 세계를 10개의 장으로 다루다 보니, 지정학 및 지경학의 틀에서 현재의 국제문제와 관련한 개론서이자 입문서로서 읽어봐도 좋을 것 같다.



2021. 7.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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