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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뽈뽈러 Aug 12. 2021

책 이야기 23. 철도원 삼대

# 황석영 지음


- 400여 일 넘게 공장 굴뚝에서 해고자 복직 등을 요구하며 홀로 고공 농성 중인 이진오.


- 노동자 탄압을 피해 북에 간 아버지 이일철을 만나기 위해 18세의 나이에 월북한 이후 곧바로 6.25 전쟁이 터지면서 북한군 수송과 물자 보급을 담당하는 열차를 운행하다 미군 폭격으로 오른쪽 다리를 잃고 전향 포로 신분으로 영등포에 귀향한, 이진오의 아버지 이지산.


- 일제강점기 총독부 산하 철도원 양성소를 졸업한 후 경부선, 경의선뿐만 아니라 만주 신경(新京)까지 운행하는 특급열차의 기관사였다가, 아우 이철의 옥사를 계기로 해방 이후 노동운동에 투신하는, 이지산의 아버지 한쇠 이일철.


- 부모 말씀 잘 듣고 공부도 열심히 하여 몇 안 되는 조선인 기관사가 된 형 일철과 다르게, 영등포에 산재한 공장에서 무던히 생활하던 중 비밀리에 사회주의 운동에 참여하던 방우창, 안대길 등을 만나면서 인생 항로가 사회주의 활동가이자 독립운동가로 돌변하는 삶을 살아가는 이 소설의 주인공 격인 두쇠 이이철.


- 구한말에 태어나 일제가 조선을 침탈하는 과정 속에서도 특유의 근면 성실함을 바탕으로 인천에서 기술을 익힌 후 서울 영등포의 철도공작창에 터를 잡으면서 아들 일철(한쇠)과 이철(두쇠)의 파란만장한 삶을 묵묵히 지켜보며 세월을 버텨내 온 이백만.


'철도원 삼대'는 이렇듯 이백만, 이일철, 이지산이라는 삼대의 철도산업 종사자 및 사회주의 활동가 이이철의 삶을 축으로, 일제강점기 노동자들의 삶과 이들이 해방과 독립을 위해 어떤 활동을 펼쳐나갔는지를 보여주는 이야기다. 또한 현재 시점에서 극한의 복직투쟁을 벌이는 이진오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그때와 지금의 노동 현실은 어떤 차이가 있고, 또 향후 노동자 권익이 얼마나 변화 발전할 수 있을지를 생각해보게 하는 소설이다.




이들 외의 주요 등장인물로는 대체로 이백만의 가족 그룹과 일철-이철의 노동운동 그룹으로 나눌 수 있는데,


먼저 가족 그룹으로는, 일철과 이철을 낳은 후 이른 나이에 요절했지만 결정적 순간에는 언제나 혼백이 되어 나타나 그의 가족을 돌보는 주안댁, 주안댁 죽음 이후 오빠 이백만과 조카들을 살뜰히 챙기는 이막음, 사람의 운명과 미래를 볼 줄 아는 일철의 아내이자 이백만 가문의 중심 신금이, 노동운동과 독립운동을 위해 이철과 아지트 부부로 함께 지내다가 혼령이 되어 나타난 주안댁의 권유로 결국 자식까지 낳으면서 진짜 부부가 된 한여옥 등이 있다.


노동운동 그룹으로는 일제강점기 조선노동당 재건과 독립운동에 있어 전설적 존재로 남은 실존인물 이재유, 인천을 중심으로 노동운동을 전개하고 기반을 확장시켜나간 김근식, 공장과 노동자들이 밀집한 영등포에서 독서회 모임을 만들어 노동자들의 현실인식을 제고하고 의식화하면서 사회주의 노동운동과 반제반일 운동을 확산시켜나가는 이관수, 방우창, 안대길, 조영춘, 박선옥 등이 있다.


이외에도 일제 고등계 형사로서 조선인 고문과 탄압을 일삼고 해방 이후에는 용산경찰서장으로 탈바꿈하여 또다시 노동자 탄압에 앞장서다가 결국 조영춘 등에 의해 죽음을 맞는 야마시타 최달영, 남조선노동당 대표로 옹립되었다가 전쟁 이후 북한에서 숙청된 실존인물 박헌영 등이 나온다.




'철도원 삼대'의 주된 시공간은 일제 강점기 시절의 서울 영등포다. 이는 작가 황석영이 초중고 시절을 영등포에서 지낸 경험에 더해 이 소설의 계기가 된, 1989년 방북 당시 만났던 철도 기관사 출신의 한 노인 역시 고향이 영등포였기 때문이다.


아마 이 노인의 인생 스토리를 통해 이일철과 이지산을 만들어내고, 다시 그간의 멀지 않은 현실 속 실존인물들의 노동운동 투쟁기를 모티브 삼아 이진오를 성립시켜, 한국의 노동운동사와 이에 기반한 항일운동 그리고 이 모두를 아우르는 일제강점기 사회주의 운동과 오늘날의 노동환경을 600여 페이지에 걸쳐 풍성하게 풀어낸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그래서일까?


작품을 읽다 보면 중반부, 아니 초중반부쯤부터 이게 꾸며낸 이야기를 읽는다기보다는 어떤 연구 논문을 읽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느낌 가는 대로 제목을 붙여보자면, '일제강점기, 서울과 인천을 중심으로 한 항일운동사 - 조선노동당의 태동과 그 활동을 중심으로' 또는 '일제강점기 사회주의 이념 형성과 확산 - 노동 농민 계층을 중심으로'와 같은.


물론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야기가 딱딱해지거나 경색되는 느낌은 없다. 이야기꾼답게 황석영의 글 재간이 그 모든 것을 녹여내어 보여주기 때문이다. 대체로 400쪽 안팎의 소설을 읽다가 600여 페이지 분량에서 처음엔 조금 버거울 수 있겠다는 마음이 있었지만, 이진오의 농성에서 이이철의 투쟁으로, 다시 이백만의 현실에서 이일철의 변화 양상으로 독립 개체들의 이야기가 다양하게 펼쳐지다 보니 어렵지 않게 책의 끝에 다다를 수 있었다. 특히, 사회-역사적 현실에 관심 많은 나로서는 일제강점기의 몰랐던 현실도 보게 되어 나름 좋은 간접체험이 되었다.




책의 말미, '작가의 말'을 통해 황석영은 한국문학에서 빠져있는 근대 산업 노동자들의 삶을 반영하고자 이 소설을 만든 것이라고 밝힌다. 더욱이 취재한 노동운동 자료를 토대로 조선의 항일운동은 사회주의가 기본 이념의 출발점이었다고 단언한다.


이처럼 이 소설은 작가의 역사-사회적 목적성이 분명한 글이다. 때문에 책의 군데군데 대목에선 일부 독자로 하여금 어떤 호불호를 느끼게끔 할 수도 있겠단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그 모든 걸 한풀 내려놓고 그저 담담히 읽어나간다면 이야기는 이야기대로의 재미를, 당시의 현실은 또 그대로의 간접 체험하는 경험을, 그간 우리가 몰랐던 역사적 맥락은 역시 그대로를 알아가는 효용을 체감할 수 있을 것이다.


'철도원 삼대'를 읽으면서 가끔씩 앞서 김훈의 '공터에서'(책 이야기 21)가 떠오르곤 했다. 두 책 모두 특별할 것 없는 근로대중과 범인들의 인생사를 그려나간 소설이지만, 한쪽은 좀 더 사회-역사적 차원에 방점을 두는 이야기로 또 한쪽은 보다 평범한 우리네 인생 스토리로 향하기에 이 둘을 계속 비교하면서 읽어가는 즐거움도 있었다.


작가가 어떤 의미를 강렬하게 들이밀어도, 읽는 사람은 그것을 비껴가면서 또 한편으론 담대히 받아들이면서 우리가 모르는 이면을 알아가는 독서도 괜찮으리라 생각하며, '철도원 삼대'에 대한 나와의 독백을 마친다.


※ 아, 소설의 처음과 마지막을 차지하는 이진오의 고공 농성은 해피엔딩과 달리, 발을 내디딘 현실은 예전과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에는 이진오의 동료들이 다시 굴뚝에 오르기로 하면서 이야기는 끝이 난다. 현재 진행형의 현실, 암시와 여운으로 황석영은 그의 메시지를 또 하나 던져두고 갔다.



2021. 8.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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