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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뽈뽈러 Aug 20. 2021

책 이야기 24. 파수꾼

# 하퍼 리 지음


Harper Lee의 두 번째 소설이자 마지막 작품인 '파수꾼'은 1950년대 전후의 미국 앨라배마주 메이콤 군을 배경으로, 남부지역에서 벌어지는 흑백갈등 및 당시의 사회상 그리고 남부 주류 백인들의 불안한 심리 등을 애티커스 핀치 가문을 중심으로 풀어내는 작품이다.




소설의 주요 인물로는,


- 먼저 작품의 중심인물인 진 루이즈가 있다.

진 루이즈는 하퍼 리의 전작 '앵무새 죽이기'(*먼저 출판되었지만, 쓰이기는 파수꾼이 먼저다. 그럼에도 작품 속 시기는 다시 앵무새 죽이기가 앞선다. '역자 후기' 참조)에서 어린 소녀로 나온 것과 달리 이번 작품에선 26살의 어엿한 숙녀가 되어 나타난다. 그녀는 성인이 된 후 뉴욕에서 거주하는 중이다. 매년 메이콤을 2주간 방문하면서 가족들과 만남을 갖는데, 이번 방문 중에 빚어진 사건과 갈등 그리고 화해가 소설 파수꾼의 주된 내용이 된다.


- 그리고 진 루이즈의 아빠 애티커스 핀치.

네 살 터울의 아들 젬과 딸 진 루이즈를 둔 변호사 아빠 애티커스 핀치. 진 루이즈가 두 살 일 때 아내가 사망했는데, 재혼하지 않고 흑인 가정부 캘퍼니아의 도움을 받아 자녀들을 반듯하게 길러낸다. 한편, 2년 전에는 젬이 사망하는 아픔을 겪는데, 그럼에도 특유의 정연한 삶의 태도를 바탕으로 다시 일상을 이어나간다. 이후 젬의 동갑내기 친구이자 변호사인 헨리를 더욱 자식같이 여기고 조수 변호사로서 일도 함께 하면서, 메이콤 군에서 그가 주류 인사로 자리매김하도록 돕는다.


- 진 루이즈의 삼촌 핀치 박사.

독신의 외과의사로서 영국 빅토리아 시대의 문학에 푹 빠져 사는 다독가이자 약간의 괴짜 같은 인물이다. 이 작품에선 돌변한, 아니면 여태껏 몰랐던 아빠의 모습(흑백분리 옹호 등)에 깊은 혼란과 분노, 배신감을 느끼는 진 루이즈를 이해시키고 결국 화해시키는 역할로 나온다. 마지막 부분 진 루이즈와의 대화 중에서는 그녀의 엄마인 형수를 사랑했다는 고백을 하면서까지, 진 루이즈가 다시 가족을 이해하고 화해하도록 그녀를 아끼고 챙기는 인물이다.


- 진 루이즈의 고모 알렉산드라.

전형적인 당시 남부 주류 백인들의 면모를 모두 갖춘 인물이다. 유색인종 차별 외에도 계급의식도 투철하여 조카 진 루이즈가 백인 하층민 출신 헨리와 결혼하는 것을 반대한다. 자유롭게 연애하되, 결혼은 같은 부류랑 해야 한다면서. 술주정뱅이 난봉꾼 아버지를 둔 헨리가 못마땅하기 때문이다. 또한 진 루이즈가 의젓한 숙녀이자 정숙한 여성으로서 좋은 베필을 만나 삶을 영위하기를 바라는 인물이기에 어릴 때부터 늘 참견과 충고가 잇따랐고, 이에 성인이 된 진 루이즈한테는 더욱 꽉 막히고 답답한 인물로 비친다.


- 진 루이즈의 연인 헨리.

어릴 적 술주정뱅이 아버지가 집을 나간 후 엄마와 함께 온갖 일을 하면서 어렵게 성장한다. 젬과 진 루이즈와 어릴 때부터 친구로 지내고, 또 애티커스 핀치의 도움이 계속되어 애써 학업을 이어간 끝에 변호사가 되면서 애티커스 핀치의 조수 변호사로서 늘 그와 함께 지낸다. 또한 자연스럽게 진 루이즈와는 연인관계로 이어져, 향후 메이콤 군에서 그녀와 결혼하여 충만한 삶을 영위하고자 하는 꿈을 갖고 있다. 애티커스 핀치 또한 그의 꿈을 지지한다.




사건은 진 루이즈가 우연히 메이콤 군 주민 협의회를 몰래 참관하면서 시작된다. 협의회 이사를 맡은 아빠와 헨리가 예전에 들어보지 못한 주민 협의회에 갔다는 고모의 얘기를 듣고 그녀도 궁금하여 가 본 것인데, 아빠 소개로 나온 연사의 발언이 충격적이었던 것이다.


종교, 이념, 우생학적 견해 등 모든 면에서 흑백분리는 당연하고 또한 이것을 지켜내기 위해 남부와 백인들은 저항해야 한다는 주장인데, 이곳에 참여한 사람들의 면면은 진 루이즈가 대부분 아는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이 마을이 갑자기 왜, 어떻게 변한 것인지 혼란이 왔고, 더욱이 진 루이즈 자신의 양심과 가치체계에서 둘도 없는 준거이자 롤모델이었던 아빠 애티커스 핀치가 어떻게 그런 곳에서 그런 연사를 소개하면서 그런 회의를 주재하는지 거듭 충격으로 다가왔다.


한편, 갓난쟁이 시절부터 돌봐주던 흑인 가정부 캘퍼니아를 만나러 간 진 루이즈는 그녀가 예전과 다른 태도, 즉 살갑지도 않고 주의를 기울이지도 않으며 뭔가 보이지 않는 벽이 있는 듯이 자신을 대하는 태도에서 과거와는 다른 마을의 분위기를 다시 한번 실감한다.




이런 상황을 토대로 진 루이즈는 삼촌 핀치 박사를 찾아가 상황을 살펴보지만, 남부 백인 주민들의 관점 내지 연방 대법원 판결에 따른 지방 정부들의 자치권 제약에 대한 비판론 등만 접한다. 더욱이 흑인 권익 단체인 NAACP의 적극적 활동으로 인근 마을에선 심각한 흑백갈등이 벌어진 점을 들어 메이콤 군 역시 대비를 해야 한다는 핀치 박사의 주장에 실망감만 잔뜩 쌓여간다.


어린 시절부터 흑인들과 함께하는 삶이 자연스러웠고, 아빠 애티커스 핀치 또한 흑백분리 옹호 관점이라든지 차별에 대해 일체 언급이 없었을뿐더러 심지어 어려움을 겪던 흑인 청년에 대한 법정 변호도 맡은 적이 있었기에, 진 루이즈는 그 모든 게 혼란스러웠고 자신의 삶과 가치체계가 송두리째 부정당하는 느낌을 갖게 된다.


그리하여 결국 고모와 충돌하고, 헨리와는 길거리에서 절교를 선언하면서 크나큰 언쟁을, 아빠와는 평행선을 이루는 견해 차이와 그에 따른 배신감 및 분노로 급기야 폭언을 내뱉으면서 다시는 메이콤에 오지 않겠다고 말하며 집을 떠나려고 한다.


그때 삼촌 핀치 박사가 진 루이즈를 찾아와 그녀를 진정시키면서 다시 한번 메이콤과 남부 주민들의 가치관과 생활방식 그리고 역사, 덧붙여 연방 대법 판결로 침해를 받는 자치권 등 뉴욕을 필두로 한 북부와 다른 그곳의 전반적 정서를 설명한다. 진 루이즈 역시 반박하는 대화를 펼쳐나가는데, 그 속에서 서서히 진 루이즈는 그런 견해와 입장들이 귀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물론 여전히 수긍하고 인정할 수는 없지만.

"이것도 기억해. 어제 또는 10년 전을 돌이켜 보고 우리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알기는 언제나 쉬워. 그러나 지금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알기는 굉장히 어렵지. 네가 그 요령을 터득하면 앞으로 잘해 나갈거야."
- 작품 속, 삼촌 핀치 박사 (p.382) -


그렇게 삼촌 핀치 박사와의 두 번째 논쟁 끝에 서로의 관점을 알아가면서 갈등은 정리가 되고, 다시 아빠 애티커스 핀치와도 화해하면서 소설 파수꾼은 막을 내린다.

"나는 물론 내 딸이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위해 물러서지 않았으면 했지. 가장 먼저 내게 맞섰으면 했어.
- 작품 속, 아빠 애티커스 핀치 (p.394) -
'나는 나의 세계가 교란되지 않기 바라면서, 나를 위해 애써 그것을 보존하려 하는 사람을 짓밟고 싶었다. 그와 같은 모든 사람들을 몰아내고 싶어 했다. 그것은 비행기와 같은 듯하다. 그들은 저항력이고 우리는 추진력이어서, 우리는 함께 그것을 날게 만든다. 우리가 너무 많으면 머리가 무겁고, 그들이 너무 많으면 꼬리가 무겁다. 그것은 균형의 문제다. 나는 아빠에게 이길 수 없고, 아빠와 한편이 될 수도 없다.'
- 작품 속, 진 루이즈의 독백 (p.395) -




책을 다 읽고서, 그리고 이렇게 정리를 해가면서 든 느낌은, 이 소설이 응당 인종차별 폐지나 혐오 철폐 같은 지고지순한 명제를 그저 내세우는 이야기는 아닌 것 같다는 점이었다. 오히려 세상사 각자의 가치관과 신념은 다양하게 존재하고 또 그것들이 충돌하면서 사회가 돌아간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는지 싶었다.


그래서일지 모르겠지만, 이 소설은 아마도 읽는 사람에 따라서 다양한 관점과 견해가 제시될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작 앵무새 이야기와는 인물과 시대와 장소가 다를 바 없지만, 흑인들에 대한 편견과 그에 따른 부당함을 막고자 나선 애티커스 핀치의 이야기와는 또 다른 사건으로 생각거리를 던져 준 소설이라는 게 나름의 총평이라면 총평이다.


어찌 보면 진 루이즈라는 인물의 성장 소설 같은 느낌도 들었는데, 아무튼 책을 마치고 나서 군데군데 접었던 부분을 다시 훑어본 게 꽤 오랜만인 것 같았다. 그러면서 뇌리에 남는 느낌과 유사한 대목들이 다시 눈에 띄어 이번에는 여러 인용문으로 대신하며, '책 이야기 24. 파수꾼'을 마친다.


눈이 멀었거나, 그게 내 모습이다. 나는 눈을 뜬 적이 없다. 다른 사람들의 마음속을 들여다보려 한 적이 없다. 얼굴만 살짝 봤을 뿐이다. 완전히 눈이 멀었다, 돌처럼...... 스톤 목사, 스톤 목사는 어제 예배에 파수꾼을 세웠다. 그는 내게 파수꾼을 세워 주었어야 했다. 손을 잡아 이끌어 주고, 매 정시마다 보이는 것을 공표해 주는 파수꾼이 나는 필요하다. 이 사람이 이렇게 말하지만 실제로는 저것을 의미한다고, 가운데 줄을 긋고 한쪽에는 이런 정의가 있고 다른 한쪽에는 저런 정의가 있다고, 그 차이를 이해할 수 있도록 말해 줄 파수꾼이 나는 필요하다. 나가서 그들에게 그 모든 스물여섯 해는 누가 장난을 치기에는, 그게 얼마나 재미있든 너무 긴 시간이라고 공표해 줄 파수꾼이 나는 필요하다.
- 작품 속, 진 루이즈의 독백 (p.258~p.256) -


진 루이즈, 각자의 섬은 말이다, 각자의 파수꾼은 각자의 양심이야. 집단의 양심이란 것은 없어.
... (중략) ...
너는 너만의 양심을 가지고 태어났는데, 어딘가에서 그 양심을 따개비처럼 네 아버지에게 붙여 놓았던 거야. 자라나면서, 또 어른이 되고도, 너 자신도 전혀 모르게 너는 네 아버지를 하나님으로 혼동하고 있었던 거야. 인간의 심장을 가진, 인간의 결점을 가진 한 인간으로 보지 않았지. 그것을 깨닫는 게 쉽지 않았으리란 것은 내가 인정한다. 형은 실수를 범하는 일이 별로 없으니까, 하지만 형도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실수를 하기는 해. 너는 정서적 불구자였어, 아버지에게 의지하고 항상 네 답이 곧 아버지의 답일 거라 가정하고 답을 구해 왔지.
... (중략) ...
우리는 가끔 네 양심과 네 아버지의 양심이 언제 어떤 일을 계기로 결별할까 생각했지.
... (중략) ...
네 아버지는 너 스스로 우상들을 하나씩 부수도록 내버려 둔 거야, 네가 스스로 아버지를 인간의 신분으로 떨어뜨리게 만든 것이지.
- 작품 속, 삼촌 핀치 박사 (p.376 ~ p.377) -


앵무새 죽이기. 5년 전쯤 읽은 터라 기억이 가물하지만, 인물과 시대와 장소가 유사하여 파수꾼을 읽는 동안 이 책의 스토리도 부분 부분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2021. 8.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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