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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뽈뽈러 Jul 19. 2021

책 이야기 21. 공터에서

# 김훈 저


이 책은 마동수-이도순 부부와 이들의 장남 마장세와 차남 마차세의 이야기다.


일제강점기, 해방, 6.25 전쟁, 흥남 철수, 피난지 부산, 10.26 사건, 12.12 사태 등 한반도 주요 변곡점 속에서 때로는 세상일에 휩쓸려 어찌할 도리도 없이, 한편으론 벗어날 수 없는 운명과 인연 때문에 우리네 범인들이 어떻게 세상을 살아왔고 또 살아가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주요 인물들을 살펴보면,


* 마동수

1910년생으로, 일제강점기 때 형의 권유로 중국 상해에 있는 한의대에 진학했다가 아나키스트 하춘파를 만나면서 독립운동에 관여하게 된다. 다만, 어떤 활동을 했는지는 일절 함구하는데, 아무튼 그때의 일 때문인지는 모르나 삶을 무기력하게 살아가면서 집 밖을 전전하는 삶으로 평생을 보낸다. 말년에는 거동이 불편하여 재가요양을 하면서 노년의 삶을 살아가는데, 10.26 사건 얼마 후 군 복무 중이던 차남 마차세가 휴가를 나온 중에 집에서 홀로 지병과 숙환으로 임종을 맞는다. 향년 69세. 그리고 일간지에 독립운동가로서의 삶이 간단히 정리된 그의 부고 소식이 실린다.


* 이도순

1915년생으로, 남편과 갓난쟁이 딸과 살던 중에 중국군들어오면서 흥남에서 철수하는 미군 수송선에 진입하던 중 딸을 업고 있던 남편이 승선을 못하게 되어 홀로 부산에 당도한다. 그 후 부상병들의 군복 세탁일을 맡으면서 낙동강변에서 같은 일을 하던 마동수와 인연이 맺어져 함께 살게 되고, 전쟁통에 마장세와 마차세를 낳는다. 그 이후의 삶은 집 밖을 전전하는 남편을 기다리는 것과 노년의 8년간의 요양원 생활로 점철되는데, 결국 향년 72세로 요양원에서 임종을 맞는다.


* 마장세

1951년생으로, 피난지 부산에서 태어나 가난한 유년시절을 구두닦이 등으로 보내고, 성인이 되어 군 복무 중 베트남전에 차출되어 무공훈장을 받은 후 하사로 제대한다. 다만, 작전 중 분대원들이 대거 사망한 채 세 명의 대원과 함께 고립되자 심한 총상을 입은 김정팔을 데리고 귀대할 수 없어 총을 쏘아 죽음에 이르게 하고, 그로부터 5일 후 어렵게 귀대한다. 조사과정에서 김정팔의 죽음은 생환한 3명 모두 함구하였고, 이로써 새 작전 루트를 개척한 공만 인정되어 이례적으로 사병 신분임에도 무공훈장을 받는다. 제대 후, 미 군무원을 따라간 괌에서 사업체를 운영하면서 가족, 특히 부모와의 인연은 철저히 단절한다. 그런데 한국 오장춘과의 사업적 관계가 그와 인연이 있는 동생 마차세로 확대되면서, 한국과의 절연은 다시 인연으로 돌변한다. 한편, 태평양 미크로네시아 정부와 계약한 해안가 고철 처리와 관련하여 위반사항이 드러나면서 오장춘을 통한 한국으로의 마약 밀반출 사건도 부각되는데, 결국 한국으로 강제 송환되어 3년의 징역살이를 하게 된다.


* 마차세

1953년생으로, 피난지 부산에서 태어났다. 이도순이 임신 4개월째에 복중의 마차세를 낙태하려고 병원에 갔으나, 창밖으로 아녀자들이 장을 본 후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에 마음이 바뀌면서 마차세는 어렵게 세상 빛을 보게 된다. 성인이 된 후 군 복무 중 휴가를 나왔다가 박상희와의 만남 중에 아비 마동수가 죽으면서 홀로 장례식을 치르고, 상중에 마동수의 동지였던 하춘파 등도 만나게 된다. 제대 후 대학에 복학하지 않은 채 경제 주간지에 취직하고 박상희와 결혼도 하는데, 12.12 이후 신군부의 일도일사(一道一社) 언론정책 때문에 입사 3개월 만에 해직되면서 11개월간 실업자로 지내게 된다. 이후 배송회사에 취직하여 무난한 생활을 영위하던 중 형 마장세의 권유로 고등학교 동기이자 군 생활을 함께한 오장춘의 회사에 취직하고, 이후 마장세와 좀 더 가깝게 지내면서 평탄한 삶을 살아간다. 그러나 오장춘-마장세의 마약 사건으로 두 사람의 회사가 풍비박산 나면서 마차세는 다시 실업자 신세가 되고, 다음 회사를 위한 임시 단계로서 배송회사에 다시 들어간다.


* 박상희

미술 전공자로서, 대학시절부터 마차세와 연인 관계였고, 그가 제대한 후 결혼에 이른다. 결혼 직후 마차세가 장기간 실업자 신세로 전락했음에도 부담을 주지 않고 학원 미술교사 급여로 신혼생활을 꾸려가고, 또한 미술 작품전에 응모도 하는 등 안정적이고 적극적인 성품으로 가정의 순탄한 안착을 도모한다. 그리고 생면부지의 형님동서인 마장세 아내 린다에게 편지를 보내고, 종국에는 마동수도 하지 않고 마차세도 하지 않았던 부모에 대한 제사를 추진하는 등 마차세 가족의 인연을 다시 끌어오고 연결하는 활동까지 한다. 시간이 흘러 딸아이 누니가 유치원에 다닐 무렵 'noonee' 간판을 내건 옷가게를 차려 자신의 삶과 가정을 보다 확장시켜나간다.




주변 인물들로는,


* 오장춘

마차세와는 고등학교 동기이자 군 생활도 함께한 사이로서, 고교시절에는 배고픔을 못 이겨 친구들 도시락을 몰래 훔쳐 먹다가 들켜서 반장이 담임선생을 제지할 때까지 뺨을 맞고, 군 복무 중에는 장부조작을 통해 차량 연료를 빼돌려 부당이익을 취하다 제대 후 몇 차례 경찰 조사를 받고, 성인이 되어선 '장춘무역'이라는 회사를 차려 괌에 있는 마장세와 유기적 사업 관계를 맺으면서 회사를 번창해 나가는데, 마약 밀반입 건이 발각되어 결국 군 복무지 근처에서 자살을 통해 생을 마감한다.


* 김오팔

베트남전에서 마장세의 총에 사망한 김정팔의 형으로서, 사후 무공훈장을 받은 김정팔 덕분에 고철 사업권을 따낸다. 그 결과 마장세의 고철 사업과 연결되고, 이를 통해 다시 마장세를 오장춘과 연결시켜주게 된다.


* 린다

마장세의 아내로서, 그의 어미는 6.25 전쟁 당시 피난지 부산에서 몸을 판 여성이다. 이후 한 미군을 따라 괌에 와서 그의 딸 린다를 낳았는데 그 미군은 나중에 미국으로 가버려 린다는 홀어머니 밑에서 자라난다. 한편, 마장세가 수감되면서 마장세의 조수인 시누크와 눈이 맞으면서 시누크의 고향으로 가버린다.


* 시누크

마장세의 미크로네시아 사업체의 현지인 직원으로서 묵묵히 마장세를 보좌한다. 2차 대전 당시 쳐들어온 일본군의 강압으로 그가 만들어졌는데, 비슷한 시기에 두 일본군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하여 그 아비가 누구인지는 모르나, 어미한테 듣기로는 그 당시 미군의 공습으로 모두 전사했다고 한다.


* 하춘파

마동수의 동지로서, 그의 삶을 독립운동으로 이끄는 등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 사람이다. 마동수의 장례식 때 다른 동지들을 데리고 와서 술과 이야기를 풀어냈고, 그 이후 마차세의 결혼식은 물론이고 이따금씩 마차세를 찾아와 용돈을 타가는 행동을 한다.




- 아비 마동수는 왜 그토록 집 밖을 전전했던 것일까? 두 달에 한 번 정도 집에 오는 것도 그나마 부부와 자식 간의 인연 때문이었던 것일까?


- 마동수의 장남 마장세는 그런 아비의 모습과 어미 이도순의 한숨이 버무려진 암울하고 적막한 상황에 질려, 베트남 전쟁 파병을 계기로 가족과 한국과의 모든 인연을 절연하고 싶었던 것일까?


- 마동수의 차남 마차세는 그런 아비의 모습과 어미 이도순의 한숨 그리고 형의 절연을 보면서 자신의 인생에 있어 어떤 미래를 그릴 수 있었을까?


- 그래서, 책 제목은 왜 '공터에서' 일까?




이 책을 읽고서 들었던 몇몇 궁금함과 생각들이다.


그리고 책의 내용을 다시 그려보고 정리하면서 떠오른 나름의 한 줄 평을 말하자면,


- 휩쓸려가는 운명과 그 흐름에 떠밀려가는 운명에서 빚어지는 세상 사람들의 삶과 인연, 그리고 그 인연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삶과 그럼에도 벗어나지 못하는 삶이 충돌하면서 벌어지는 범인들의 인생살이, 다만 그러는 동안에도 한 걸음 한 걸음 삶과 세월을 쌓아나간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 -


뭐 대략 이런 느낌이 떠올랐다.


그리고, 책 제목 '공터에서'에 대해서는,


- 공터라는 곳이 어느 시간이든 누구든지 왔다 갔다 지나다니고 때로는 주저앉아서 잠시 쉴 수도 있고, 장을 펼칠 수도 있는 등 사람들의 시간과 인생이 스쳐가는 곳이기에, 공터에서 이뤄지는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여준다는 의미에서 그렇게 지은 게 아닐는지?! -




이 소설은 시종일관 정말 술술 잘 읽혔다. 김훈 작가 특유의 단문이 지닌 매력이 여지없지 발산된 작품이었고, 읽는 사람에 따라서는 그의 문장에 호불호가 갈린다는 평도 있지만, 어느덧 김훈 작가의 글에 익숙해져서인지 문장과 이야기에 푹 빠지게 된 작품이다.


그로 인해 등장인물 하나하나 그들의 생애가 그려지고 정리가 되면서, 각자의 환경에서 그들이 갖는 고민과 행위들을 생각하고 그 의미를 나름 떠올려보기도 한 것 같다.


그러면서 김훈 작가에 대한 기억도 잠시 생각해보게 됐고...



# 김훈에 대한 기억


칼의 노래, 남한산성, 흑산, 공터에서, 그리고 때때로 들춰보는 그의 수필집들. 이렇게 그의 작품을 읽을 때면 한 일간지 편집국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던 2001년과 2002년의 어느 시절이 떠오른다.


45도 각도로 모자를 치켜세워 쓴 모습. 등산 차림새의 옷매무새와 한쪽 어깨에 둘러멘 배낭 그리고 워킹화. 무심한 듯한 눈빛이면서도 여리게 빛나는 특유의 안광. 오후 5시 무렵이면 이 모습으로 한 번씩 사회부 부스에 쓱 들어서는 김훈.


사실 처음에는 그에 대해서 잘 몰랐다. 그런데 함께 알바를 하던 동료가 마침 그가 들어서는 모습을 보면서 '저분이 칼의 노래를 쓴 사람이다.'라고 알려주는 것이다. 근데 '칼의 노래'는 또 뭔지? 그래서 알바를 마친 후 집에 가서 인터넷을 검색하여 김훈의 삶과 그의 글을 어떤 호기심 때문인지는 몰라도 두루 찾아보게 됐다.


그렇게 칼의 노래를 읽고, '거리의 칼럼'을 찾아보고, 그 이후에도 그의 작품이 나올 때마다 관심을 갖게 됐던 것 같다. 사람에 대한 나의 호기심은 태생적인 듯;;


'공터에서'가 김훈의 자전적 삶이 많이 녹아든 작품이라는데, 글의 곳곳에서 그때 알바 시절 찾아본 그의 일생과 주변 상황이 자연적으로 떠오른 것도 이 때문인 것 같다.


뭐 그리 대단한 추억은 아니지만, 그때 그 시절 먼발치에서나마 한 공간에서 그의 모습을 간간이 마주 대할 수 있었다는 것.


그의 글을 읽을 때마다 한 번씩 생각나는 김훈에 대한 기억이다.



2021. 7.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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